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카니발 유랑극단의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인 주인공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 소설 ‘나이트메어 앨리’는 영국 가디언지에 의해 세상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열권의 소설책에 선정될 만큼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1947년 영화화 당시 영화 자체는 흥행에 실패했으나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 비운의 걸작은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에 의해 2022년 리메이크가 되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기예르모 델 토로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귀신과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다. 이 느와르 장르의 영화는 일종의 회귀 모델을 선보인다. 젊고 잘생긴 청년 스탠턴 칼라일은 아버지 대부터 겪은 지독한 가난에 이골이 나 있다. 30~40년대라는 영화의 시대상에서 칼라일의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는 군인이자 대공황의 여파를 맞은 무력한 가장이었다.
이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한 칼라일은 한 유랑극단을 방문했다 그곳에 정착한다. 뛰어난 일머리로 서커스단장 클렘의 마음을 산 칼라일은 독심술을 하는 몰리와 그의 남편 피트와 함께 일을 한다. 그들의 독심술은 암호를 바탕으로 한 사기극이다. 칼라일이 이곳에서 배운 건 악몽을 먹고 사는 방법이다. 이는 영화의 제목인 ‘나이트메어 앨리’와 연결이 된다. 칼라일이 유랑극단에 흥미를 지니게 된 건 기인의 존재다.
평범한 사람이 살아있는 닭의 목을 뜯어먹는 장면을 본 그는 이곳에 흥미를 느낀다. 클렘은 알코올 중독자 등 사회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데려와 기인으로 포장하고 가혹한 행위를 시킨다. 갈 곳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마치 동물처럼 철장에 갇히고 짐승 같은 행동을 한다. 삶 자체가 악몽인 이들에게 보금자리와 음식, 그리고 술 같은 자그마한 희망을 던지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인격을 빼앗는다.
이런 클렘의 모습은 인간이 지닌 심리를 이용하면 마음과 몸을 빼앗을 수 있음을 칼라일에게 알려준다. 이에 칼라일은 피트의 경고를 무시하고 독심술을 통해 더 큰 돈을 벌고자 한다. 자신을 영매로 소개해 심령쇼를 벌이는 것이다. 그는 전기가 통해도 죽지 않는 소녀 몰리와 함께 유랑극단을 떠난다. 도심으로 떠난 두 사람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들 앞에 심리학자 릴리스 리터 박사가 나타나기 전까지.
리터는 칼라일이 악몽의 골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존재다. 앞서 언급했듯 칼라일의 악몽은 지독한 가난에서 시작되었다. 때문에 칼라일은 많은 돈을 버는 게 인생의 목표나 그 정점이 없기에 끝도 없는 욕망을 보인다. 그는 리터에게 환자의 정보를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령쇼를 벌인다. 대신 리터는 칼라일의 심리상담을 조건으로 내건다. 내면을 보여주던 칼라일은 점점 리터에게 빠져들고 몰리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작품은 칼라일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암시한다. 그가 본 타로점에 나온 암울한 미래, 리터가 바라본 어린 시절의 고통,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위험에 뛰어드는 칼라일의 모습 등을 통해 그의 삶이 다시 악몽으로 회귀할 것이란 걸 강조한다. 이런 연출은 신탁의 예언과 상징적인 소재를 통해 인물의 최후를 강조한 그리스 신화의 비극을 연상시킨다. 느와르의 어두운 질감은 이 비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이 비극은 자본주의의 불편한 희망을 보여준다. 돈으로 모든 걸 살 수 있다 여기는 이들은 돈에 함몰되어 인간된 가치를 잃어버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많은 불편함을 해결해주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악몽의 골목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극중 몰리는 어떻게든 서커스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에 전류가 흐르는 고통을 참았다고 고백한다. 허나 참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성의 상실은 잔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회의 현상이다. 허나 돈이 지닌 가치에 지나치게 매몰되다 보면 희망은 욕망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영화 <기생충>이 반지하 아래에 존재하는 지하의 공포를 보여줬듯, 작품은 유랑극단이라는 빈곤의 쳇바퀴 아래 그보다 더 끔찍한 악몽이 존재하고 있음을 공개한다. 이 악몽은 회귀 모델을 통해 완성되며 극적인 완성도를 선보인다.
장르에 있어 처음 느와르에 도전한 기예르모 델 토로는 기괴하면서도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낼 줄 아는 감독인 만큼 본인의 장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초기작 <악마의 등뼈>와 <크림슨 피크> 등의 작품과 유사한 향기를 지닌다. 여기에 브래들리 쿠퍼를 비롯해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등 주요 배역진들이 훌륭한 앙상블을 펼치며 한 남자의 욕망과 파멸을 리드미컬하게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