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까마득해 보이는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 평지에서 걷다 이내 내리막이 보인다. 다 끝난 거 같지만 또 다른 시작일 뿐이고, 지금 막 시작했는데 벌써 끝나있다. 그 연속된 굴레를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게 바로 인생이다.
<낫아웃>은 스물의 경계에 서 있는 열아홉 광호를 통해 입시비리, 방황하는 청춘과 사회 부조리를 담았다. 성장, 범죄, 스포츠라는 삼박자를 러닝타임 안에 고르게 분배했다.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답답한 현실과 탁월하게 담아냈다. 치기 어린 열정과 자신감이 가득 찼던 십 대의 마지막, 이십 대로 넘어가는 경계의 두려움과 흥분을 현미경 들여다 보듯 그렸다. 자신이 특별한 줄 알았지만 결국 상위 1%를 떠 바치고 있는 99%의 들러리라는 것을 실감했을 때의 좌절감, 높은 벽을 넘어 보려 발버둥 치던 우리 모두의 지난날이 떠오르는 묵직한 성장 영화다.
내 세상인 줄만 알았던 우울 안 개구리
짜릿한 봉황대기 결승전 역전승이었다. 꿈에 그리던 결승타를 친 열아홉 광호(정재광)의 자신감은 부풀어 올라 있었다. 가까스로 들어온 프로팀 연습생 자리를 단번에 뿌리쳤다. 대신 감독(김희창)에게 후회 같은 거 안 한다며 큰소리쳤다. 최근 활약이 두드러졌기에 드래프트 지명에 승부수를 띄웠다. 이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히 뽑히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보기 좋게 탈락해 버렸다.
한 방 먹은 광호는 이제서야 눈을 돌려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 진학을 알아보지만, 이마저도 정해진 순서와 계획이란 게 있었다. 광호가 갑자기 대학 진학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면 예정된 선수가 탈락되는 등 또 다른 트러블이 생긴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제 친구를 밀어내고서라도 내가 설 자리를 만들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감독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광호를 안타까움을 넘어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한다.
광호는 이제서야 야구를 하는데 재능뿐만 아니라 돈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깨닫는다. 요즘 들어 감독은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닦달만 한다. 진로상담은 애초부터 답이 정해져 있는 형식적인 절차같았다. 칼국숫집을 운영하며 홀로 뒷바라지한 아버지에게 큰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어렵지 않게 친구 민철(이규성)에게 불법 휘발유를 파는 일을 소개받아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운동하랴 알바하랴 부족한 시간은 빠르게 흐르기만 한다. 조급한 마음에 시작한 대학 진학 준비는 계속 삐걱거리기만 한다. 아예 눈 밖에 나버린 감독과의 갈등은 심해지고 애초부터 대학 진학을 정했던 성태(김우겸)와도 서먹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열심히 해도 턱없이 부족한 주머니 사정에 있었다. 결국 광호는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자, 해서는 안 될 위험한 일까지 벌이게 된다. 과연 광호의 성장통은 어디에서 멈추게 될까. 아프면서도 걸어가야 하는 가시밭은 언제쯤 끝나는 걸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축 처진 뒷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는 희망
<낫아웃>으로 장편 데뷔한 이정곤 감독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창작지원상’,’왓챠가 주목한 장편’,’배우상’까지 3관왕을 받으며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그 몫을 200% 해내는 정재광은 실제 나이보다 12살 어린 열아홉의 외모를 위해 25kg 체증 증량을 감행했다. 그래서인지 야구만 아는 바보, 뚱한 표정을 숨길 수 없는 십 대의 얼굴이 몰입을 유도해 빠져들 수 있었다.
영화는 제목 ‘낫아웃’은 힘겨운 시대의 청춘에게 고하는 이정곤 감독의 전언이라고 봐도 좋다. 야구 용어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의 줄임말을 제목으로 정했다. 낫아웃은 타자가 투수의 공을 세 번 헛스윙하면 아웃이지만 포수가 공을 놓친다면 1루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야구 용어다. 타자가 삼진 아웃을 당했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룰을 뜻한다. 아직 기회가 있다는 희망의 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낫아웃’이 계속 나아가야만 하는 삶의 이유가 된다.
이는 열아홉과 스무 살의 사이. 인생의 첫 실패를 경험하고 격렬하게 흔들리는 광호를 앞세워 누군가의 인생 한 페이지를 들여다본 것만 같다.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과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함 속에서 범죄와 배신을 고를 수밖에 없던 제한된 선택지가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우물(학교)에서 처음으로 넓은 세상(사회)으로 나온 광호의 모습은 어른이 되어도 늘 같은 후회와 좌절을 반복하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과연 나라면 포기했을까, 좋아하는 일을 계속했을까. 계속해서 반추하게 만드는 질문이 영화가 끝나도 쉬이 잊히지 않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