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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 애니메이션의 경향 ‘경계와 난민’

우연히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본 장편 애니메이션 두 편의 공통 화두는 ‘혐오에 희생당한 경계인의 삶’였다. 영화를 보는 이유는 환상을 쫓는 일이기도 하지만 잘 몰랐던 타인의 인생을 알 수 있는 현미경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이 두 편의 영화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각각의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비슷하게 닮았다.

<남매의 경계선>에서는 모종의 침입으로 급히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남매를 통해 불편하고 슬픈 동화를 이끌어 간다. 제23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을 받았다. <조셉: 포로 수용소>는 공화주의자들이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정권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가다 난민 캠프 감시병 세르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 되었다. 둘 다 자발적이라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빚어진 위험하고 아픈 사연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 종교, 경제적 난민의 이동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반복되고 있는 잔혹한 역사 속에서 그들의 삶을 톺아보는 것이야말로 공감의 첫걸음이다. 여전히 깊은 혐오와 차별의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된다. 당신이 서 있는 경계는 어디인가?

‘조셉 바르톨리’의 수용소에서의 나날들

<조셉 : 포로 수용소>는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를 손자가 듣는 설정이다. 1939년 겨울 스페인, 내전으로 피난 가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각종 질병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영혼마저 갉아먹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프랑스에 도착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난민 수용소에서 또 다른 고난이 시작되었다. 그곳은 검고, 흰 것만 오로지 존재했다. 거칠고 난폭했으며 난민을 짐승처럼 다스렸다. 의사도 없이 간호사 한 명으로 버티고 있었다. 때문에 아프지 말아야 했고 아프다면 죽음까지 각오해야만 했다.

수용소의 감시병이었던 세르주는 우연히 곤경에 처한 조셉을 도와주며 몰래 우정을 쌓아 간다. 헤어진 약혼자를 찾는 조셉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특별한 감정을 나눈다. 포로와 감시병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말이다. 예술가 ‘조셉 바르톨리’를 캐릭터 해 망명 과정에서 있었을 법 한 일은 가상의 캐릭터 세르주를 통해 필터링했다.

극한 상황에서도 삶을 기록하고자 했던 용감한 조셉의 그림들은 영화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제대로 된 도구가 없어 연필로 선을 따라 그린 크로키가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풍기며 관객을 수용소 안으로 이끈다. 마치 소설 《동물농장》이나 그래픽 노들《쥐》를 떠올리게 하는 야만적인 간수를 풍자하는 날카로움이 돋보인다. 자유, 박애, 평등을 외치던 프랑스 혁명의 캐치플레이는 이곳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은 인간 이하의 행동과 조롱 섞인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난민을 괴롭힌다. 결국 조셉은 동료가 죽자 모든 것이 무너진 채 방황하지만 삶의 의지를 다지며 버텨 나간다.

영화는 초반의 어둡고 날선 형태를 지나 서서히 온기가 느껴지는 채도 높은 그림체로 바뀌면서 인물의 심 변하는 정서를 십분 반영했다. 그가 그려왔던 수많은 그림은 역사의 한 페이지 일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 있다는 방증이었다. 어떠한 탄압에도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던 최소한의 보루였을 것이다. 수용소 내 널리 펴져 있는 폭력, 굶주림, 공포 속에서도 인간성을 버리지 않고자 했던 사람들의 숭고함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훗날 조셉은 수용소를 탈출해 멕시코로 떠나 프리다 칼로, 마크 로스코, 잭슨 폴락 등과 교류하며 난민 예술가의 삶을 이어갔다. 슬프고도 특별한 이야기를 완성한 사람은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이 시사만화가였던 오웰이다. 그가 10여 년간 준비했던 장편 데뷔작으로 의미가 크다. 투박하고 거친 그림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라기 보다 그려진 영화, 그림의 힘에 천착한 영화다. 현대와 과거의 의미 있는 조우와 손자와 할아버지로 이어지는 세대교체가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떠도는 남매의 눈에 담은 것들



<남매의 경계선>의 원제는 The Crossing이다. 가로지른다, 교차한다는 뜻답게 살던 터전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다 국경을 넘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누나인 쿄나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행복한 던 가족은 어느 날 들이닥친 의문의 암살자들의 침입으로 급히 피난길에 오른다. 집은 불타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쿄나와 아드리엘은 세상에 오직 둘 밖에 남지 않은 피붙이이자 동지가 되어 안전한 땅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다.

남매는 부랑아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에서 머물다가 영문도 모른 채 어느 집에 입양된다. 그 집은 전체가 살아 있는 듯 감시하는 이상한이 감돌았고, 남매를 꼭두각시처럼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려 하는 병적인 부부로 인해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반항적이었던 아드리엘은 부부의 입맛대로 길들어져 스스로 생각조차 할 수 없이 무기력해지지만, 쿄나는 한결같이 반항하다 눈보라가 치던 날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남매는 숲에서 헤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다행히 쿄나는 마녀라 불리는 노파 집에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회복하게 된다. 영적인 교감은 물론 깊은 우정과 신뢰를 느꼈지만 쿄나는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있었다. 결국 동생을 찾아 길을 나섰고, 우연히 한 서커스단에서 극적으로 조우한다. 죽은 줄만 알았던 동생은 운 좋게 서커스단에서 거두어 주어 건강을 되찾게 되었고, 남매는 서커스의 일원이 되어 적응해나간다.

하지만 남매를 쫓는 무리로 인해 위기는 고조되지만 남매를 돕는 사람들이 있어 살아남게 된다. 영화는 짧게 요약하면 어쩔 수 없는 모험을 떠난 남매의 분투기다. 익히 <헨델과 그레텔>, <눈의 여왕> 등에서 등장한 바 있는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계에 도달한 분투를 재현한다. 하지만 회화적인 작화와 만나 한 폭의 유화 그림이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영화는 프로랑스 미알레 감독의 데뷔작으로 떠남을 강요받았던 사람들과 인위적으로 헤어진 사람들의 그리움이 가득하다. 실제 10명의 자식을 데리고 피난 길에 나선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진 아름답고 슬픈 가족사다. 국경을 건너려는 남매의 사연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한 뼘 더 성장한 인간 모두를 뜻하는 것만 같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도 반드시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비극 속에 빠진 인간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버리지 않는 한 해사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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