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은 지진 방지를 가업으로 삼고 ‘토지시’로 살아가는 대학생 소타와 어릴 적 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평범한 고등학생 스즈메가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지진을 찾아 작은 바닷가까지 찾아온 소타는 우연히 스즈메에게 폐허가 있는 곳을 묻고 발길을 옮긴다.
폐허를 찾는 이유는 그곳에 문을 잠그기 위함이다. 지진의 원흉이 살고 있는 저 세상 문이 열리지 않도록 단속하는게 토지시의 임무다.
한편, 의심 많던 스즈메는 소타를 쫓아 유원지를 찾았다가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점입가경으로 덩그러니 있는 문을 열자, 대재앙이 번져버리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소타를 도와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를 돌며 문단속을 돕지만 힘에 부쳐 난항을 겪는다.
‘신카이 마코토’가 꾸린 종합선물 세트
<스즈메의 문단속>은 빛의 마법사, 이야기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의 종합선물 세트 같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웰메이드 작품이다. 압도적인 작화와 황홀한 OST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관이 집대성돼, 스스로를 뛰어넘어버렸다.
<너의 이름은.>의 혜성 충돌, <날씨의 아이>의 기후변화를 잇는 재난 트릴로지다. 자연재해로 생긴 상처를 서로 보듬어주는 인연은 그의 작품에서 낯설지 않게 등장하는 코드다. 재난(지진)과 판타지(신화)의 결합은 앞선 두 작품의 연장선이다. 전작을 연상케 하는 이스터에그가 다수 있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두 배의 기쁨으로 만족스럽다. 많이 아는 만큼 풍성한 관람이 될 뿐만 아니라 상업적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일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과 닮은 미남 주인공, 모험을 떠나며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보편적인 주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하는 고양이가 생각난다. 거장을 향한 오마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극사실주의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면서도 결국은 움직이는 그림인 애니메이션 특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반짝이는 물비늘, 쨍한 햇빛, 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바람까지. 실제 그림 속에 빠진 듯하다. 일본 전역을 여행하는 것처럼 속도감 있는 전개, 실존 배경을 옮긴 작화는 일본 여행을 자꾸만 부추긴다.
영화는 문을 여닫는 일상적인 행위를 특별하게 주목했다. 스즈메는 갑자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시계 토끼 대신 귀여운 고양이를 쫓아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잡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실마리를 제공하며 앞으로 나아갈 연료가 되어준다.
깊은 애도와 빛나는 미래를 응원
영화 속 이동 경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 현장이다.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추모하며 만든 작품이다. 집단 트라우마를 남긴 우리나라의 세월호, 이태원 참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들을 애도하고 살아남은 사람을 응원하는 치유의 결과물인 셈이다.
파괴, 폐허, 희생이란 단어가 초반을 차지한다면 자력, 사랑, 희망이란 단어로 후반을 채운다. 상반된 단어를 연결 지어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영화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똑바로 마주하는 쪽이 낫다고 말하고 있다. 지진처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트라우마를 미미즈(지렁이)로 상징했고 문을 잠그는 행위로 명확히 해결하고자 했다.
개인적인 성장도 빼놓지 않는다. 어릴 적 헤어진 엄마를 찾지 못해 악몽에 시달리던 스즈메는 ‘문안에 갇힌 나’와 이별하고 ‘지금의 나’와 조우하며 비로소 깨닫는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스스로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것을. 스즈메는 어제의 나를 만나 한 뼘 더 성장했으며, 내일을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자 한다.
힘든 일을 겪고 절망 속에 빠진 인류를 향한 심심한 위로와 격려가 이 영화의 미덕이자 가치다. 어제 사라진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것은 바로 내일임을 떠올려 보자.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는 게 오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