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 속에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론칭한 디즈니플러스는 말 그대로 부진에 빠졌다. 11월 12일 론칭 당일 일일 모바일 이용자수 59만 명을 기록했으나 같은 달 21일 40만 명으로 급감했다. 2022년 1월에는 23만 명까지 떨어지며 웨이브 등 국산 OTT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를 기록 중이다.(자료: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 집계) 론칭 초기 자막문제나 첫 달부터 가입비를 받는 등 마케팅 문제가 있었으나 가장 크게 지적된 문제는 오리지널 콘텐츠였다.
넷플릭스가 한국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의 성공에 있었다. 넷플릭스의 국내 가입자 수가 크게 증가했을 때를 보면 <킹덤>, <오징어 게임> 등 한국 콘텐츠의 흥행이 뒤에 있었다. 디즈니플러스는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준비했다고 하지만 예능인 <런닝맨> 스핀오프, <뛰는 놈 위에 노는 놈>을 제외하고는 다른 콘텐츠를 공개하지 않았다. <너와 나의 경찰수업>은 디즈니플러스가 처음 공개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다.
< 너와 나의 경찰수업>을 첫 공개작으로 택한 건 다소 의외라 볼 수 있다. 독점 공개작이었던 <설강화>가 외적인 논란으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했고, 모바일 이용자수가 많이 떨어지며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첫 번째로 내놓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1월 26일을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2편씩 공개 중인 <너와 나의 경찰수업>은 디즈니플러스의 마케팅에 다시 한 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이 작품은 경찰대학을 무대로 청춘들의 꿈과 사랑, 도전과 패기를 담은 청춘성장 캠퍼스 드라마다. 총 16부작으로 기획되었으며 현재 4화까지 공개가 되었다. 이 회차까지의 주된 내용은 경찰대학에 입학한 청춘들이 혹독한 입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승현과 은강을 비롯한 경찰대 입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다. 이들이 직면한 문제는 가혹한 훈련이다. 작품의 훈련은 군대보다 더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
얼차려를 넘어서 야구배트로 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문제로 신입생들과 선배들, 경찰학교 교수들이 겪는 갈등이 핵심적인 초반 스토리로 전개가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리듬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장르는 어디까지나 청춘 드라마다. 이에 맞춰 아이돌 스타 강다니엘과 청춘물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채수빈을 각각 승현과 은강 역으로 캐스팅을 했다.
청춘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패기를 보여주기 위해 경찰대학 내부의 강압적인 폭력을 택했다면 다소 아쉬운 결정이라고 본다. 이 작품의 설정은 80~90년대에 통할 법한 구성이다. 중장년층을 노린 드라마였다면 이 내용에 공감했을 것이다. 허나 현대의 청춘들에게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는 대학이란 설정은 다소 과장되게 다가온다. 이는 최근 청춘물의 주된 플랫폼인 웹드라마의 흐름과도 거리가 있다.
요즘 청춘물의 추세는 공감이다. 해당 상황에서 주인공의 선택과 감정이 내 공감을 가져올 때 큰 인기를 얻는다. 이 작품이 선보이는 상황은 극단적인 건 물론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다. 더구나 이 상황을 극복해내는 과정이 학생들이 다 함께 힘을 합쳐 훈련을 거부하는 모습이란 점은 판타지에 가깝다. 작품이 보여주는 코미디 역시 전체적으로 과장되고 오글거린다는 점에서 여전히 청춘물의 공식은 오글거리는 것이라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가 더 불안한 건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의 간극에 있다. 이 작품 속 캐릭터들의 성격은 시트콤에 가깝다. 엄친아 위승현과 초반 한정 빌런 기한나를 제외하고는 주인공 캐릭터들이 코믹하고 들뜬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다소 무겁다. 도입부 특별출연한 곽시양이 의문의 존재들을 피해 도망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부터 경찰대가 외부적으로 받는 폐교 압박까지 무게감이 상당하다.
이 무게감이 상당한 이야기가 풀리는 방식은 시트콤처럼 가벼운 인물들이 오글거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가벼운 청춘물이라면 시트콤 같은 캐릭터가 반갑다. 허나 이들을 둘러싼 무거운 문제가 이런 방식으로 풀려간다면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이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를 선보인 영화가 있다. 바로 <청년경찰>이다. 이 작품 역시 시트콤 질감의 두 주인공이 무거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았다.
차이라면 외부와 내부의 차이다. <청년경찰>은 두 주인공이 우연히 사건과 마주하며 내부의 세계에서 외부를 향한다. 이들의 열혈과 정의가 외부의 악을 깨뜨리는 구성을 취한다. 반면 <너와 나의 경찰수업>은 내부의 세계에 문제가 있다. 내부를 무조건적인 악으로 규정할 수 없기에 무엇이 정의인가 하는 복잡한 문제를 제시하는데 이를 풀어가는 과정은 청춘물의 정의감으로 단순하게 답을 던진다.
구성부터 <청년경찰>은 열혈 청춘 두 명이 악을 깨부순다는 단순함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영화라 비교적 단순한 구성으로 이야기 전개가 가능하다. 반면 <너와 나의 경찰수업>은 색깔은 청춘물이고 싶은데 다양한 문제도 담고 싶다. 이 간극을 폭력 등 과장된 형태의 자극으로 대체하려다 보니 리듬감이 제대로 잡히지 못한다. 강다니엘과 채수빈을 비롯해 젊은 배우들이 매력을 선보일 공간 역시 확보하지 못한다.
디즈니플러스가 왜 이 작품을 첫 작품으로 택했는지 의문이다. 청춘물이란 점에서 구독자층의 니즈를 충족시킬 범위가 좁다. 그렇다고 입소문을 탈 만한 완성도를 지니지도 않았다. 강 다니엘의 첫 연기 도전으로 화제성을 모으기도 부족하다. 이 점을 언급하는 이유는 디즈니플러스에는 <그리드>라는 화제를 모을 만한 작품이 차기주자로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2월 16일 공개를 앞둔 <그리드>는 <비밀의 숲>의 이수연 작가와 서강준, 김아중이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여기에 김성균이 오랜만에 악역으로 돌아온다는 점, 액션 장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이시영이 미스터리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화제를 모을 만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마케팅에 따라 넷플릭스 <킹덤>처럼 스타작가와 인기배우, 국내에서 보기 힘든 장르물이란 점으로 어필할 수 있었음에도 차기로 미뤘다.
디즈니플러스의 시작점은 넷플릭스와 다르다. 넷플릭스는 OTT가 지금처럼 과열경쟁에 접어들기 전 시장을 펼쳤고 다수의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왕국을 완성했다. 반면 디즈니플러스는 이미 형태가 갖춰진 시장 안에서 파이 빼먹기를 시도해야 한다. 물론 작품의 성공에 따라 판도가 달라지는 게 OTT 시장이다. 허나 지금과 같은 모습을 디즈니플러스가 계속 보인다면 구독자들이 언제까지 인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