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왕국으로 유명한 일본이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의 등장에 오랜 시간 갈증을 느낀 이유는 분명하다.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상징하며 위상을 높여줄 인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중심이 되어 이뤄낸 지브리의 브랜드 네이밍과 영향력을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의 뒤를 이어 세계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높여줄 유력한 감독이 있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다. ‘너의 이름은.’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해 명성을 얻은 그는 ‘날씨의 아이’ 역시 흥행에 성공하며 굳히기에 나섰다. 그 절정이 ‘스즈메의 문단속’이다. 일본 내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경쟁을 펼치며 천만 관객을 돌파에 성공, 세 작품 연속 천만 관객의 기록을 세운 신카이 마코토다. 전 세계 199개국 개봉을 확정하며 그 높아진 명성을 입증했다.
이 작품은 세 가지 측면에서 왜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이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는 영상미다. ‘빛의 마술사’라는 별명처럼 사실적이면서 화려한 묘사로 영상미 하나만으로 높은 만족을 자아낸다. 국내에 처음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을 알린 ‘초속 5센티미터’를 비롯해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등의 작품이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다.
영상미의 절정이라 평가를 받았던 ‘언어의 정원’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스즈메의 문단속’에 열광할 것이다.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감독답게 스즈메와 소타가 여행하는 일본 전역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일본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다. 폐허를 기반에 둔 어두운 표현 역시 능숙하다. 클라이맥스의 경우 ‘날씨의 아이’에 버금가는 영상미로 감탄을 자아낸다.
다음은 깊은 여운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자신만의 서정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왔다.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로맨스에 기반을 두며 시공간을 비롯해 다양한 이유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또는 살아가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초기 ‘커플 브레이커’라는 말을 들을 만큼 가슴 아픈 사랑을 그렸다면, ‘너의 이름은.’ 때부터는 커플 매니저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이런 공식은 반복된다. 간호사를 꿈꾸는 시골소녀 스즈메와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는 토지시(무당) 소타는 ‘문’을 계기로 만나게 된다. 스즈메의 첫사랑도 잠시, 소타가 의자로 변해버리면서 그를 되돌리고 문에서 빠져나올 재앙으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어찌 보면 혹독한 첫사랑과 아픈 성장담을 그린 영화는 신카이 마코토의 초기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세 번째는 미래세대를 위한 메시지다. 명성을 얻은 예술가는 어느 순간부터 사회를 위한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부여받는다. 신카이 마코토에게 그 시작은 ‘너의 이름은.’이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은 두 주인공에게 미래세대의 희망을 부여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주제의식만 보면 ‘날씨의 아이’의 확장에 가깝다. 다만 그 색깔이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를 강하게 조명했다.
지진은 문 너머에서 오는 재난이며 이 문은 폐허가 된 공간에 나타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선대에게 물려받은 게 아닌 후손에게 빌린 것이다’라는 인디언의 격언처럼 자연과 토지는 인류를 위해 지켜야 할 자원이다. 대지진 이후 후대가 살 수 없는 폐허가 되어버린 공간에서 느껴지는 좌절과 공포를 담아냈다. 이를 이겨내는 희망과 가능성을 미래세대를 통해 말하며 가슴 뛰는 드라마를 다시 한 번 선보인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기존 신카이 마코토의 장점이 정점이 이른 건 물론 자신만의 포인트도 지니고 있다. 바로 마스코트 다이진이다.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귀여운 캐릭터를 더하며 상업영화로 더 강력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너의 이름은.’이 국내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2위를, ‘날씨의 아이’가 국내 최장기 극장상영 기록을 보유하는 등 한국이 사랑하는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이란 점에서 재패니메이션 열풍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