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t Viewed

Categories

<육사오> 함께하면 할 수록 더 작아지는 행복

육사오는 북한말로 로또를 지칭하는 제목이다. 45개 숫자 중에 6개를 맞추면 되는 확률 게임. 이 의뭉스러운 제목에 이끌렸다가 간단명료한 줄거리와 취향 적중한 폭소 코드에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영화 패러디, 엉뚱한 상상력으로 중무장한 극장가의 다크호스가 될 것 같다. <극한직업>, <엑시트> 이후 소위 웃기는 영화가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에서 가뭄에 단비 같은 귀한 코미디 장르다. 주인 없는 1등 당첨 로또가 남한 군인의 손에 들어와 실수로 북으로 날아가 버린 전반부와 극적 협상 타결 후 포로 맞교환으로 벌어지는 좌충우돌 후반부가 관객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날아라 허동구> 이후 15년 만에 연출한 <육사오>는 박규태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사실 15년이면 빠르게 변하는 요즘 시장에서 오래 쉰 케이스다. 관객의 니즈와 시장 상황이 15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을 거다. 하지만 이를 방증하기라도 하듯 배우 박세완은 대본을 받자마자 숨 가쁘게 읽었다고 말했다. 오직 이야기에 매료되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할 정도다. 대체 어떤 즐거움이 담겼기에 재미에 빠져든 걸까.

 

괴랄 발랄한 상상력이 준 웃음

육사오

화장실 들어갈 때나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처럼 필자의 기분은 영화관람 후 180도 달라져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오랜만에 본 것 같아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육사오>의 재미는 신선한 소재였다. 감독 스스로 <공동경비구역 JSA>의 코믹 버전이라고 할 정도니까.

 

남한에서 발행한 로또 한 장이 바람에 날려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이를 발견한 북한 군인은 인터넷을 통해 1등 당첨된 어마어마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찾아야만 하는 제약이 걸려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북한군에게 로또는 그냥 휴지 쪼가리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극적으로 남한군과 접선하게 된다.

 

북한우 남한과 협상해야 돈을 찾을 수 있었고, 남한도 북한을 잘 타일러 로또를 돌려받으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겉돌기만 할 뿐 동상이몽 꿍꿍이를 펼치며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팽팽한 로또 소유권까지 운운하게 되면서 좀처럼 의견우 좁혀지지 않았다. 당첨금 협상은 큰 다툼으로 번지다가 극적으로 타결되는 듯 싶었다. 결국, 거사가 끝날 때까지 포로 한 명씩 맞교환하기로 합의한다. 대체 당첨금을 찾기 위한 공조의 내용은 무엇일까?

 

초코파이 대신 돈에 홀려버린 남북

육사오

영화는 ‘돈’이라는 욕망 앞에 무너지는 이념을 맛깔스럽게 버무렸다. 바람을 타고 온 로또 한 장이 몰고 온 파장이 예상 밖의 시너지를 내며 웃음 지뢰가 빵빵 터진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흔들린 우정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불시착은 ‘로또’라는 자본주의 착취 종이를 통해 시작되고 끝난다. 남성들의 집단인 군대와 남북한 이념 대립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단숨에 빨아들이는 영리한 시도다.

 

대놓고 <공동경비구역 JASA>를 패러디하고 있다. 초코파이 대신 로또가 가교 역할을 한다. 서로 공동급수구역을 비밀 장소로 해 신뢰를 쌓아간다. 맞바꾼 포로가 좌충우돌하다 들킬 위기에 처하거나, 재능을 살렸다가 오히려 포상받아 큰일을 겪는 등. 소소한 에피소드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그 안에서 우정과 사랑이 싹트고 해갈되지 못한 통일의 염원까지 아우르는 감동까지 선사한다. 후반부 약간의 억지 설정이나 오글거리는 방향이 있더라도 초반부터 쌓았던 긍정 요소가 후반부 느슨함을 상쇄한다.

 

밈유발하는 배우의 케미

육사오

사실 올해 여름 극장가는 팬데믹 이후 <범죄도시 2>의 흥행을 이어가지 못한 초라한 성적표다. 특히 한국 영화 관객분석이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탑건: 매버릭>이 지속적인 인기로 장기 상영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멀티캐스팅과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한국 영화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퇴장했다. 유일하게 <한산: 용의 출연>과 <헌트>가 살아남아 빨라진 추석 극장가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중 <육사오>는 여름 전쟁을 피해 조금 늦게 선보였다. 속 빈 강정인 대작에 실망한 관객을 끌어들이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시사회를 통해 일반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재미있다’, ‘웃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팬데믹 사이 세 번이나 오른 티켓값에 부담을 느낀 관객은 진화했다.

 

후기와 전문가의 평가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선택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즉, 속편이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애매한 <육사오>는 오로지 시나리오의 기발함과 배우진의 코믹 연기로 낙관적인 평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이경, 고경표, 음문석, 박세완, 곽동연, 이순원, 김민호의 연기 호흡도 좋다.

 

로또는 일주일 동안 부릴 수 있는 가장 작은 사치다. 번호가 공개되는 일주일 동안 혹시라도 1등에 당첨되지 않을까란 기대로 살아가는 행복 연료인 셈이다. 돈 때문에 울고, 돈 때문에 웃었던 경험이 있다면 내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Leave Your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