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군인 세르게이(톰 프라이어)는 러시아가 점령한 에스토니아의 공군 기지에 근무 중이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던 중 전근 온 전투기 조종사 로만(올렉 자고로드니)에게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여러 제약이 따랐던 시대 소련은 마음을 표현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세르게이는 애써 마음을 숨긴 채 로만의 출퇴근을 돕는 임무를 맡게 된다.
우연히 둘은 발레 공연(불새)을 관람하며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배우를 꿈꾸지만 가난한 현실에 부딪혀 포기하려는 세르게이를 로만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주고 꿈을 응원해 주었다. 이로써 두 사람은 마음을 확인하게 되고, 위험한 사랑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사랑은 결코 축복받을 수 없었기에 몰래 데이트를 즐기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이 관계는 마치 끝이 있는 것처럼 예정된 파멸의 수순을 밟는다. 평소 로만을 주시해 들쑤시고 다녔던 상관의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군인은 국가와 군대에 충성해야 했으며 동성의 사랑은 중죄에 해당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진실을 발설하겠다는 협박에 큰 압박을 느낀 로만은 세르게이를 지키기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한다. 얼마 후 동료 루이자(다이애나 포자르스카)와 결혼하게 된 로만의 최종 선택으로 세르게이는 충격받아 모스크바로 떠나게 된다.
둘의 진심은 여기까지인 걸까, 시대와 상황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둘의 진심을 깨어지고 마는 것일까? 몇 년 뒤 세르게이는 배우로 성장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로만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식조차 알 수 없었던 로만이 찾아와 꺼져가던 불씨는 장엄한 불꽃을 피우게 된다.
냉전 시대 소비에트 기지에서 벌어진 동성애
영화 <파이어버드>는 자유와 욕망이 금지된 때 자석처럼 이끌린 두 남자의 위태로운 로맨스를 그렸다. 권위적인 사회에서 사랑과 우정, 신의를 지키며 어렵게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숭고한 역사다. 1977년 냉전 시대의 에스토니아에서 누구보다 뜨거웠던 실화 이야기다. 배우로 활동 중인 ‘세르게이 페티소프’의 회고록 《로만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극 중 세르게이 역을 맡은 톰 프라이어는 신실한 애정을 담아 공동 각본, 제작에 참여했다.
동성 간 사랑이 엄격히 금지된 러시아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영화는 제작진과 배우들이 살해 위험에 노출되기까지 했었다. 성소수자 탄압과 독재 정치를 담아 러시아 내 큰 반발을 샀고, 박해가 이어져 힘겨운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정치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로만을 연기한 우크라이나 배우 올렉 자고로드니의 안위마저도 걱정되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2013년 ‘반 동성애 선전법’을 제정하며 러시아의 성소수자를 두렵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소련 기지에서 일어난 실화라는 독특한 소재와 발레와 공군을 연결해 예술적인 극대화를 불러오지만 전반적 아쉽다. 특히 두 배우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멜로라인이 통속적이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예상대로 흘러가는 로맨스는 이 장점을 상쇄하기에 이른다. 삼각관계의 클리셰도 피할 수 없었다. 호숫가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하늘 위 쌍 전투기가 질주하는 절정 장면은 부단히 노골적이다. 또한 진실된 감정 전달을 위해 결국 영어 촬영을 밝혔지만 러시아 억양의 대사는 분위기를 깬다. 배경과 언어가 따로 논다.
그럼에도 친절한 상징과 익숙한 전개는 퀴어 장르에 익숙지 않은 관객에게 입문 영화로 추천할만하다. 아름다운 발레와 러시아의 건물, 세 배우의 케미가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