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 아웃>, <어스>의 제작진이 뭉친 <안테벨룸>은 앞선 두 작품의 색깔이 담긴 영화다. 인종차별과 관련된 사회의 공포와 두려움을 공포의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은 물론 참신한 표현 역시 닮아있다. <겟 아웃>과 <어스>가 주목받은 이유는 사회적인 메시지뿐만 아니라 이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었다. 은유적인 상징과 기억에 남을 장면들, 흥미를 자아내는 스토리의 구성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안테벨룸>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고정관념으로 여겨지는 클리셰를 이용한 충격적인 구성으로 인종차별이 현재진행형임을 상기시키는 영화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을 뿐더러 지나가지도 않았다’라는 윌리엄 포크너의 문구를 인용한다. 이후 영화는 목화밭과 그곳에서 노예로 일을 하고 있는 흑인들, 백인으로 이뤄진 남부군과 남부군 깃발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제목처럼 노예제도를 두고 전투가 벌어졌던 미국 남북전쟁 직전임을 암시한다. 노예인 이든은 다른 노예들과 함께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새로 들어온 여자 노예들의 인솔을 맡는데 그 중 한 명인 줄리아는 임신한 채로 이곳에 와 이든이 더 신경을 쓴다. 줄리아가 남부군에게 폭행을 당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든은 절망한다.
앞서 이든은 농장을 관리하는 재스퍼에게 붙잡혀 몸에 노예인장이 찍히는 고통을 맛본 바 있다. 때문에 줄리아가 고통을 겪는 순간에도 침묵을 지키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잠에서 깨어난 이든은 남편과 함께 침대에 누워 있고 자명종이 울린다. 현대에서 이든은 베로니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유능한 작가이자 흑인 인권 운동에 최선을 다하는 유명인사다.
강연을 떠난 그녀는 호텔에서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힌 꽃다발을 받는다. 기자처럼 보이는 의문의 여인인 엘리자베스는 섬뜩한 말을 내뱉는 건 물론 베로니카의 호텔방에 침입해 그녀의 립스틱을 훔쳐간다. 이 립스틱은 백인인 엘리자베스가 자신은 피부색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한 물건이다. 이 물건을 엘리자베스가 바르고 훔쳐갔다는 점은 베로니카의 신변에 변화가 올 것임을 암시한다.
이런 암시는 흑인 노예들을 보며 모멸하는 법을 배우던 소녀가 승강기 안에 나타나며 더욱 심화된다. 이 백인 소녀는 베로니카를 보며 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자세를 취한다. 조용히 하라는 이 제스처는 흑인노예들이 주인에게 듣던 말과 제스처다. 그들은 주인이 허락하기 전까지 말을 할 수 없다. 도입부 등장한 포크너의 문구와 이런 암시들은 베로니카의 신변에 가해질 위협은 물론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의 공포가 여전히 존재함을 직감하게 만든다.
표현과 암시를 통해 현대에도 만연한 인종차별의 공포를 보여주는 이 작품의 표현은 구성을 통해 그 정점을 찍는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로 진행하며 과거 주인공들이 현재에 환생하는 내용을 다룬 작품들의 클리셰를 선보인다. 그리고 중반 이후 이 클리셰를 완전히 부수어 버린다. 고정관념으로 여겨지는 클리셰를 부수며 얻는 효과는 인종차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현대에 인종차별은 끝이 났으며 인종으로 인한 차별은 더는 없을 것이란 생각을 영화는 충격적인 구성을 바탕으로 깨부순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이 영화가 지닌 장점은 이 충격에 있다. 구성을 통한 재미로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순간들과 함께 중요한 메시지를 장착한다. 동시에 다수의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그 의미를 더 곱씹을 수 있는 순간들을 선사한다.
작품의 카메라는 고의적으로 백인 캐릭터들의 모습을 어깨선 아래에서 자른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며 이들의 온전한 표정과 모습을 알 수 없는, 어딘가 숨어있는 차별에 대한 공포를 표현한다. 이 표현은 <어스>와 연결되는 지점을 지니며 ‘블랙 호러’ 세계관의 확장을 보여준다. 사회적인 문제를 오락으로 가져오되 은유와 상징을 통해 메시지를 잊지 않게 만드는 표현력에 주력한다.
포스터에 붉은 색으로 나타난 나비는 입을 막고 있다는 점에서 침묵을, 붉은 색이라는 점에서 피로 물든 과거의 고통을, 나비가 지닌 자유라는 상징을 동시에 담는다. 인종차별의 갈등과 공포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해방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여전한 희망의 가능성을 품는다. 메시지와 오락성을 동시에 겸비한 이 영화는 ‘블랙 호러’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