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주거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집은 가족의 공간이자 개인의 공간이면서도 성공의 척도, 재테크 수단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인간답게 하는 요소 중 하나로, 살 곳이 없으면 비참해진다.
<기생충>의 방공호 시설이었던 허름한 반지하라도 있다면 다행일까. 영끌했는데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매일 피곤한 몸을 눕히고, 허기를 달랠 음식을 먹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집이 없다면 어떨까. 빈곤한 하루를 보내고 회복할 수 없는 피로가 날마다 쌓여갈 것이다.
생존해야 얻을 수 있게 집
어린 부부인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은 아이를 둘러업고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모델 하우스에서 진짜 집처럼 행동하는 오프닝은 이 가족이 처한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증금 사기를 당해 집도 절도 없이 모텔과 찜질방을 전전하던 부부는 벼랑 끝에 서 있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나온 한결은 고운과 서로를 의지하며 가정을 꾸렸다. 과거 파양된 아픔으로 아이를 향한 강한 책임감과 강단 있는 어린 엄마가 된 고운은 짬짬이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최근 한결은 초밥 배달로 알게 된 할머니 집에 드나들며 자질구레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유난히 덥던 여름날, 한결은 잠시 들렀다 할머니의 시체와 마주하게 된다. 충격과 놀라움이 커지지만 신고하지 않고 고민하기에 이른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을 잠시만 빌리기로 했다. 할머니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조금만 가족을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결정이었다.
고은은 미국 간 할머니 대신 한 달만 봐주기로 했다는 게 이상하지만 일단 살기로 했다. 집은 재개발 동네에 있지만 정원 딸린 단독주택이라 안락했다. 당장 아픈 아이를 돌보고 이유식도 먹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고은은 결국, 우리 집으로 만들기로 작정한다. 집이 있어 생활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생존해야 집을 얻을 수 있다고 최면을 걸듯이 말이다.
집이 없어 느끼는 공포감 전달
영화는 초반부터 참혹한 가족의 떠돌이 삶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후 스릴러 이상의 서스펜스가 형성되자 기묘한 장르적 변화를 시도한다. 최대한 정직하게 살려고 아등바등했던 부부는 빈집에 기생하며 영역을 확장한다. 마음에 들지 않던 벽지를 바꾸고 가구를 버린다. 살기 좋은 동선으로 꾸미고 진짜 본인의 집인 양 행동한다.
관객은 혼란스럽다. 그들을 끝까지 응원만 할 수도 없고 내쫓기엔 복잡한 감정이 차오르기 때문이다. 영화 <홈리스>는 N포 세대의 청년 빈곤과 주거 문제, 노인의 외로움과 고독사, 재개발, 가출 청소년, 가정폭력 등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녹여내 한데 담았다. 소재만 봐서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사실적인 캐릭터와 피부로 와닿는 이야기로 몰입도가 강하다. 임승현 감독의 데뷔작이며 단편부터 공동 각본에 참여한 김승현 작가와의 단단한 호흡으로 만들어 낸 영화다.
그래서일까. ‘여름’이란 계절은 더욱 가혹함을 남긴다. 시큼한 땀 냄새와 부대끼는 살갗,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녀도 가질 수 없는 것. 배달 건수를 겨우 채우고 전단을 붙이고 또 붙여도 생활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아이는 사고를 당하고 치료비와 입원비에 벌었던 돈마저도 탕진하게 된다. 가까스로 알아보고 있는 공인중개사의 행방도 묘연하고, 당장 오늘 하루 잘 곳을 찾아봐야 할 형편이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오롯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해진다.
주거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기엔 구조적 문제가 따른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세상, 돈 있는 사람은 더 벌고 없는 사람은 못 버는 기이한 구조가 현실이다. 그 속에서 할머니 집을 차지하려는 욕망은 선한 의지였을지 모르지만 서서히 집착으로 변질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부정 연금 수급에 영감받아 만들어진 영화 <어느 가족>이 떠오른다. 이 가족에게 할머니의 죽음은 실제가 아닌 환상일 뿐이었다. 한결과 고은 부부에게 할머니의 죽음은 기회였을 것이다. 이후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자꾸만 상상하게 만드는 결말의 여운이 유독 잔상을 남기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그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