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 오빠 레오 그리고 나 루비. 고요한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사람은 나다. 모두가 농인이라 어릴 때부터 수어 통역에 내가 빠질 수 없었다. 특히 고기잡이 하는 우리 집은 새벽부터 아빠와 오빠(다니엘 듀런트)와 함께 내가 꼭 쫓아가야만 했다. 들리지 않기 때문에 바다 위에서 신호를 들을 수 없고 위급한 순간이 다가와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새벽 3시만 되면 ‘오늘은 그냥 잘까..?’ 내적 갈등이 생긴다. 이제 적응될 만도 했는데 아직도 꼭두새벽에 일어나 바다에 나갔다가 학교 공부까지 하려니까 고단하다. 수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졸려서 미치겠다.
그래도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세상과 우리 가족을 연결하는 건 오직 코다(농인 가족 중 유일한 청인)인 나뿐이기 때문이다. 아빠(트로이 코처)와 엄마(말리 매트린)는 항상 가족끼리 뭉쳐야만 잘 산다고 말했다. 늘 가족과 모든 것을 함께 했고 나누었다. 독립적인 행동은 용납되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고, 친구도 사귀고 싶은데 사사건건 간섭이다. 이제 나도 클 만큼 컸는데 아직도 우리 집에서는 꼬맹인가 보다.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걱정되는지 부모님은 내가 상처라도 받을까 봐 매번 안으로 끼고돈다.
친구들은 화목한 우리 집이 부럽다고들 하는데 직접 살아보질 않아서 하는 얘기다. 사생활이라고는 요만큼도 없고 오히려 과하면 과했지 전혀 부러워할 게 못 되는 우리 집. 하다못해 아직도 부모님이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것까지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숙제에 집중 좀 하려고 하면 여기서 쾅, 저기서 쾅 시끄러워서 이어폰을 끼지 않을 수 없다. 나 빼고 모두 고요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인지 소음의 스트레스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도 어쩌겠나, 대신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목청껏 불러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 없으니까 된 거지 뭐.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지루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던 어느 날. 요새 이상하게 계속 눈에 들어오는 남자애가 있다. 이름은 마일스(퍼디아 윌시-필로). 걔 때문에 얼떨결에 합창부에 들어갔다. 노래를 배워 본 적도 제대로 불러본 적도 없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오디션을 보는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아 냅다 도망쳐 버렸다. 용기를 내서 어렵사리 다음날 음악 선생님(에우헤니오 데르베스)의 방을 찾았다. 내 노래를 듣고서는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맑고 고운 음색을 갖고 있다며 합격을 외치셨다. 그 애와 함께 할 수 있는 추억이 생겨 행복하다. 하지만 집에는 뭐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내가 노래를 좋아한다는 걸 알기나 할까.
사실 집에서 ‘그걸 왜 하게’라고 할 게 뻔하다. 무엇보다 고민이 앞선다. 오히려 들리지 않는 세상에 나 혼자 들리는 상황이 은근한 소외감까지 든다. 음악을 들어본 적 없는 가족들은 오히려 반대부터 하고 나섰다.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게 제일 좋은데 좀처럼 이해해 주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내가 잘못된 걸까. 화만 내는 엄마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노래
<코다>는 들리지 않는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청인 ‘루비(에밀리아 존스)’의 성장통을 중심으로 장애와 꿈, 가족애를 말한다. 올해 선댄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리메이크했다. 낙농업에서 어업으로 가족사업이 바뀌고, 오빠와 선생님의 비중이 두드러진 것이 포인트다. 두 영화 모두 잔잔하고 따스한 분위기 속 튀어나오는 유머를 겸비했다.
조용한 세상에서 커온 루비는 그동안 가족과 닮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자신만 같지 않아 늘 외로웠던 루비에게 음악은 삶의 빛이 되어주었다. 작은 빛을 따라 가는 길에 마법 같은 이정표를 제시해 준 선생님과 마일스를 따라, 노래하는 기쁨과 재능을 만끽하게 된다. 결국 선생님의 제안과 도움으로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를 얻게 되지만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강박은 루비를 세상 밖으로 쉽게 내보내 주지 않는다.
영화는 어른이지만 아직 미성숙한 십 대 루비의 도움이 절실한 상호의존적인 관계의 가족 구성원을 비춘다. 그때마다 발생하는 복잡한 감정과 선을 넘는 상황, 다사다난한 가족의 일상이 비장애인 가족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그려졌다. 흔히 어떤 사회 속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 그로 인한 부담감에 중요한 선택 앞에서 포기했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기도 한다. 똑같을 수 없지만 비슷한 어려움과 극복 속에서 ‘나라면 어땠을까’한 번쯤 곱씹어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코다>는 다채로운 연령대가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영화다. 십 대들의 꿈과 사랑을 고민하는 성장영화이면서도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가족영화이자, 음악영화로 다양한 포지션을 취한다. 특히 <라라랜드>의 음악감독 출신이자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연출자 션 헤이더의 연출로 맑고 고운 여름 풍경과 환상적인 음악 선곡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어 준다. 특히 여름이 끝나가는 요즘, 청춘으로 대변되는 여름과 절묘하게 교차하는 성장이 다음 단계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세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