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의 계절성이 사라진 지 오래다. 밤낮으로 일교차가 극심한 가을 한 편의 미스터리 공포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무언가에 현혹되어 버린 <미혹>이다.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존재, 그로 인해 공기까지 물들이는 두려움이 포인트다. 심리를 파고드는 두려움이 가족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서 피어나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목사 남편 석호(김민재) 사이에서 낳은 셋째 아이의 죽음 이후 심적으로 아주 지쳐있는 현우(박효주)는 안정을 바라는 남편의 권유로 내키지 않는 입양을 결정했다. 익사한 아이를 지키지 못한 부모의 죄책감이라도 해도 좋다. 정리되지 못한 슬픔을 다른 존재로 채울 수 있을까 싶다.
선천적으로 눈에 이상을 가진 이삭을 자식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 함께 집으로 데려왔다. 죽은 셋째의 옷가지와 쓰던 물건이 그대로인 방에 사람만 바뀐 셈이다. 현우는 장애를 갖게 될지 모를 이삭이 점차 안쓰러워지고, 잃어버린 아이를 대신해 신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며칠 후 한결을 봤다는 이삭. 덩달아 다른 아이들까지 이상한 말과 행동으로 혼란스럽게 만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죽은 존재가 보인다는 동네 청년 영준(차선우)의 섬뜩함은 스트레스를 더해준다. 자신과 같은 것을 보지 않았냐는 의문의 말을 걸어오기 기분나쁨이 커진다. 대체 현우는 무엇을 보고도 못 본 척한 걸까.
해결되지 못한 상처가 피우는 악의 꽃
‘미혹’은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영화는 한 여성을 중심으로 상실을 경험한 가족의 어긋난 관계를 톺아본다.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 된다는 생각에 명확한 선을 긋는다.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죽은 아이의 형상은 가족 구성원 각자의 죄책감으로 다가와 서로를 괴롭힌다.
공포 영화의 클리셰인 점프 스퀘어는 자제하고 잘 보이지 않아서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강렬하다. 서서히 조여드는 심리적 압박감과 잠식당하는 두려움이 포인트다. 일반적인 공포영화와는 결이 다르다는 소리다. 가족들이 극복하지 못한 각자의 트라우마가 산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독실한 신앙으로 가득한 목사 가정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은 아이러니함을 증폭하기에 충분하다.
집, 저수지, 교회라는 세 장소는 어딘지 답답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드넓지만 폐쇄적인 느낌, 안온한 것 같으나 사실은 신경이 곤두서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아늑해야 할 집은 갇혀 있는 관 속 같으며,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저수지는 그 안에 무엇은 품고 있을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신앙을 강요하는 믿음은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구속한다. 목사인 남편과 아이들은 신이 지켜 준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두려움을 외면한다. 훤히 뚫려 있지만 외부로 절대 나갈 수 없이 갇힌 상태. 답답한 마음이 요동친다.
서로 다른 것에 미혹된 가족
이는 외부인이었던 이삭이 내부인으로 들어오며 본격화된다. 이삭은 선천적인 시력 이상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시야가 늘 뿌옇다. 밝은 낮도 늘 어두운 밤처럼, 안개 낀 호수처럼 흐릿한 시야를 가졌지만 또렷하게 보이는 존재가 있다. 이삭은 죽은 존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애써 외면하려하지만, 그럴수록 진실이 떠오르는 계기가 된다.
김진영 감독은 2008년 단편 <취향의 유전>이후 2010년 <나를 믿어줘>를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은 신예다. <미혹>으로 연출과 각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18년에는 소설 《마당이 있는 집》을 내놓으며 이야기꾼의 면모를 드러냈으며, 이는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 예정이다.
그래서일까. 장르 영화에서 빛나는 존재감을 보여준 박효주 배우는 맞춤옷을 입은 듯 깔끔한 연기를 선보인다.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장르를 통해 균열된 가족의 유대 관계를 조명했다. 성인 배우 못지않게 또 다른 주역인 아이들의 안정된 연기는 현장 분위기의 화기애애함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어준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유대관계를 위해 김진영 감독은 ‘감정일기’를 쓰게 해 감정을 공유하며 소통했다고 전해진다. <미혹>은 오는 10월 19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