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노바>는 중년의 커플이 캠핑카를 타고 티격태격한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한다. 20년 지기 샘(콜린 퍼스)과 터스커(스탠리 투치)는 서로의 빛과 소금이 되어준 사이이자 눈빛만 봐도 아는 오래된 연인이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터스커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샘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샘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것뿐.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1분 1초가 아까운 샘은 지극정성으로 간병한다.
둘은 마지막 여행을 시작하고 길 위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아 간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때때로 녹음하고, 하늘의 별을 보며 삶과 죽음을 논한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샘과 달리 터스커는 이제 그만 끝내고 싶은 마음이다. 달리는 캠핑카 안에서 신나게 웃고 떠들지만 동상이몽이다.
터스커는 치매를 앓기 전 유명 작가였다. 대중은 신작을 애타고 기다리고 있지만 쓰고 있는 글을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다. 꼭꼭 숨겨 놓은 습작 노트에는 그간 말 못 할 사정이 기록되어 있다. 언어와 시력을 잃어가는 터스커의 힘겨운 기록이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힘을 잃고 흩날리는 단어들, 끝내 몇 자 적지 못하고 찢어버렸을 너덜너덜한 페이지는 존엄성을 잃어가는 터스커의 심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독립심이 강하고 주체적인 사람이었기에 통제력을 잃어가는 지금이 너무나 괴롭다. 지금이라도 온전히 나일 때 삶을 선택하고 싶다. 더는 글을 쓸 수 없는 것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뿐더러, 나를 잃어버리기 전에 내가 놓아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여행길에 올랐고 터스커는 샘을 위해 잊지 못할 파티를 선사한 것이다.
영화 제목 슈퍼노바(초신성)는 가장 환하게 빛나는 별의 죽음을 자기 것으로 완성하고 싶은 터스커의 바람이 담겨있다. 슈퍼노바는 어떤 항성의 진화 마지막 단계에서 폭발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매우 밝게 빛나는 특별한 별을 의미한다. 즉, 별이 우리 눈에서 반짝이는 순간은 이미 오래전 폭발한 별의 잔상이며, 너무 밝아 빛나지만 사실은 별이 죽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터스커는 천천히 스며지는 죽음을 통해 주변을 더 밝은 빛으로 물들이며 꺼져가고 있었다.
영화는 퀴어 장르의 선입견을 날려 버릴 만큼 담백하고 보편적이다. 캠핑카를 타고 마주한 잉글랜드 북부의 아름다운 자연은 황홀함 그 자체다. 잉글랜드 도보여행의 성지라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과 하나 된 연인은 오래 산 부부처럼 편안하고 아늑하다. 불꽃 튀는 환희와 희로애락을 지나 상대의 온기로 사랑을 확인할 만큼의 신뢰, 괜찮다는 거짓말 속 진심을 체득해 낼만큼의 두터운 정이 느껴진다.
콜린 퍼스와 스탠리 투치가 만나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콜린 퍼스는 <싱글 맨> 이후 오랜만에 퀴어 영화에 도전해 탄탄한 연기 내공을 뽐냈다. 스탠리 투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헝거 게임> 시리즈 등으로 연기 외 연출, 시나리오, 제작자로 활약한 경험 뿐만 아니라 아내와 사별한 경험도 쏟아 자연스러움을 입었다. 두 사람은 <컨스피러시>를 통해 처음 만났으며 샘과 터스커처럼 20년 간 우정을 쌓아왔다. 실로 20년 만에 <슈퍼노바>로 재회해 완벽한 연기 호흡을 보여주었다.
왈칵 쏟아내지 않는 눈물, 먹먹하게 가슴을 저미는 슬픔이 영화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이 감정을 지속하게 만드는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 톰 웨이츠의 ‘Little Trip to Heaven’ 등 70년대 팝명곡을 듣는 귀호강도 더해진다. 이는 마지막 연인을 생각하며 연주하는 피아노 공연으로 완성된다. 터스커가 좋아했던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섬세하게 연주하는 샘의 섬세함이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참고로 콜린 퍼스는 이 장면을 라이브로 연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