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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인터뷰] ‘비밀의 언덕’ 이지은 감독, “그 시절 명은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벌새’ ‘남매의 여름밤’ 등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인 감성으로 확대하는 다양성영화들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그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주목받고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비밀을 간직한 감수성 많은 소녀, 명은이의 이야기를 담은 ‘비밀의 언덕’입니다.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다수의 영화제에서 초청과 수상을 하며 7월 한국 다양성영화 기대작으로 주목받고 있죠.

첫 데뷔작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든 이지은 감독을 키노라이츠에서 만났습니다.

첫 장편 데뷔작에 대한 구성과 명은이를 비롯한 주연 캐릭터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풍성한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키노라이츠가 주목한 감독 이지은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볼까요?

첫 장편 데뷔작인데요, 작품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는데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어요. 먼저 어떤 작은 인물, 뜨겁고 열정적이며 야망이 있고 발칙한 작은 여성이 제 머릿속에 있었어요. 그런 인물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는데 그때는 사건이나 갈등을 만들지 못했어요.

다음은 초중고 시절 누구나 겪었던 가정조사서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언젠가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 사는 곳, 부모, 직업 그런 부분들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어요. 그 작은 인물이 (이 이야기에) 들어가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에 구상하게 되었어요.

영화의 배경이 1996년인데요. 이때를 배경으로 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희 부모님 세대에도 가정조사는 있었어요. 70~80년대는 너무 대놓고 물어보던 시대라 다루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세대가 아니라 선생님이 자율학습을 시키고 한 명씩 교실 앞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는데, 자습 중인 아이들이 귀를 쫑긋하고 듣는 세대 있잖아요. 그런 모습에 더 공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마음을 더 잘 표현하고 싶어서 90년대를 배경으로 했어요. 국민학교 명칭이 96년도에 초등학교로 변경이 되었어요. 국민학교 하면 너무 옛날이야기 느낌이다 보니까 96년 이전으로 설정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헌데 97년도에 IMF가 터졌어요.

저희 영화가 직업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보니까 IMF가 들어가면 영화가 복잡해질 거 같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1996년으로 결정이 되었어요. 제가 그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고 그런 점이 시대를 설정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잖아요.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고 여겼어요.

영화를 보면 주인공 명은이의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명은이는 제가 보고 싶어 했던 인물이에요. 허구적인 인물에 리얼함을 구현하기 위해 제 이야기, 습관, 경험 같은 것들을 많이 투영했어요. 명은의 ‘은’이 저의 일부분이라면, ‘명’은 그럼에도 픽션을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극적인 균형에 신경을 썼어요.

그 이유가 자전적인 경험이라면 거리감을 떨어뜨리기 힘들어서 느끼하거나 오글거리거나 감독의 일기장 같은 느낌을 줄 수가 있어서요. 제 에피소드가 있더라도 지금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지금 아이들도 그런 게 있을까? 그런 부분을 고증하고자 했어요.

4개월 동안 오디션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명은 역으로 문승아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말 여러 통로를 통해 오디션을 봤어요. 8살부터 13살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배우들을 만났고, 인당 1시간 정도 시간을 들여서 세심하게 살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연기를 시켜보면서 심층적으로 명은이를 할 배우를 찾았어요.

저한테 가장 중요했던 목표는 아이의 프레임 벗기는 것. 명은이란 캐릭터를 한 여성이자 인간으로 그리고 싶었거든요. (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미화하지 않고 진짜 인간으로 그리겠다. 그 목표를 정한 순간 많은 것들이 변했다고 봐요. 아이라고 프레임 씌우면 명은이가 향하는 공간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 프레임 벗기는 순간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지더라고요.

예를 들어 통일전망대나 회사 등등. 명은이가 욕망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아이라는 틀 안에서의 금기들을 다 깰 수 있었어요.

명은이라는 역할이 2시간 동안 홀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야 하니까 극적인 연기가 아니라 리얼하면서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승아 배우가 힘주지 않고 편하게 연기하는데 시선을 끄는 힘이 있어요. 승아 배우라면 명은이가 먹고, 생각하고, 자고. 그런 모든 것들을 다르게 만들겠다. 그런 확신이 오디션은 물론 촬영을 하면서도 들었어요.

승아랑 대화하는 인간 대 인간으로 참 재밌었어요. 처음 승아가 오디션장에 들어왔을 때는 도도하고 세련된 느낌이라 여겼는데, 입을 여는 순간 구수하고 스윗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자기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점이 중요했는데 그런 점에서 승아가 많은 걸 해줬어요. 저는 배우가 감독의 디렉션 만으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이 배역에 욕심이 있어서 함께 탐구할 수 있는 걸 원했는데 승아가 정말 많은 시간을 내줬어요. 함께 해준 걸 지금도 고맙게 생각해요.

문승아 배우가 캐스팅이 되면서 명은 캐릭터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제가 초등예술교사로 일하면서 학년에 대해 분석했는데요. 영화에서 명은이는 4학년이 좋다고 여겼어요. 승아 배우를 캐스팅 했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라서. 그래서 바꾼 게 5학년이에요. 4학년이랑 5학년은 차이가 커요. 리액션이 다르거든요.

1~3학년 학생들은 리액션이 좋아요. 환상적이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해도 믿어요. 5~6학년은 믿지 않아요. 4학년은 그 중간이라 믿는 아이도 있고 믿지 않는 아이도 있어서 명은이의 감수성을 표현하기 좋은 나이 대라고 여겼어요.

승아 배우가 역할을 맡으면서 명은이의 톤이 좀 바뀌었던 거 같아요. 귀여움성 있고 당찬 느낌을 생각했는데, 승아 배우가 연기하면서 조금 더 리얼하고 현실감 있는 인물로 표현되었다고 봐요.

명은이는 글짓기에 소질을 보이는데요. 한 소녀의 이야기에서 글짓기를 핵심적인 소재로 가져온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영화는 성장영화이고 명은이가 세상을 탐구하는 도구가 글짓기에요. 교실에만 있는 명은이가 글쓰기를 통해 환경, 통일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안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게 돼요. 명은이를 넓게 성장시키는 것이자 진짜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것. 성장의 촉매제가 되는 게 글쓰기에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고요. 반장은 그럴 수 없는데 글은 써서 보상(상장)을 받잖아요. 아, 내 노력만으로도 성취할 수 있는 게 있구나. 정말 희망을 봤을 거 같아요. 희망과 동시에 가족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소재이기도 하고요.

다음으로 영화 속 캐릭터 한 명 한 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하는데요. 먼저 명은이의 담임 교사, 임선우 배우가 연기한 애란 캐릭터에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시나리오를 쓸 때 모든 등장인물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 기준이었어요. 단역, 조연까지 전부 다 말이죠. 미화되지 않은 인간 그리고 싶었어요. 어떤 인물이든지 사랑스러운 면과 단점이 되는 결핍 동시에 담고자 노력했어요.

애란은 어린 시절 우리가 보던 선생님 같은 측면이 있어요. 완벽하고 침착해 보여요. 제가 어른이 되어서 본 선생님들은 다 달라요. 어찌 보면 진짜 선생님들의 모습 본 거잖아요. 이 선생님(애란)도 아이들처럼 성장하고 싶어 해요. 교장선생님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명은이가 낸 아이디어를 자기가 냈다고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아이인 명은이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성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로 애란을 설정했어요.

어떤 영화감독님이 인물은 문에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창문에서 들어와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담임선생님이란 역할이 역사가 오래되었다 보니까 애란은 좀 다르게 등장시키고 싶었어요. 예상이 가능한 역할이라 등장부터 달라야겠다. 그래서 96년의 인물상은 고증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트렌디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나온 등장장면이 지각하는 거였어요. 이 선생님도 방황 중인가? 그래서 교실에 늦게 온 건가?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고 싶었어요.

다음은 정선 배우가 연기한 명은의 엄마, 경희 역인데요. 명은과 직접적인 충돌을 겪는다는 점에서 캐릭터 설정에 신경을 많이 쓰셨을 거 같아요.

경희는 아마도 어린 시절에는 명은이였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살아오면서 집안을 책임져야 하다 보니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변했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면서 자기 미래의 집을 위해 스크랩을 하는 희망을 지닌 인물이기도 해요.

장선 배우님 전작을 보면서 낯선 얼굴이라 생각했어요. 낯설고 되게 궁금한 얼굴. 장선 배우님 연기가 생경해요.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그런 분이 경희 역할을 하면 날것의 느낌을 주지 않을까. 엄마를 연기하기에는 젊은 배우 분이지만 이 날것의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장선 배우님이 캐스팅 되면서 추가된 부분이 많아요.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모니터를 보면서 좋았던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엄마 얼굴이 있는데, 또 모르는 엄마 얼굴도 있어서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해 주셨어요.

명은 아빠 성호 역의 강길우 배우는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주셨는데요.

몇몇 코믹한 장면들이 나오는데 코믹하게 연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찍은 게 아니에요. 인물을 한 명의 인간으로 그리다 보니까 그렇게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성호의 경우 손님한테 인정받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 부분을 설득력 있게 그리려다 보니까. 오늘은 잘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서럽게 느껴지고. 길우 배우님이 코믹을 줄 수 있지만 웃음은 확신을 가지면 안 된다고 여기고 촬영했어요.

극적으로 큰 전환을 주는 캐릭터가 명은의 친구 혜진인데요. 혜진 역의 장재희 배우와의 호흡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혜진이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명은이를 망치기 위해 온 구원자. 명은이가 가짜 승리를 성취한 순간에 딱 등장해요. 혜진이란 인물은 명은이의 세계를 항상 조각내는, 거친 폭풍을 몰고 오는 존재다 보니 명은이를 괴롭히죠. 하지만 결국 성장시키는 존재라고 봐요.

명은이도 캐릭터가 강한데 이에 대적할 만한 혜진이여야 하다 보니 캐스팅에 많은 시간 걸렸어요. 재희 배우의 가장 큰 장점은 노력이에요. 혜진이라는 인물은 말투부터 달라요. 생각이 딱 정리되어 있어요. 처음에는 재희한테 많은 디렉팅 줬어요. 다 스폰지처럼 흡수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어느 날, 완벽한 혜진이 되어서 왔어요. 나중에는 촬영장에서 크게 디렉팅을 할게 없었어요. 이미 본인이 온몸으로 다 체득했거든요.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냈어요.

혜진이를 쌍둥이 자매로 설정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혜진이를 왕따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전학 왔는데 왕따다. 이런 설정은 피하고 싶었어요. 예상되는 모든 걸 피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혜진에게도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쌍둥이 자매가 전학 왔다는 거 자체가 신비함을 주잖아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친구가 많고 사랑도 받고 싶은데 혜진이는 자매만 있으면 돼요. 어릴 때 이런 마음 가지기 쉽지 않잖아요. 12살 나이에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 이 친구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 혜진이한테 단단한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혜진이는 솔직하게 글을 쓰면 알아서 상을 준다고 하잖아요. 영화 촬영을 끝낸 지금도 솔직한 게 좋은 건지 선의의 거짓을 말하는 게 좋은 건지 고민이 되어요. 답이 정해진 게 아니라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를 만든 원동력이 이 질문이 아닌가 싶어요. 답을 보고 싶어서 솔직함의 극단인 혜진을 제대로 그리고 싶었고,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명은도 제대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이 두 캐릭터를 보고 관객 분들이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명은의 모습을 보면 다소 발칙한 부분도 보이는데요. 관객 분들이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극 속 명은이의 모습을 보고 관객 분들이 너무한 거 아냐? 그런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걸 좀 분위기를 귀엽게 그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유혹도 많았어요. 다만 명은이라는 인물에게는 설득력이 있었기에 그런 부분을 꾸미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관객 분들 반응이 더 궁금했어요. 가출 장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명은이 안에서는 치부를 들킨 수치심이 컸을 거 같아요. 그 잘못을 부모님한테 다 돌리고 보니 집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고 봐요. 나름 그 인물에게 설득력을 주고자 했어요. 때문에 관객 분들은 어떻게 볼지 궁금해요.

영화에 대해 기억에 남는 평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베를린영화제에 갔을 때 인상 깊었던 평이 있었어요. 관계자 분께서 영화를 애정 있게 소개해 주시면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스윗한데 스트롱하다.”라고 말씀을 주셨어요. 보통 아이가 아닌 어른에게 쓰는 표현이잖아요. 그 말이 12살 명은이를 존중해 주고 있다고 느껴져서 인상 깊었어요.

더해서 관객 분들이 명은이 이름을 불러주셨을 때. 실제 인물처럼 여기고 이 친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 주고, 명은이한테 위로를 받거나 감정을 이입해서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너무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비밀의 언덕’을 관람할 예비 관객 분들에게 영화의 포인트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그 시절 명은이들이 지금은 30~40대가 되었을 거예요. 아이도 있을 것이고 직장도 다니고 있겠죠. 그 명은이들한테 사랑을 받고 싶어요. 이 이야기에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명은이들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는 걸. 그때의 부끄러움 등의 감정에 대해 많은 수다를 나누셨으면 좋겠어요.

(이미지출처: 엣나인필름)

現 키노라이츠 편집장
前 씨네리와인드 편집장
前 루나글로벌스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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