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민이 영화 ‘대외비’로 돌아왔다. 3월 기대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 작품은 ‘악인전’ 이원태 감독의 신작이다. 1992년 부산을 배경으로 정치판의 권력다툼을 그렸다. 이성민은 미스터리한 정치 실세 순태 역을 맡았다. 자신이 설계한 정치판에 해웅이란 변수가 나타나자 그를 짓밟기 위한 술수를 펼치며 강한 악의 기운을 선보였다. 지난해 최고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재벌집 막내아들’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연기 인생의 시작인 연극에 대한 애정까지. 배우 이성민의 이야기를 라운드 인터뷰를 통해 키노라이츠에서 들어봤다.
-‘대외비’를 처음 관람한 소감이 어땠는지
재밌게 봤어요. 이 영화가 2020년 크랭크인을 했어요. 시간이 좀 지나서 촬영한 기억이 가물가물 해질 때 다시 보니까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대외비’가) 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인 만큼 그 시대의 정서를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90년대 배경이 시대물이 되어 버렸네요.(웃음)
-이번 작품에서의 순태 역도 그렇고 고위직 전문이다
순태를 보니까 각이 엄청 잡혀 있더라고요. 이제는 좀 편안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웃음) 예정된 작품 말고 새로 들어가는 건 조금 풀어진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나면 기가 많이 빨릴 듯하다
꼭 그렇진 않아요. 캐릭터와 내가 매칭이 잘 안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감정적으로 소모가 많이 되어서 작업이 좀 힘들어요. 이럴 경우 많이 지치는 편이고 후유증도 있어요. 스트레스가 많아요. 그런 역할을 맡고 나서 건강검진을 받으면 다 나쁘게 나오더라고요.(웃음) 순태는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웃음)
-순태를 연기하면서 준비한 점이 있다면
순태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었어요. 전직이나 과거에 대해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라 오히려 연기하기 편했어요. 감독님한테 따로 캐릭터의 전사 같은 것도 묻지 않았어요. 어쩌면 순태 같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권력을 메이킹하는 게 아닌가 상상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따로 감독님께 제안 드린 건 해웅이랑 대립하는 장면에서 ‘정치를 하면 영혼을 팔아야 돼’ 하고 저는 다리를 잡는 장면. 순태가 정치판에서 올라가기 위해 희생한 게 있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재벌집 막내아들’ 진양철과 순태가 비슷한 캐릭터이지 않나
아니, 완전히 다른 캐릭터 입니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앞서 제작보고회 때 이 질문을 받았는데. 진양철이 생각난다고 해서 (영화를) 유심히 봤어요. 혹시라도 비슷한 부분이 있나 해서. 제가 보기에는 다행히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다만 몇몇 컷들은 앵글이 비슷해서 좀 놀랐어요. 순태 정면샷이 ‘재벌집 막내아들’ 진양철 같아서 약간 뜨끔하더라고요.(웃음)
-‘재벌집 막내아들’로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기분 좋았죠. 함께 출연한 많은 배우 분들이 다 잘 되어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이거 (인기가) 한 달 가겠다 했습니다. 정말 지금은 조용하잖아요.(웃음) 요즘은 길어야 한 달입니다. 작품이 큰 사랑을 받은 건 그들(상류층) 삶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원작이 판타지 장르이긴 한데, 감독님께 너무 판타지로 그리진 말자, 조금 더 리얼하게 해보자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그들 삶에 대해 모르지만 좀 더 다르게 가보자고 했고, 역할도 그렇게 표현하려고 애를 썼어요. 그런 점이 기존 재벌 드라마와 다른 부분, 시청률에 큰 도움이 되는 호기심을 자극한 지점이었다고 봐요.
-사투리 연기는 어떻게 준비하는지
영화 배경은 부산인데 순태는 부산보다 대구에 가까운 사투리를 구사해요. 보통 배우 분들이 감정과 사투리 모두 완벽했으면 하는 마음에 타협을 잘 안 해요. 저는 ‘공작’ 때 적당히 타협 했어요. 사투리에 너무 신경을 쓰면 내 연기를 못하겠더라고요. ‘대외비’도 그렇고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는 영화가 많은데 그 매력에 대해서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뭔가 감정표현이 솔직하다고 할까요. 싫고 좋고의 표현이 명확하고 말이 강한 편이라는 게 경상도 사투리가 가지는 특징인데 이런 부분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닌가 해요. 대구는 사투리가 더 어려워요. 대구 사투리 완벽하게 구사한 영화는 ‘수성못’ 딱 한 편 봤어요. 그 작품은 감독님이 대구분이시더라고요.
-OTT 작품도 다수 출연 중인데
지금 ‘형사록’ 시즌2 준비 중입니다. 요즘 OTT가 작품을 워낙 잘 만들다 보니 배우들 입장에서는 좋아요. 다만 역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 분들이 줄은 건 확실하다고 봐요. 더해서 콘텐츠가 많아지다 보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작품도 꽤 되어요. 그런 부분이 걱정스러워요. 이러다 시장이 위축되어서 작품이 적어지는 건 아닌가. 이런 부분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봐요.
-박찬욱, 봉준호 감독 영화에는 아직 출연한 적이 없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불려줘야 출연하죠.(웃음) 송강호 배우 추천으로 오디션은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박쥐’라는 박찬욱 감독 작품이었는데. 캐스팅이 안 되었어요.(웃음)
-연극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연극을 많게는 1년에 7편을 했어요. 작년 겨울에도 하고 싶었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포기했어요. 연극은 시간을 절대적으로 써야 해요. 그 시간을 온전히 투자해야 해서 병행이 불가능해요. 연극을 하는 이유는 관객과 직접 만난다는 점 때문? 그때 생기는 새로운 에너지 같은 게 있요. 그 매력 때문에 연극을 하고 싶고, 다시 재정비를 하는 느낌이 들어요. 한 작품을 1~2달 매일 연습하는데 틀어져 있는 제가 바로 잡히는 기분입니다.
극단 공연을 하면 개런티를 적게 받아요. 수익을 역으로 계산해서 후배들 위주로 챙겨줘요. 우리 선배들도 다 그랬어요. 인류가 시작된 이후로 연극은 항상 가난했어요. 알 파치노는 지금도 연극을 해요. 할리우드 쟁쟁한 배우들이 센트럴파크에서 무료로 공연을 한다는데 그런 게 참 멋지더라고요.
-운명적인 작품이 있다면
드라마 ‘골든타임’이죠. 제 팔자를 바꿔준 작품. 백상예술대상에 처음 초청을 받았을 때 제가 여기 앉아있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이때 제 인생은 작품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영화를 많이 보여주셨어요. 꼭 TV로 ‘주말의 명화’를 함께 보면서 잠에 들었어요. 그 영향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영화에 관심을 가졌고 연기자를 꿈꿨어요.
80년대 후반에 경상북도 영주시에 10년 된 극단이 있었다는 것부터 신기한 일이고, 그때 전화를 받은 누나 분이 친절하게 응대해 주셔서 극단에 들어갔어요. 그렇게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죠. ‘골든타임’의 경우 ‘파스타’의 권석장 감독님이 기회를 주셨어요. 제가 영화 ‘고고70’ 이후에 코믹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어요. ‘파스타’ 설준석 캐릭터도 그랬고요. 헌데 이 감독님이 제게 ‘골든타임’ 최인혁 역을 제의해 주셨어요.
당시에 ‘아랑사또전’이란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코믹한 캐릭터 역할이 같이 들어왔었어요. 절 보는 시선이 달랐던 거죠. 권 감독님을 만나면서 배우로 제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가 생겼다고 봐요.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상 소감 때 이 이야기를 했어요.
사진제공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