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Metaverse)’, 3차원의 가상 세계를 일컫는 말로 요즘 세대가 인터넷상에서 실제 신분 대신 캐릭터를 부여받아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을 말한다.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 ‘제페토’, 아이돌 ‘에스파’ 등이 이 메타버스를 활용한 콘텐츠를 내놓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호소다 마모루가 신작 <용과 주근깨 공주>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해 이야기를 펼친다.
어릴 적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10대 소녀 스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학생으로, 소위 학교에서 아이들이 말하는 ‘아싸’에 가까운 캐릭터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와의 사이는 서먹해지고, 음악을 향한 꿈을 혼자서 키우지만 트라우마로 인해 노래를 할 수 없는 상태. 어느 날 단짝 친구 히로가 알려준 가상현실 세계 ‘U’를 알게 되고, 스즈가 아니라 ‘벨’이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의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며 전 세계 유저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평소 자신이 동경하던 동급생과 닮은 캐릭터 ‘벨’로 가상현실에서 살아가는 스즈, 그곳에서는 노래도, 관심을 받는 일도 현실과는 다르게 전부 가능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 아바타로 살아가면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곳이 메타버스라는 인상을 받았다. 조그마한 핸드폰 속 세상, 현대인들은 하나둘씩 올라가는 팔로워 숫자나 좋아요 등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작은 반응에 종종 위로를 얻곤 한다. 익명성을 전제로 한 이 관계는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은 듯하다.
<용과 주근깨 공주> 스틸 컷
‘벨’로서 노래하고, 주목을 받게 된 스즈에게는 커다란 비밀이 하나 생긴 셈이다. 실제 세상에서 스즈가 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 하지만 ‘U’라는 세계 속 아바타들의 가면을 들춰보면,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저마다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 세계의 모습인 ‘오리진’을 강제로 드러나게 만드는 ‘언베일’이라는 기술이 U에서는 굉장히 공포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얼굴의 주근깨가 특징인 ‘벨’은 U에서 마주친 용이라는 괴물과 엮이게 되며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 해결 과정에서 가상현실과 현실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에 대한 감독의 태도가 드러난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 특유의 화려한 작화와 트렌디한 감성이 돋보이며, 특히 이번 애니메이션에서는 ‘스즈’와 ‘벨’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 나카무라 카호가 직접 부른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현실 세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광경들이 펼쳐짐과 동시에 ‘벨’ 캐릭터의 화려한 의상과 노래가 더해져 감동이 배가 된다.
정체를 모르는 존재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가, 익명성이라는 가면은 인간으로 하여금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메타버스와 함께 계속될 것 같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9월 29일 개봉한다.
글: 키노라이츠 손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