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의 변성현 감독-배우 설경구 콤비가 뭉친 <킹메이커>는 대선 시기를 정조준한 영화다. 현재 치열한 대선 후보들의 경쟁처럼 영화 속 두 주인공, 김운범과 서창대는 치열하게 맞서 싸운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바로 군부독재정권이다. 변성현 감독은 이 시기를 배경으로 본인의 장점인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함께 두 인물을 데려왔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킹메이커 역할을 했던 엄창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금도 회자가 되는 인물이라면 엄창록은 그 정보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역대 대통령 3명에게 지원요청을 받은 유례가 없는 킹메이커임에도 말이다. 작품은 이 엄창록이란 인물이 왜 평생을 그림자로 살아야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선균이 연기한 서창대가 엄창록을 모티브로 했으며, 설경구가 연기한 김운범은 김대중을 모티브로 했다. 역사적인 사건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따라간다.
약방에서 일을 하던 서창대는 어느 날 길에서 연설을 하는 김운범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가족이 빨갱이로 몰려 고초를 겪은 바 있는 서창대는 이념논쟁을 종식시키겠다는 김운범에게서 미래를 본다. 그는 김운범을 찾아가 선거캠프에서 일을 하겠다고 한다. 서창대의 전략은 선거에서 연전연패를 기록하던 김운범을 대선후보까지 끌어올린다. 이 서창대의 전략은 당시의 선거 분위기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지율 꼴찌 후보에서 대선후보에 오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이란 인물이 대한민국 정치판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보여준다. 금권선거와 자신들이 얻을 이익을 우선적으로 여겼던 시기에 오직 팬심으로 후보를 지지하고 홍보하는 팬덤정치를 만들어내며 선거 전략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시기상 60년대~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선거는 금권선거다.
돈이 많은 여당은 확실한 물량공세를 할 수 있는 반면 야당은 어려움을 겪는다. 야당후보인 김운범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신념은 있으나 이런 물량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서창대는 당시 기준으로 국내에 없었던 획기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을 선보였다. 영화는 당시 서창대가 선보였던 전략을 보여준다.
선거인단의 옷을 여당 후보로 갈아입힌 뒤 마을 어르신들에게 싸구려 선물을 주는가 하면, 여당이 준 선물을 다시 회수해 야당의 이름으로 다시 선물한다. 이런 서창대의 전략은 도덕적인 기준에서 올바르다고 볼 수 없다. 허나 당시의 공권선거와 금권선거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손을 더럽혀야 했다. 엄창록은 당시 여당은 승리를 위해 투표함에 비리도 저질렀기에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이 필요했음을 주장한 바 있다.
변성현 감독은 60년대 필름의 질감을 살린 화면을 중간중간 집어넣으며 실화를 모티브로 한 효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이 힘을 내는 지점이다. 스토리의 측면에서는 서창대의 기발하면서도 당시 기준으로 획기적인 전략이 재미를 준다. 김운범이 올곧은 성품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후에 서창대와 갈등을 겪을 것이란 암시를 꾸준히 던지는 효과도 부여한다.
다만 이 스토리의 재미가 집중력 있게 이어지지는 못한다. 김운범이 대선후보에 올라서는 과정이 초반부에 비해 몰입감이 떨어진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서창대의 발칙한 전거전략이 주는 재미에서 진중한 정치 드라마로 넘어가며 리듬감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여당과 야당의 대결에서 야당 내부의 대결로 넘어가면서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 더 강한 갈등이 초반에 배치가 되면서 생긴 아쉬움이다.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과 진중한 정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변성현 감독의 장점인 캐릭터의 매력을 살려내는 멋이 다소 감소했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PS 파트너>와 <불한당>에서 세련되고 공감이 가게 캐릭터를 만들어냈던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정치적인 측면 때문인지 캐릭터를 그려내는데 조심스런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점은 캐릭터에 깊게 몰입할 만한 매력까지 도달하는 걸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변성현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가 느껴졌던 지점은 서창대 캐릭터의 퇴장이다. 변성현 감독은 서창대란 캐릭터에 대해 ‘김운범의 그림자로 시작해 역사의 그림자로 사라진 인물’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평생을 변화라는 낭만을 품고 살아온 두 남자의 우정이 한쪽은 순풍을 타고 앞으로, 한쪽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인상을 남긴다. 끝까지 서창대가 품었던 낭만을 지켜주면서 자신의 스타일도 고수한 감독의 저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킹메이커’는 누구나 ‘왕좌’에 오를 수 있는 시대에 남을 권좌에 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정치계 실력자를 뜻하는 용어다. 작품은 신념은 있지만 승리를 위한 전략은 없는 ‘킹’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신념도 포기할 수 있는 킹메이커의 동행과 우정 그리고 갈등을 통해 흥미로운 정치 드라마를 완성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대선 분위기가 펼쳐지는 현재, <킹메이커>는 이 현장에 어울리는 영화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