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어려운 세상이다. 원하는 게 있어도 문제, 원하는 게 없어도 문제다. 그 분야가 문화 예술 계통이라면 더욱 힘들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 현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과의 갈등. 그리고 필수 불가결한 생계까지 말이다.
정원희 감독은 프랑스 유학 시절 일렉트로닉 음악과 디제잉을 접하고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중 테크노 장르는 리스너가 주체가 되는 음악이다. 보통 디제이가 트는 음악에 리스너는 수동적으로 춤을 추거나 감정을 느끼지만, 테크노는 자신의 철학을 녹여 낼 수 있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나가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이 테크노 디제잉인 거다. DJ 고유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재해석하면서도 세상의 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룰을 만드는 성장이 테크노를 통해 이루어진다.
영화 <둠둠>은 음악을 반대하는 엄마와 돌봐야 하는 아이가 있는 한 여성의 성장기면서도 상처를 보듬어 주는 치유의 드라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더 킹: 영원의 군주], [구미호뎐] 등에서 신비롭고 이국적인 매력으로 눈도장 찍은 배우 김용지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실제 성격과는 정반대인 캐릭터를 위해 내외적 변화를 시도한 김용지는 어느새 이나가 되어 있었다. 꿈을 좇아가고 싶지만 편집증을 가진 엄마가 짐이 되어버린 흔들림을 투명한 얼굴로 그려냈다. 이나의 얼굴에서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받을 기회가 될 것이다.
심장을 뛰게도, 멈추게도 하는 비트
음악의 비트를 의성어로 표현한 제목 ‘둠둠’은 이나가 하고 싶어 하는 꿈의 소리이자 가슴이 뛰는 심장의 소리다. 음악이 전부인 게 이기적인 건지 고민하는 이나(김용지). 낮에는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가끔 위탁가정에 아이를 보러 간다. 한때 잘나가는 이 분야의 실력자였지만 출산 후 모든 것을 단념했다. 직장은 어쩔 수 없이 다니고 있고, 집은 언제나 숨 막히고 위태롭다.
무엇보다 엄마(윤유선)는 그 아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미혼모가 될 딸의 미래가 자신의 과거와 겹쳐 보이기 때문일까. 아빠가 죽은 후 의지할 곳을 잃어버려 이상행동까지 잦아졌다. 이나는 독립해 아이를 데려올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최대한 빨리 데려가겠다는 다짐만 벌써 몇 번째다. 엄마의 상황이 좋지 못해 이마저도 포기할 위기다. ‘조금만 더..’라는 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지자 위탁가정에서도 입양 보낼 것을 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비트를 따라 들어간 골목에서 디제잉을 다시 결심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선배 준석(박종환)의 격려도 한몫했다. 오디션에 합격해 베를린에 가고 싶다는 소박한 목표도 생겼다. 베를린은 일렉트로닉 음악의 성지라 무조건 합격해야만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이와 살면서 좋아하는 음악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다.
그러나 그리 쉽지만은 않다. 마니아층이 짙은 테크노와 대중적 성공이란 두 마리 토끼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심해지는 엄마의 의심, 창작의 고통과 동료와의 갈등, 어린 딸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는 이나를 안팎으로 옥죄어 간다.
‘갈등’에서 출발한 이야기
영화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라는 말에 방점을 찍는다. 사랑이란 이름의 통제는 관계를 급격히 무너트린다. 엄마는 아빠가 사망한 후 하나뿐인 가족이자 딸인 이나에게 집착한다. 이나가 자신을 버릴 거란 걱정은 심해져 병적 수준으로 치닫는다. 음악영화처럼 보이지만 심리 스릴러나, 공포영화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엄마와 연결된다. 꿈을 좇는 어려움과 음악이란 탈출구가 테크노 비트와 어우러지며 해방감을 맞도록 설정했다. 어울리지 않는 두 축과 미혼모라는 사회적 편견, 고질적인 문제가 뒤엉키며 끊임없는 긴장감을 더한다.
엄마는 언제라도 지진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막연함으로 방공호를 만들어 충동을 유발한다. 이와 더불어 신앙심마저 크게 뒤틀려있다. 심적 안정을 찾아야 할 교회에서 오히려 엄마의 횡포는 심해지기만 한다.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딸을 투영한 카니타(베스티)를 억압해 대리만족을 얻는다. 그런 엄마를 알면서도 이나는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모녀 사이의 틈은 좁힐 수 없이 벌어지기만 한다.
영화는 내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며 불안을 키운다. 그러다가 진짜 지진이 발생한다. 아슬아슬해 보이던 위험이 오히려 무너져 버리자 관계는 회복되는 듯 보인다. 이나는 그동안 막연한 공포를 안고 살던 엄마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고 각자의 상처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지진’은 갈라섬이 아닌 이어짐을 위한 연결고리였다. 진짜로 일어날지 몰랐던 지진은 이나의 제왕절개 상처처럼 하나의 경험이 되어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오지 않을 위험을 걱정하다 관계를 망치기보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자는 메시지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심장을 두드리는 전자 비트와 어울리지 않는 교회 장면의 매칭은 이질적이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를 풍겨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