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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에게 건네는 노래, ‘라디오 가가’

‘Radio Ga Ga’란 노래를 하루에 얼마나 듣는지 모르겠다. 각종 방송에서, 거리에서, 심지어 신년회의 장소에서도 듣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신화적인 흥행이 이어지며, 너도나도 프레디 머큐리를 자처한 덕이다. 퀸의 ‘Radio Ga Ga’는 밀려나는 라디오 매체를 추억하는 노래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자리를 잃어가는 라디오를 향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는 곡으로 ‘버글스’의 ‘Video Killed Radio Star’ 등과 함께 세대의 변화를 묘사했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할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이하 <랄프 2>)도 유사한 걸 말한다.

<랄프 2>는 동네 오락실에서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공간으로 시공간을 확장했다. 전작의 리트왁 오락실도 현재를 배경으로 했고, 오래된 게임의 퇴장이 다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주먹왕 랄프>가 보여준 오락실은 새로운 문명과의 충돌을 비교적 비껴간,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이 ‘와이파이’ 덕분에 현재의 시간에 올라탄다.


0과 1의 세계를 이미지로 표현하다

<랄프 2>는 0과1의 조합으로 운영되는 네트워크의 움직임을 창의적인 상상력으로 이미지화한다. 검색기능, 배너 광고, 인기 동영상의 확산 등 우리가 일상에서 클릭, 혹은 터치로 진행하는 과정을 의인화하여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인터넷 세상을 관찰하는 랄프(존 C. 라일리)와 바넬로피(사라 실버맨)가 인터넷을 전혀 모르는 여행자란 것이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어른의 세상을 서술한 소설이 가지는 장점처럼, 관객은 랄프의 입장에서 어떠한 편견 없이 순수한 입장에서 인터넷을 바라볼 수 있다. 이 시점으로 <랄프 2>는 화려한 인터넷 세상이 가진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본다.

우선 그들에게 인터넷은 이제는 팔지 않는 ‘슈가 러쉬 운전대’ 등을 구할 수 있는 만물 창고다. <랄프 2>는 온라인의 유용성을 운전대 에피소드로 말한다. 그리고 바넬로피에게 인터넷은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리트왁 오락실의 삶은 태양의 주기에 따라 같은 일이 반복되고, 예측을 벗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의 기계 및 오락실이라는 공간을 떠날 수 없는 닫힌 세상이다. 이와 비교하면, 인터넷은 시공간의 제약이 없고,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는 능동적인 공간이다. 오락실의 닫힌 삶이 따분했던 바넬로피에게 인터넷은 설렘을 주는 공간이다.

이와 반대로 <랄프 2>는 인터넷 공간의 어두운 면도 담았다. 스팸 배너를 시작으로, 버즈 튜브의 인기가 자극적인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모습은 유튜브로 대표되는 현대 인터넷 풍속도를 꼬집는다. 특히, 랄프가 댓글의 방에서 좌절하는 장면의 미장센이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메시지로 쌓아 올린 거대한 벽으로 댓글의 위압감을 표현해냈고, 그 한 가운데서 홀로 서 있는 랄프의 고독한 모습을 통해 상처받은 자의 모습도 담았다. 이렇게 <랄프 2>는 인터넷을 모르는 제 3자의 객관적인 눈을 통해 인터넷의 다양한 면을 보게 한다. 여기서 말한,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는 <랄프 2>의 중요한 테마인데,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바넬로피의 새로운 영웅과 탈주

리트왁 오락실과 인터넷이 대비되듯 랄프와 바넬로피도 상반된 성격을 가졌다. 현재의 안정적인 삶을 완벽하다 느끼고, 여기서 행복을 찾는 랄프와 늘 새로운 자극을 찾는 바넬로피는 성향이 완전 반대다. 사실, 전편부터 바넬로피는 리트왁 오락실의 별종이었다. 그녀는 왕권을 거부하고 드레스를 벗으며, 형식적이고 설계된 삶을 거부했다. 설정된 프로그램을 거부하는 건 명백히 에러이지만, 그 에러가 그녀를 더 그녀답게 했다. 하지만 그녀의 세상엔 분명 독이었다. 슈가 러쉬의 프로그램에 없던 ‘새로운 지름길’은 바넬로피에겐 도전 과제였지만, 그녀가 속한 세계를 셧다운 시키는 위협 요소였다. 바넬로피는 변종이었고, 그녀를 위한 새로운 무대가 필요했다. 그녀를 품기엔 슈가 러쉬와 리트왁 오락실은 너무도 좁다. 전편부터 그녀가 ‘슈가 러쉬’를 떠나는 건 예정된 일이었다.

바넬로피에게 인터넷은 자신의 잠재성을 꽃 피울 공간이다. 그곳엔 그녀가 찾던 자유로운 트랙, ‘슬로터 레이스’가 있다. 여기서 바넬로피가 걸어갈 길을 열어주는 ‘섕크’는 그녀의 새로운 영웅이라 할만하다. 전편에서는 랄프가 그녀를 오류에서 벗어나게 하고 정체성을 찾아준 영웅이었다. 이번엔 섕크가 그녀를 열린 세계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바넬로피는 제약이 없는 트랙에서 예측할 수 없는 레이스를 펼치며, 스릴을 느낀다. 그녀에게 불확실성은 설계된 알고리즘이 주는 확실성보다 더 확고한 삶의 가치다. 여기서 섕크의 목소리를 맡은 배우가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였던 <원더우먼>의 갤 가돗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하지만 랄프에게 섕크는 바넬로피를 유혹하는 사탄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랄프는 바넬로피에게 모든 걸 해주려 했고, 언제나 함께 하는 게 우정이라 믿는다. 여기서 랄프과 관점을 바꾸는 과정에도 앞서 말한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가 등장한다. 앞서 관객이 인터넷 세상을 랄프와 바넬로피를 통해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했듯, 랄프는 집착이란 광기가 바이러스가 된 모습을 보며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거울을 보듯 자신을 마주하며 반성한다. 후반부 거대한 자신의 바이러스에게 외치는 소리는 자신에게 던지는 반성의 목소리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랄프는 사랑한다면 보내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랑의 방법을 배웠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육아에 있어 아이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방법 중에 자신이 했던 행동을 찍어 보여주는 게 있다.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기회를 주는 것인데, <랄프 2>엔 이런 객관화한 시도들이 많다. 앞서 언급한 인터넷과 랄프를 보는 장면에서 각각 사용되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찾을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디즈니의 공주들이다. 공주들이 바넬로피에게 말하는 ‘공주의 조건’엔 “위기의 순간 남자가 일을 다 해결해주니?”라는 항목이 있다. 디즈니의 프린세스들이 그들의 모습을 타자화해서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 고전적 공주들을 비꼬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런 과감한 발언을 디즈니의 공주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그들의 목소리로 듣는 장면이라 낯설면서 놀랍다.

프린세스들은 드레스를 거부하고 티셔츠를 좋아하는 장면부터, 이 시대의 공주들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들은 활동적인 걸 선호하고, 더 능동적인 인물들이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프린세스들은 덩치 큰 남자 랄프를 구하면서 고전적 모습에서 진화했음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을 지키는 걸 넘어, 타인을 구할 수 있는 영웅으로 성장한 모습이다. 이 장면에 비판을 가한 평을 꽤 목격할 수 있었는데, <랄프 2>에서 바넬로피가 유일하게 변화시킨 친구들이 ‘어디에 도착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또한, 단순한 저작권 자랑을 넘어, 프린세스들의 이미지로 메시지를 더 풍부하게 해준 면도 있다. 이렇게 디즈니는 자사의 캐릭터들을 통해, 그들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변화한 시대상과 여성상을 반영해냈다.


아버지와 딸의 이미지

많은 영화에서 성장은 이별과 함께 온다. <랄프 2>의 바넬로피도 랄프로 대표되는 오락실과 이별하며 꿈을 찾고 성장한다. 그녀는 반복되는 프로그램을 넘어, 앞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세상으로 갔다. 이 이별은 한 문명, 테크놀로지와의 작별로 보이는 동시에, 아버지와 딸의 이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랄프와 바넬로피는 아저씨와 꼬맹이로 서로를 부르는 친구인데, 몇몇 장면에선 부모와 자식의 이미지가 겹쳐 보인다.

전편에서 운전을 가르치는 씬부터 꺼내 봐야 한다. 운전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뒤에서 차를 밀던 랄프의 모습을 보자. 차를 붙잡고, 균형을 잡게 도와주던 랄프는 시간이 지나, 손을 놓고서 바넬로피가 운전하는 걸 바라본다. 이때 랄프의 모습은 자전거 타기를 처음 가르치는 부모의 모습과 닮았다. 이럴 때 부모는 아이가 제품에서 벗어나,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설 수 있다는 걸 보고 뭉클함을 느낀다고 한다. 여기서도 이별과 성장의 모티브가 있는 셈인데, 여러 가지로 성장은 이별과 함께 온다.

<랄프 2>에선 자녀를 보내기 싫은 부모의 심리도 보인다. 랄프는 예측이 가능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그리고 늘 바넬로피와 함께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녀가 겪는 문제 대부분을 자신이 나서서 직접 다 해결해주려고 했다. 그에게 섕크로 인식되는 인터넷은 바넬로피가 있기엔 위험한 곳이다. 그래도 랄프는 결국, 바넬로피를 인터넷으로 떠나보낸다. 그가 그녀의 인생을 통제할 수 없고, 그녀도 홀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후 랄프는 바넬로피와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고, 휴가에만 잠깐 볼 수 있다는 설정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도 고향에 남겨진 부모와 멀리 떠난 자식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랄프’에게 ‘라디오 가가’를…

<랄프 2>를 향한 비판 중엔 ‘세계관의 붕괴’ 및 ‘1편에서 보였던 감수성의 실종’ 등이 있다. 그리고 아웃사이더의 심리를 잘 표현했던 영화의 따뜻한 시선도 사라졌다 말하기도 한다. 전편이 고전 게임의 감수성과 특징을 잘 살린 것에 비해, ‘인터넷’으로 넘어오면서 ‘주먹왕 랄프’만의 색깔이 옅어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랄프 2>는 그런 레트로한 감성을 버리면서 두 캐릭터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따지고 보면, 하나의 캐릭터의 성장이다.

랄프는 전편에서 이미 인사이더가 되었기에, 아웃사이더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끝난 일이다. 전편의 엔딩에서 가장 불안한 상태였던 건, 닫힌 세상에서 너무도 개방적인 사고관을 가졌던 바넬로피다. 그녀는 ‘리트왁 오락실’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고, 이 공간을 탈주할 것이 필연적인 캐릭터였다. 전편에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넬로피의 미래뿐이었다. <랄프 2>는 구세대의 공간에서 신세대의 소녀가 탈주에 신세계로 가는 이야기다. 랄프는 성장보다는 바넬로피와의 이별을 수용하며, 성숙해진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랄프 2>는 전편보다 세계관이 확장되었고, 볼거리는 더 화려해졌으며, 이야기가 품고 있는 메시지는 더 성숙해졌다. ‘디즈니’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야기의 내외적인 요소가 모두 성장한 성공적인 속편이다. <인크레더블 2>가 그랬듯 디즈니의 2편은 원작보다 더 많은 걸 해내야 한다는 속편의 숙명을 너무도 잘 해내고 있다. 그런데도 <랄프 2>와 바넬로피의 성장을 보며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이 영화는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잔뜩 묻어 있다. 아마도 영화의 중심에 있던 ‘이별’이라 주제 탓이 아닐까.

이 영화는 ‘랄프’라던 유사 아버지가 ‘섕크’라는 사회학적 아버지(혹은 어머니)에게 자리를 내어준 서사다. 랄프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와이파이와 겨뤄야 하는 리트왁 오락실도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단종된 운전대 등을 통해 <랄프 2>는 오락실이라는 한 세대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전성기가 지난 오락실이 인터넷이라는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을 담았다. 랄프라는 캐릭터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리트왁 오락실’의 오락기들은 퇴장이 임박했다.

그 덕에 요즘 거리에서 들려오는 ‘Radio Ga Ga’는 랄프와 그 친구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응원의 노래로 들렸다. “오랜 친구여 우리를 떠나지 마. 넌 너의 전성기가 있었고, 힘이 있었지. 하지만, 아직 최고의 순간이 오지 않았어.” 디즈니는 이들에게 어떤 최고의 순간을 남겨두고 있을까.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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