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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교살자> 두 여성 기자가 본 연쇄 교살 사건의 진실

디즈니플러스로 공개된 영화 <보스턴 교살자>는 1960년대 미국 보스턴에서 시작된 연쇄 교살 사건을 추적한 두 여성 기자의 공조를 그려냈다. 남성 형사의 시각으로 그려낸 리처드 플라이셔의 <보스턴 교살자>(1968)로 만들어진 전례가 있는 영화다. 미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유령 같은 교살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로레타(키이라 나이틀리)와 진(캐리 쿤)의 집념과 의기투합이 극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하는 스타일은 <스포트라이트>의 분위기를 따른다. 두 기자가 마치 형사나 탐정처럼 따라붙어 긴장감이 고조된다. 13명의 피해자를 만들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리무중인 답답함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제목처럼 질식할 것만 같은 숨 막히는 분위기가 내내 유지된다.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에 영감받았다는 1962년 ‘보스턴 연쇄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도 <큐어> 때 참고했다고 말했던 만큼, 여러모로 잔인성과 미스터리함을 품고 있는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로파일러가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해 불가한 사건과 범인을 이해하기 위해 프로파일링이 도입되었다. 인간의 가장 두려운 공포 ‘무지’에 대항하기 위한 의도에서다.

새로운 시각, 두 여성 기자가 본 범죄

영화는 형사의 관점이 아닌 여성이자, 엄마, 기자의 시선과 심층적인 분석이 가미되었다. 언론사 레코드 아메리칸 생활부에서 근무 중이던 로레타는 잔혹한 살인 수법으로 희생된 여성 사건을 발견하고 흥분한다. 몇 번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기에 주목하고 있었고, 유사성을 직감해 상부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취재직이 아니었던 탓에 난항을 겪었으나 저널리즘 정신을 발휘해 누구보다 열심히 발로 뛰며 기사를 작성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낮에 혼자 사는 노인집을 노린 평범한 살인마는 대범했다. 스타킹이나 스카프로 목 졸린 채 죽어있는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교살한 흔적은 상상을 초월했다. 목에 나비매듭이 지어 있어 마치 장식한 선물 같았다. 깔끔한 범행, 과시하는 듯한 현장이다. 범인은 침착했으며 여성들이 의심하지 않을 만한 외모의 남성으로 추정되었다.

단독기사는 중요 사건으로 떠올라 전담팀을 꾸려 파트너 진과 함께 심층 취재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포부와 의욕에 비해 일은 다소 지지부진했다. 사건을 키우기 싫어하는 경찰청과 시 당국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좌절을 느끼고야 만다. 여성은 이 사건의 정보를 얻어야 하나 언론이 차단하려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범인이 잡히지 않고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 다른 지역에서 유사 사건이 일어나 혼란을 부른다. 건물에 문제가 생겼다는 남성을 정비공으로 믿어 현관문을 열어 준 결과다. 그가 입고 있는 옷 색깔 때문에 ‘그린맨’으로 불리거나, 모델 캐스팅을 핑계 삼아 ‘메저링맨’이란 별명도 붙었다. 처음에는 노인을 대상으로 했지만 지역을 넓히고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삼아 변주해갔다.

모방범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지만 쉽게 단정할 수도 없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로레타와 진은 끈질긴 집념과 날카로운 추리력, 예리한 지성, 대범한 추진력을 총동원해 희생자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세상은 쉽게 여성의 성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건을 키우기 싫어하는 경찰청과 시 당국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좌절을 느끼고야 만다.

그러나 둘은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며 시너지를 이룬다. 서로 정반대의 성격 탓에 갈등을 겪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의지하며 결국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여성의 활약을 무시하기 바쁜 세상에, 예상치 못한 결과로 큰 반향을 이룬다. 외압에 포기하지 않고 후속 기사를 내며 심각성을 알리는데 일조한다.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

진실을 가리는 편견에 맞서 서로를 믿고 끝까지 싸운 로레타와 진은 누군가의 작은 관심으로 인생이 통째로 달라진 공통점이 있다. 어릴 적, 재능을 알아봐 준 우연으로부터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솔직한 고백은 뭉클하다. 이제 둘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이 받았던 기회를 되돌려 줄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다. 힘들겠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굳게 결심한다.

여러 군데 눈치 보며 후속 기사를 차단하는 상부에 “여성이 몇 명이나 죽어야 기삿거리가 되냐”라며 응수하는 로레타의 끈기는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연기로 대변된다.

연쇄살인마의 특징과 남성 기득권의 어두운 면을 들추어낸다. 사건을 빨리 덮기에 급급해 시민 안전은 뒷전인 권력에 대항해 가정과 사명감을 지킨 진일보에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호기심 많고 관찰력이 뛰어난 여성이 진정한 언론인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진중하게 펼쳐진다.

세상은 공소시효 만료, 영구 미제 사건 같은 단어들이 사라지는 날을 꿈꾼다. 기억에서 잊히더라도, 관심이 식어버리더라도, 끝까지 따라가는 집요함이 있다면 범인은 반드시 잡을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60년도 더된 이야기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이유를 고민해 보게 만드는 강렬한 메시지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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