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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인터뷰] ‘낮과 달’ 유다인, “나서서 매우 자랑하고 싶은 좋은 영화”

낮과 밤의 일교차가 극명한 가을의 어느 날. 낮에는 좀 덥고 밤에는 좀 추운 환절기다. 아침 이슬처럼 말간 배우 유다인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딕션 때문일까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 때문일까. 까칠하고 다가가기 힘들 것 같은 깍쟁이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얼굴이었다.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인 화법이 시원시원했고, 처음 만난 사이지만 가식 없어 보였다.

<혜화, 동>의 맑은 눈망울과 아스라한 혜화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벌써 10년도 더 된 영화인데도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유다인은 결혼 후 변화를 무척 달가워했다. 연기관이 바뀌고 안정감이 생겼다는 근황을 전해주었다. 남편 민용근 감독은 <소울메이트>로 바빠 고양이와 지내면서 안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낮과 달>은 운 좋게 코로나 이전 한 달 동안 촬영했다. “그땐 하루도 쉬지 못해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힐링이더라”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낮과 달>이 개봉하게 되었다며, 많은 관객과 만나길 희망했다.

문득 ‘너무 좋은데 어떻게 홍보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현장이 워낙 즐거웠고 그동안 보여준 모습과는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 전했다.

“제가 나서서 매우 자랑하고 싶고 좋은 영화인데 소문이 덜 나면 어쩌지 싶고 무거운 마음이 들었죠. 좀 더 인기 있고 인지도가 있었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커졌어요. 그런데 이런 마음은 어떤 영화가 개봉해도 그때마다 똑같이 들더라고요. (웃음) 인기 관리에 신경 쓰기보다, 저는 배우니까 꾸준히 작품이 들어오는 인지도만이라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낮과 달>은 30대의 마지막에 만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덧 올해 두 달도 채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쓸쓸해진다. 점점 나이 먹는 것에 두려움도 생길 것 같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떤 마음이 들지 궁금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 20대로 돌아가는 건 싫어요. 몇 년 전만 해도 앞자리가 바뀌는 거에 민감하게 굴었는데 (좋은 쪽으로) 얼굴이 바뀌는 걸 보고 나이 듦을 기대하게 되었어요. 뒤를 잘 안 돌아보는 성격이에요. 촬영이 끝났으면 당시에 최선을 다한 것에 후회 없이 말끔하게 끝내버려요.”

민희는 엉뚱하고 자기 마음대로다. 가끔은 아이 같을 때도 많다. ‘민희’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했을까. 실제 성격과 정반대 캐릭터를 연기할 때 일탈이나 자유로움이 생기리라 추측한다. 그는 낯을 심하게 가려 그 성격이 싫어 자책도 많이 했지만. ‘원래 이런 걸 어떻겠어’라고 이제는 쿨하게 인정해 버린다고 했다.

“민희를 두고 저와 친한 사람들은 ‘꼭 너 같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영화 속 캐릭터가 대부분 조용하고 진지해요. 꼭 맏이 같아 보여서 ‘유다인은 이럴 거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사실은 민희처럼 철없고 직설적인 면에 가까워요. 어둡고 진지한 역할을 해와서 이번엔 밝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민희는 제가 느끼는 대로 내뱉으며 했어요.”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라고 이미 지난 일에 후회하는 건 부질없는 일임을 일깨워 주었다. 과거에 사는 것보다 현재에 머물고 다가올 미래를 맞이하는 현실적인 가치관이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약간의 뒤끝(?)’이 있다며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솔직함에도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이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는 없었을까?

“직접 들은 적은 없는데 아무래도 툭툭 내뱉는 말투가 오해가 생기긴 했을 거 같아요. 예전에는 그게 신경 쓰였는데 이제는 뭐..신경을 덜 쓰게 되었어요. 하지만, 뒤끝 없어 보이지만 은근 뒤끝이 있어요. (웃음) 태경 역의 하경을 처음 만나는 바닷가 장면에서 상의 탈의 장면 기억하시죠? 그때 사실 “너 운동 안 하지”라고 말해놓고 집에 와서 이불킥하다 잠도 못 잤어요. 저도 모르게 의식의 흐름대로 말이 나온 거죠.”

목하의 아들 태경을 우연히 만나 남편이 부르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확신하며 집착하며 ‘남편의 유산’이라 말하는 심리에 공감하는지 물었다.

“이상하다고는 이해했죠. ‘나와 그이만 아는 노래를 어떻게 저 아이가 아는 거지..?’라고요. 태경 역의 하경 배우와는 촬영 때 같은 숙소를 썼었어요. 엄청난 연습벌레예요. 늘 기타 치면서 부르는 노랫소리가 BGM처럼 들렸어요.”

벌써 결혼 1주년이라고 한다. 부부는 <혜화, 동>에서 감독과 배우로 처음 만난 사이였다. 당시에는 사귀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불현듯 결혼하면 어떨까 생각에 먼저 프러포즈했다고 밝혔다. 너무 좋은 사람을 놓치기 싫어 용기를 낸 결과다. 돌직구 화법이 평생 인연을 만드는데도 기인한 걸까. 사랑하는 반려자를 만나 행복감에 취해있어서인지 인터뷰 내내 그 편안함이 보기 좋았다.

“업계 종사자와 인연을 이어간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지만. 결혼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요즘 더 들어요. 신랑을 만나 너무 다행이죠. 결혼 전에는 캐릭터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야기만 좋다면 작은 역할도 마다할 이유가 없어요. 신랑하고는 집에서 일에 관련된 대화도 많이 나눠요. 개봉 예정인 <폭로>는 신랑이 강력 추천했던 영화였어요.”

결혼이란 인륜지대사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유다인 배우는 분위기와 표정에서 해사한 모습이 드러났다. 좋은 사람을 만나 선한 영향을 받은 자만의 여유일지도 모른다. <낮과 달>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난 작품이라며 자랑했다.

“은지 언니는 오며 가며 인사만 하던 사이였죠. 이번 작품을 통해 친해지게 되었어요. 차가워 보이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전혀 다른 반대 성격이더라고요. 급 친해진 계기가 있었어요. 언니가 절 너무 예뻐해 주고 편하게 해줘서 민희와 목하의 관계가 재미있게 나온 거 같아요.”

<낮과 달>은 재작년 11월에 한 달쯤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그때의 추억과 분위기 먹었던 음식이 뇌리에 남아 있다. 두 사람은 영화를 통해 친해졌고 맛집도 다니고 시장 다니면서 장도 보며 빈티지샵가서 쇼핑도 했단다.

지금은 너무 편한 사이가 되었다며 상대방에게 영향 받는 일이 많다고 했다. 서로 가까워지기 전에 어느 정도의 텀,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잘 맞는 사람과는 빨리 친해진다고 전했다. 하지만 민희가 사랑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건 조은지 배우의 연기 스타일 때문이라며 칭찬 일색이었다. 상대방을 높이면 자신도 높아지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았다.

이영아 감독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고 싶어 시작된 영화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영아 감독의 아버지 경험이 담겨 있다고 한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GV 때만 해도 자전적인 서사가 아니라고 선 그었지만 개봉에 앞서 솔직하게 오픈했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연기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터적인 성향도 있는 것 같았다. 유튜브 ‘유다인’의 운영자이기도 하니까. 유튜브는 대부분 편안한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인터뷰 현장도 핸드폰으로 녹화하고 있었다.

“편집에 흥미가 생겨 시작하게 되었어요. 현장에도 편집 기사분이 와계시거든요. 그걸 지켜보면서 ‘유튜브나 해볼까’ 생각했던 거죠.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게 차분히 보여주면 어떨까 싶어서 가끔 업로드해요. 오늘도 편집하면 한 꼭지 나올 거 같아요. (웃음) 솔직히 전 자기애가 충만한 인간이에요. 자기애가 없으면 유튜브는 참 민망한 일 같아요.”

영상 편집에 관심 있다고 말해 혹시 영화 연출이나 시나리오에 관심있을까. 어쩌면 유다인 감독, 유다인 작가로 불릴지도 모른다.

“시나리오는 아니고 한두 줄 정도의 시놉시스 정도는 써봤지요. 참..안 되겠더라고요. 연기, 편집, 대본은 완전히 다른 영역임을 실감했습니다. (웃음)”

작품 고르는 눈이 생겼고 본인 스스로 집중력도 좋은 편이라며 앞서 말한 자기애를 증명했다. 셀프 칭찬이 보기 좋았다. 자기를 먼저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요즘 너무 편해졌다는 걸 실감해요. 사람들의 관계, 작품 하나 끝내고 나서 후유증도 사라졌어요. 예전에는 그게 일상까지 영향을 받았는데 끝나면 잊어버려요. 많이 웃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게, 이제는 좀 되더라고요.”

조은지 배우와의 팔씨름 장면이 영화의 주제와 둘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나리오에 준비된 문장대로 찍었지만 상대 배우인 조은지가 부드럽게 리드해 예쁜 장면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팔씨름하면서 계속 힘만 주고 있지 않았다. 약간의 속임수, 농담 따먹기 등 강약 조절이 포인트다. 감독도 배우도 그 장면에 공들인 티가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을 물었더니, 큰 계획은 없다는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올해 편안하게 마무리하고 무엇보다 건강을 강조했다. 혼자일 때는 늘 불안했는데 가족을 만든 후 어떤 상황에서도 날 믿어주는 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고 속삭였다.

민희는 남편의 죽음 이후 그늘이 생겼지만 우연히 목하를 만나 다시 태어난 듯 보였다. 목하의 이름에 ‘나무 목’자가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 나무가 주는 든든함과 힐링의 기운이 은은히 전해졌다. 목하와 태경을 만나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나무와 나무를 접붙이기 하면 하나의 개체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낮과 달>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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