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미친 건지 경쟁하는 상황에서 신랄한 풍자와 웃음이 터진다. 영화 <크레이지 컴페티션>은 자수성가한 억만장자의 의뢰로 영화제작에 참여한 감독과 배우가 벌이는 살 떨리는 리허설을 담은 웃지 못할 블랙 코미디다. 영화 제작의 시작과 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페넬로페 크루즈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찍은 영화다. 그 동안 <페인 앤 글로리>, <아임 소익사이티드>에 동반 출연했지만 상대역으로 만난적은 없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여든 번째 생일을 맞은 억만장자(호세 루이스 고메즈)는 더 이상 이룰 게 없어 보였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 파티와 선물에도 식상해진 지 오래. 무료해진 인생에서 번뜩이는 것을 찾아 일생일대 업적을 남기고 싶어졌다. 하루하루가 죽음과 가까워진 그는 지체할 시간 없었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세상에 큰 획을 그을 최고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이다.
일단 읽어본 적도 없지만 노벨문학상을 탄 소설 판권을 계약했다. 세계적인 상을 받았겠다, 당연히 좋은 영화가 나올 거란 믿음에서였다. 이후 영화제 트로피를 수집 중인 괴짜 감독 롤라 쿠에바스(페넬로페 크루즈)를 기용했다. 그리곤 감독 추천으로 ‘이반 토레스(오스카 마르티네즈)’와 ‘펠릭스 리베로(안토니오 반데라스)’를 캐스팅했다.
이쯤 되면 모든 게 순조롭다고 여겼다. 최고만 모였으니 다시없을 최고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투자금을 댄 제작자도 덩달아 유명해질 거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억만장자. 지상 최대의 제작비, 원작, 감독과 배우진으로 꾸린 걸작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최고의 영화란 무엇인가?
<크레이지 컴페티션>은 영화의 산업적 이해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제작자는 죽기 전에 명성을 쌓을 작품을 위해 제작비를 아끼지 않았고, 이를 이용하게 된 세 사람은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하며 예술혼을 피워낸다.
연출 전권을 얻은 롤라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 신났다. 먼저 연기파로 알려진 이반과 스타성을 입증한 펠릭스를 캐스팅했다. 연기 스타일이 다른 둘의 경쟁심을 부추겨 원하는 감정을 얻겠단 계산이다. 전 세계의 모든 상을 휩쓸고 있지만 인터뷰는 하지 않는 차세대 거장 롤라의 연출법은 정말 특이했다.
크랭크 인(촬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기싸움에 진이 빠진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정글 같은 팽팽한 긴장감은 끝까지 계속된다. 고상한 척하다가는 미끄러지기 십상이고, 솔직하다 못해 너무 막 나가면 고꾸라지기 십상이다. 점점 미쳐가는 대결에 똘기가 충만해지라.
일단 며칠 동안 리허설을 진행했다. 말이 리허설이지 기행의 끝판왕이었다. 두려움과 공포심을 끌어내겠다며 5톤짜리 바위를 머리 위해 두고 대사 연습을 하질않나, 상대 배우와 키스신에 어이없는 경쟁을 붙이기도 한다. 그뿐인 줄 아나, 지금까지 받은 트로피를 가져오게 해 놓고 분쇄기에서 시원하게 갈아 버린다. 아무리 괴짜라고 하지만 허를 찌르는 롤라의 행동은 두 배우의 욕망을 증폭케 한다.
의도한 대로였다. 캐릭터의 상황에 완전히 몰입한 불타는 현장이다. 연기 본좌와 월드 스타의 본게임이 시작되었다. 둘은 서로의 재능을 질투하며 비웃는다. 이반은 체면 때문에 겉으로는 태연한 척, 뒤로는 호박씨 까기에 바쁘다. 펠릭스는 숨김없는 안하무인 행동으로 모두의 혈압을 끓어오르게 만든다.
천재 셋이 모이면.. 배가 산으로 간다?
영화 <크레이지 컴페티션> 스틸컷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의 본질은 사라지고 욕망을 위해 변질된 리허설만 남는다. 이 웃음과 광기, 뼈 때리는 조롱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제작자는 예술에 무지하고, 감독은 정신 나갔으며, 배우는 오만하다. 작품의 고찰은 필요 없고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위한 행동만이 남게 된다.
세 사람은 연기와 연출 사이에서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는 장면이 압권이다. 9일간의 리허설은 롤라의 특별한 건물에서 진행되는데 고립된 장소에 지어진 투명한 건물은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을 투명하게 보여주겠다는 의도처럼 보인다. 그 과정을 직관하는 관객은 박장대소하겠지만, 영화 종사자라면 마냥 웃을 수 없을 것 같아, 씁쓸한 웃음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