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모든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제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며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제목에서 로맨스 장르라는 걸 알 수 있게 만든다.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한 로맨스 영화의 대표작 <타이타닉>을 제목에 넣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 가지 코드를 더 심는다. <타이타닉>의 장르는 로맨스이자 재난영화이다. 남자가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아 한 이유는 이 재난과 연결이 된다.
이 작품의 로맨스는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 못지않게 애절하며 격렬하다. 야코는 난치병인 다발 경화증으로 시력과 하반신 마비 증세를 겪고 있다. 한때 영화 마니아였던 그는 한 벽면을 가득 채운 DVD를 더는 관람하지 못한다. 휠체어 아래로 넘어지면 혼자 일어날 수도 없어서 간병인을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다. 그에게는 병에 걸린 후 알게 된 연인 시르파가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본 적 없지만 통화를 통해 원거리 연애를 유지 중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가 <타이타닉>이다. 시르파는 좋아하는 영화로 <타이타닉>을 언급한다. 이에 야코는 잭과 로즈 중 누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 시르파는 빙하가 되고 싶지만 우리의 현실은 타이타닉이라 말한다. 시르파는 혈액염을 앓고 있다. 상태가 악화되어 약을 쓰려고 하지만 혈액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되며 치료 중 죽을 수도 있음을 언급한다. 이에 야코는 시르파를 만나기 위해 천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를 향하고자 한다.
이 야코의 여정은 왜 시르파가 자신들을 ‘타이타닉’에 비유했는지 알 수 있다. 게임을 통해 거액을 벌게 된 야코는 시르파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하고자 한다. 천 킬로미터는 간절한 사랑을 위한 거리치고는 짧게 느껴진다. 허나 그 주인공이 야코라면 다른 이야기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스스로 휠체어를 운전할 수 없기에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허나 야코에게는 그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작품에서 ‘빙하’는 문밖의 세상이다. 바다를 향해 처음 출항한 타이타닉처럼 야코의 여정은 낭만으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처음 용기를 내 세상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후 장르는 재난 스릴러로 변신한다. 혼자서는 휠체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야코에게 즉흥적인 결정은 고난으로 연결이 된다. 짐을 도둑맞는가 하면 불량한 무리를 만나 생명을 위협받는 처지에 이른다.
장애, 질병, 가난 등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고통은 선택지를 박탈한다. 타이타닉이 되고 싶지 않아도 선택할 수 없기에 세상이란 바다로 나간 순간 빙하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는 제목처럼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아 한 이유를 설명하며 비극성을 강조한다. 다만 이 제목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야코는 <타이타닉>의 DVD만은 포장을 뜯지 않았다. 이는 야코가 이 작품만은 시르파와 함께 볼 것임을 암시한다.
남자가 이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텅 빈 마음을 채워줄 이가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가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기 보다는 직접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기로 결정한다. 비록 그 길이 미지와 고난의 연속이더라도 말이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영화란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대중성을 지닌 로맨스 대작 <타이타닉>을 택했고, 이 영화처럼 재난과 함께 로맨스의 순간까지 담아낸다.
영화 마니아란 설정은 이런 제목의 의미와 함께 야코가 펼치는 여정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혼자 힘으로 휠체어도 움직일 수 없는 야코가 즉흥적으로 문밖을 나선다는 건 다소 무모해 보인다. 이 무모함을 낭만으로 포장하는 게 영화다. 야코의 입장에서 이 선택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낭만에 가깝다. 여기에 야코가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게 되었다는 점 역시 이런 선택을 뒷받침한다.
여기에 <잠수종과 나비>처럼 카메라를 통해 장애를 표현하며 신선함과 공감을 자아낸다. 야코를 제외하고 주변을 흐리게 촬영하며 야코의 시각에서 화면을 보게 유도한다. 야코의 하반신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 역시 그의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오프닝 자막을 점자로, 내레이션을 시각장애를 돕는 스마트폰 내레이션 목소리로 설정했다. 주인공에게 더 동화되게 유도하며 그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 영화의 감독인 티무 니키는 국내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자주 소개된 핀란드 감독이다. 독특한 표현의 장르영화를 주로 만들어 온 그는 따뜻한 드라마 로맨스 장르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타이타닉>이란 누구나 아는 할리우드 대작을 가져와 흥미롭게 엮어내며 관심을 집중시킨다. 로맨스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며 장르적인 매력 역시 가미하는 마법 같은 기교를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