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따뜻한 영화를 근래에 보지 못했다. 으레 서부극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가 없다. 카우보이와 결투, 학살, 약탈, 인디언, 복수, 배신 등의 마초적 선입견이 와르르 무너진다. 주인공이었던 카우보이 대신 슬쩍 비켜나 평범한 남성의 일상과 우정에 관심 갖는다. 마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세계, 대체 역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외된 것들을 오래 비추는 부드러운 시선은 주류에 시선을 빼앗겨 미처 보지 못했던 어두운 곳을 자세히 보고자 하는 의도된 설정으로도 읽힌다. 다문화 집합소였던 미국의 초기 모습, 기회의 땅이었던 미국을 상상한 우화다.
총과 칼이 난무하던 무자비한 핏빛 역사가 아닌 우유와 빵, 진흙으로 대변할 수 있는 부드러운 것들의 향연이다. 서부 개척 초기에는 아마 평화롭지 않았을까. 원주민의 소소한 일상, 말이 통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아듣는 어울림, 서로 다른 패션을 적당히 매칭하고, 평등하게 물물교환하는 방식. 땅과 자원을 탐내기 이전 아름다웠던 미국 본연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영화다.
배경은 1820년 오리건 주가 미국과 영국의 공유 영토였던 시절이다. 오리건주는 1792년 미국인 그레이가 첫발을 내디딘 이후 미국인과 영국인의 탐험이 시작되었던 땅이다. 1846년에는 국경협정으로 미국 땅이 되었으며, 1859년에는 미국의 33번째 주가 되었다. 영화 속에서는 비버 무역이 한창 성행하기 시작한 때이자 영국과 미국의 영토 공유의 혼란스러웠던 시절 컬럼비아강 근처를 무대로 한다.
줄거리가 간단해서 오히려 풍성하고 볼거리, 들을 거리가 있다. 조용하고 느릿하게 흘러가는 구름처럼 유유자적 거닐며 계속 저 둘을 따라가고만 싶다. 풀벌레 소리, 강물이 흐르는 소리, 젖 짜는 소리, 부엉이 우는소리 등등 생생해 동행한 것처럼 현장감이 느껴진다.
마을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친 두 친구
19세기 서부 개척 초기 오리건주에 최초의 젖소가 있었다. 젖소는 영국 권력자 팩터(토비 존스)의 티타임을 위해 멀고 먼 길을 온 귀하디귀한 몸이다. 사람보다 더 좋은 혈통을 가져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던 소였다. 한편, 팀의 식량 담당이었던 쿠키(존 마가로)는 극심한 기근에 숲에서 먹을 것을 찾다 러시아인에게 쫓기는 킹 루(오리온 리)를 만난다. 마음씨 착한 쿠키는 알몸으로 음식을 구걸하는 킹 루에게 연민을 느껴 잘 곳을 내어준다. 이후 먼 길을 돌고 돌아 재회하게 된 두 사람은 함께 살기로 한다.
하지만 당장 일거리가 없어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했다. 두 사람은 훗날 돈을 많이 벌어 꿈을 이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쿠키는 빵집과 호텔을 열고 싶고 킹 루는 농장을 갖고 싶었다. 고민 끝에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내다 팔자는 사업 수완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어느 늦은 밤. 우유 도둑의 귀여운 범행을 첫 삽을 뜨게 된다. 킹 루는 나무 위에 올라가 망을 보고, 친근한 말투와 부드러운 손길로 젖소와 유대감을 쌓는 쪽은 쿠키였다. 대상을 착취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얻어 갈 수 있게 동의를 구하는 정직한 도둑. 쿠키는 먼 곳을 오다가 죽은 남편과 자식을 애도하고 오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젖소를 달랜다.
사려 깊은 태도가 스크린에 그대로 투영돼 긴장감보다 웃음이 유발된다. 이후 두 사람은 귀한 우유를 넣고 튀긴 후 꿀을 바른 빵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하지만 이 소문은 널리 퍼져 젖소 주인 팩터의 귀에까지 들어가면서 위태로운 동업은 끝을 향해 나아간다.
봉준호 감독이 극찬한 영화
<퍼스트 카우>의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미국 독립영화계의 기둥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봉준호 감독이 2019년 최고의 영화 중 한편으로 선정해 국내에 주목받았다. 1994년 <초원의 강>으로 데뷔 <올드 조이>, <웬디와 루시>, <믹의 지름길>, <어둠 속에서>, <어떤 여자들> 익숙한 시대도 전혀 다른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꾼이다. 그동안 7편의 장편 영화를 찍었지만 한국에서 정식 개봉은 <퍼스트 카우>가 처음이다. 할리우드의 틀 안에 들어 있지 않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투자가 되지 않아 13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뚝심 있는 연출 방식을 고수하는 감독이다.
특징적인 것은 컬럼비아의 신비롭고 울창한 숲과 강을 1.37:1 화면비의 35mm 필름으로 구현해 아날로그적인 미학을 선보였다는 데 있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이 연상되는 평범한 일상의 생생한 스케치를 옮겨 놓은 듯 소박하다. 풍요와 가난, 그리고 인종과 계급을 떠나 진실한 우정이 따뜻한 밀크티를 마신 듯 기분 좋아진다. 자연스럽다는 말과 위화감이 없다는 말로 무해하고 순박한 분위기가 영화 전반에 흐른다.
그래서일까.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을 인용한 영화의 오프닝은 영화가 끝나도 쉽게 잊을 수 없어 먹먹함을 안긴다. 미국의 자연과 인간의 공존, 원주민과 개척자가 서로 존중하던 시절과 200년 후 현 미국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갈린다.
본국에서 데려온 오리건주 최초의 젖소는 자본주의 재산을 의미한다. 오늘날 탐욕과 폭력의 역사를 쓰게 된 자아 성찰 관점으로도 해석된다. 아메리칸드림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희생이 켜켜이 쌓여 만든 시간의 결과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소의 되새김질처럼 천천히 느릿하고 오래도록 곱씹어 봐야 비로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