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플랫폼>, <인비저블 게스트>, <줄리아의 눈>의 제작진이 뭉친 <더 마더>는 독특한 시도를 보여주는 영화다. 다소 실험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의 국내 개봉은 앞서 언급한 작품들을 비롯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종이의 집> 등 스페인 장르물의 세계적인 호평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믿고 보는 장르물 강국 이미지를 얻은 스페인이기에 이 실험적인 무성영화 역시 개봉을 이룬 게 아닌가 싶다.
<더 마더>는 대사 하나 없는 무성영화다. 한때 프리마돈나였던 여성이 약물에 중독된 채 홀로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돌볼 능력이 없는 여성은 브로커에게 아이를 팔아넘긴다. 후에 아이를 데려간 이들이 유아 인신매매단이란 걸 알게 된 여성은 아이를 찾고자 브로커를 만났던 숲속을 향한다. 그 외딴 곳에서 대저택을 발견한 여성은 정체 모를 여인들의 감시를 받고 있는 자신의 아기를 발견한다.
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줄거리를 제외하면 영화는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는다. 이 영화를 무성영화라고 표현하는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사가 없을 뿐 캐릭터의 숨소리나 고함소리는 담아내기 때문이다. 허나 과거의 무성영화 역시 음악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무성(無聲)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 작품은 오히려 과거 무성영화보다 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만 보아도 자막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 설명이나 인물의 대사를 전달한다. 헌데 이 영화는 그런 자막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황석희 번역가가 번역가로서 정말 세상 행복한 영화였다고 평한 이유가 있다. 대사를 대신해 극적인 재미를 주는 건 음악과 미장센이다. 제53회 시체스영화제 음악상을 수상했을 만큼 음악을 활용해 긴장감을 뽑아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도입부 드라마 장르에서의 감성적인 음악배치나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전개되는 미스터리한 음악, 스릴러가 시작되며 긴장감을 자아내는 음악을 보여준다. 여기에 천재 컬트 뮤지션 닉 드레이크의 ‘River Man’을 통해 여운을 준다. 음악의 활용을 배가시키는 건 미장센이다. 컬트의 기괴함에 동화와 같은 환상성을 더하며 이질적인 질감을 선보인다. 마치 과자로 된 집이란 환상 속에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녀라는 기괴한 잔혹함을 더한 <헨젤과 그레텔>처럼 말이다.
파스텔톤 이미지가 주는 밝은 느낌에 약물에 중독된 주인공과 마녀의 집과 같은 대저택, 여성이 저주란 함정에 걸린 듯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거미와 거미줄은 어두운 기괴함을 준다. 아이를 빼앗긴 여성 역의 로지 데이와 브로커 역의 해리엇 샌섬 해리스는 대사 없이 오직 행동과 표정만으로 인물의 행동과 분위기를 표현한다. 여성의 모성과 브로커의 집착과 광기가 충돌하며 극적인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감독 후안마 바호 우료아는 이 영화에 대해 대중들이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자신의 모든 감각을 활용해 영화에 참여하고 감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적극적인 참여자로 변신하길 희망했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화가 되기 위해 태어난 작품이라 밝힌 거처럼 대사를 통한 해설과 정보 전달이 한 줄도 없기에 관객은 모든 해석을 자신의 몫으로 남겨둘 수 있다. 이 시도는 영화 예술의 본질을 영상에 둔 무성영화 시대의 정신과 궤를 같이 한다.
무성영화는 영상의 시각적 특수성에 기반을 둔 영화의 표현을 발전시켰다. 러시아의 몽타주 이론(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 독일의 표현주의(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등이 무성영화 시대 영상예술의 발전에 해당한다. <더 마더> 역시 시각적 특수성에 중점을 두며 대사 대신 장면을 통한 은유적인 표현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구성했다. 대사에 따라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아닌 관객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말이다.
다만 무성영화의 단점 역시 담겨져 있다. 무성영화는 유성영화에 비해 표현의 한계가 있다. 과거 무성영화의 주된 장르가 언어의 도움 없이 웃음을 줄 수 있는 코미디였던 이유다. 서사의 표현이 확실하지 않기에 몰입에 있어 부족하다. 더구나 이 작품은 중반부 이후 여성이 대저택을 찾아가면서 본격적인 서스펜스가 시작된다. 그 이전까지 과한 음악의 사용과 대사 없이 서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장된 표현은 강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21세기 무성영화로 큰 성공을 거두며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아티스트>의 경우 고전 무성영화의 오마주에 가까웠다. 반면 <더 마더>는 무성영화의 형식을 가져온 하나의 실험이다. 예술적인 사색과 탐구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흥미를 지닐 수 있지만 스페인 장르물이 주는 쾌감과 재미를 원하는 이들이라면 다소 실망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