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는 주맹증을 앓고 있는 침술사가 봐서는 안 될 일을 본 후 벌어지는 하룻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보고도 못 본척하는 자와 보이지 않지만 일부러 보려고 발버둥 치는 자의 대결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는 주맹증을 소재로 소현세자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엮었다.
아픈 동생 약값을 벌기 위해 궁에 들어온 실력 있는 침술사 경수(류준열)는 소경이나 주맹증을 앓고 있다. 주맹증은 밝은 곳에서의 시력이 어두운 곳보다 떨어지는 증상이다. 이를 숨기고 맹인 행세하며 궁궐 생활에 적응하던 중 보지 말아야 할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한편, 청에서 귀환한 아들이 반갑기는 커녕 불편한 인조(유해진)는 정체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선왕이 따라왔던 명나라의 정통성을 지키려고 하지만 청을 벗으로 삼자는 아들과 의견 차이로 속 끓이게 된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안면마비까지 유발했고, 경수의 치료를 받게 된다.
실록 한 줄에서 부풀린 엄청난 상상력
영화의 시작은 단순했다.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것 같다’는 인조실록의 단 한 줄에서 영감받았다. 묵직한 사극을 예상했지만 의외였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주한 장르의 확장성이 돋보였다. 실제 사건을 중심에 두고 가상의 인물이 만들어 나가는 팩션 장르 중에서도 웰메이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사극을 좋아하는 관객과 장르적인 긴장감이 적절히 흐르는 흥미로운 설정이다.
소현세자의 돌연사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좋은 소재다. 사건은 벌어졌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아 의구심이 드는 미제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를 소재로 문학, 영화, 드라마계는 오랫동안 소현세자를 흠모했고, 또 다시 소환되었다.
드라마 [더 킹: 영원한 군주]에서는 병자호란을 막아내고 소현세자가 살아남아 영종으로 남았다는 평행세계를 설정으로 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박해일이 인조로 등장했으며, 드라마 [삼총사]에서는 부드러운 미소 속 냉철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삼총사 멤버로 활약해 호탕한 액션을 보여준다.
벌써 3번째.. 환상의 궁합 보인 두 배우
영화 <올빼미> 스틸컷
<택시운전사>, <봉오동 전투>에 이어 3번째 호흡을 맞춘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왕을 연기해 본다는 유해진은 소현세자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인조를 맡았다. 유해진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이 돋보인다. 살기가 퍼지자 흔들리는 미세한 기의 떨림까지, 욕망이 들끓는 신경질적인 외향은 감탄사를 유발한다. 욕망에 솔직한 인간다운 고뇌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유해진의 값진 표현법이다.
왕의 가장 큰 적수는 본디 아들이다. 왕은 종신제지만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힘든 자리다. 또한 차기 왕은 자식이기에 더욱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대신들, 외척들 다양한 세력이 합세해 왕위를 노리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아들과 갈등을 빚은 광기 어린 왕은 세자가 8년 동안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왔음에도 꺼지지 않았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발전한 청과 가깝게 지내자는 아들과 무너진 명을 잊지 못하는 아버지는 사사건건 부딪쳤다.
류준열은 연기에서 8할을 담당하는 눈빛을 포기한 채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차분하게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에만 희미하게 볼 수 있는 침술사가 본 진실 때문에 서서히 무너지는 소경이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에서 미천한 신분은 보고도 못 본척해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핸디캡을 능력치로 승화한 경수를 통해 ‘어디를 봐야 할지’를 정확히 가리킨다. 보기 싫은 건 그저 눈 감으면 편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눈을 크게 뜨고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 속 나침반이다. 특히 ‘본다’는 의미와 상황을 각자의 상화에 맞추어 떠올리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내릴지 고민해 보길 촉구한다.
<올빼미>는 밤에 벌어지는 내용이 많아 어둠의 끝 모를 깊이까지 표현하는 데 애썼다. 스릴러라는 장르답게 적재적소에 파고드는 음향 선택도 훌륭하다. 숨죽여 볼 수 있는 오감만족 영화다. 오랜만에 사극을 만나는 즐거움까지 쌍끌이로 가져갈 수 있는 극장에서 관람해야만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