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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보스> 가족 같은 회사, 완벽한 상사의 실체

스페인의 국민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 자국에서 신랄한 직장 블랙 코미디 영화 한 편에 출연했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과 세 번째 합작 영화로 하이퍼 리얼리즘 웹드라마 [좋좋소]가 생각나는 영화다. 그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007 스카이폴>에서 인상적인 악역을 맡아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던 배우다. <굿 보스>에서는 2대 CEO로 겉으로는 사람 좋은 척하지만 속에는 검은 욕망이 득실대는 이중적인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자본주의의 미소와 악랄한 썩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CEO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블랑코는 단순히 뼛속까지 나쁜 악역이 아니다. 일요일에 집에 불러 일 시키고, 은근한 직원 차별로 모욕감을 주지만. 하비에르 바르뎀은 어느 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인 실수투성이 대표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굿캐스팅이다.

평일 낮에는 일에 치이는 완벽한 대표여야 하고 퇴근 후와 주말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내와 저녁 식사 약속을 칼같이 지켜야 하는 모범 남편이다. 회사가 어려워 갑자기 해고 통보 한 직원이 있는가 하면 사생활까지 이해해 주는 직원도 있다. 그야말로 보스 마음대로인 고무줄식 논리를 펼치는 모순덩어리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흔한 보스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CEO의 일주일

우수 기업상 후보에 오른 저울 제조 회사 ‘블랑코 스케일즈’의 대표 블랑코(하비에르 바르뎀)는 오늘도 분주하다. 그는 뭐든 저울처럼 공평함과 평등함을 신조로 삼는 사람이다. 사실 모토가 잘 지켜지지 않아 문제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심사위원 방문 날짜만 아니라면 그날도 평화로운 여느 하루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블랑코가 수상에 목매다는 게 처음이 아니다. 몇 차례 수상했고 이미 잦은 인터뷰로 유명세도 있지만 여기서 안주하는 건 목표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일까. 마치 트로피 수집가처럼 새로운 타이틀을 따기 위한 야심에 찬 보스의 얼굴이 언 듯 보인다.

대표의 자리는 쉽지 않다. 눈엣가시가 사방에 있다. 일주일 뒤 있을 심사에 전력투구해야만 하지만 직원들이 도와주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골치다. 며칠 전 정리해고된 호세(오스카르 데 라 푸엔테)는 회사 정문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하고 있다. 이번 실직으로 이혼하게 되었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와 점거 농성을 벌이며 복직을 원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창립 멤버 아들이자 30년 지기 미랄레스(마놀로 솔로)가 이혼 위기를 겪자 회사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미랄레스는 프로답지 않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 실수를 연발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만 어쨌거나 끌어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 눈감아 준다. 사장이 부하의 사생활까지 해결해야 하는 극한 피로가 누적된다.

머리 아픈 일도 있지만 사실 신바람 난다. 최근 새로 들어온 인턴 릴리아나(알무데나 아모르)의 추파가 싫지만은 않기 때문. 딸뻘 되는 나이라 머리로는 안되는 걸 알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아내 몰래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하지만 약점 잡혀 부적절한 관계가 된 릴리아나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블랑코의 목을 죄어온다. 다사다난 했던, 어디로 향할지 몰라 버둥거리던, 일주일이 드디어 끝이 보이는 것만 같다. 블랑코는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수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을까?

꼰대 갑질 대표의 모든 것

영화는 갑질 사장과 이에 질세라 발악하는 직원들의 좌충우돌 대환장 일주일을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쉽게 덮으려고만 했던 작은 행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쓰나미가 되어 버린 상황이 이어진다. 스페인 노동 현장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지만 한국과 비슷한 기시감에 씁쓸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한다면 어떨까 떠올려 보기도 했을 정도다. 부당한 노동 환경과 실태 고발 등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그만큼 스페인 영화지만 공감 가는 상황이 여럿 등장한다.

블랑코는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보스다. 오랜 세월 함께한 나이 든 사원의 노후를 책임지고 아들의 죽음까지 함께 하는 가족 같은 회사. 노력, 균형, 신의를 모토로 내세우는 회사. 하물며 흔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회사다. 능력만 있으면 아랍계 사원이라도 책임자로 승진하고, 인턴도 단숨에 마케팅 팀장이 될 수 있는 깨어 있는 회사를 표방한다.

하지만 블랑코 식 평등과 공평함은 회사에 이익이 되는 모든 방법을 말하는 것이었다. 외과 의사처럼 원하지 않아도 문제가 된다면 잘라내야 하는 숙명이란 소리다. 그 방법이 법에 어긋나고 윤리적이도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직원들을 가족같이 생각한다면서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간사함이 습관이 되었다.

이를 증명하듯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영화 전반에 깔려 자주 언급된다.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물리 법칙을 통해 변하게 마련인 심리를 정당화한다. 정확한 무게를 얻기 위해서 때로는 속여야 할 때도 있다는 말이 거듭된다.

영화가 끝나면 은은하게 스며드는 꼰대의 품격, 자본주의의 두 얼굴, 말로만 평등과 정의를 외치던 어느 사장이 어렴풋이 생각날 것이다. 스페인의 회사지만 직장을 다녀 본 혹은 다니고 있다면 공감되는 풍자가 가득하다. 갑질 사장에 의해 언제든 정리해고 될 수 있는 고용불안을 겪는 모든 을을 향한 외침처럼 들린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의 모든 을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어 슬프다.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뜨지만, 직장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해야하만 하는 고달픈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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