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광주인화학교에서 8명 이상의 장애 학생들에게 가해진 성폭력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학교 설립자의 아들인 교장과 행정실장 형제 그리고 여러 명의 교직원이었다. 이 영화가 개봉한 2011년, 이웃나라 대만에서도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침묵의 숲>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우리에게는 <도가니>가 떠오르게 만드는 영화다.
이 작품은 한 청각 특수학교에서 벌어진 학생들 사이의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창청은 특수학교로 전학을 간다. 자신과 같은 청각 장애 학생들 사이에서 동질감을 느끼던 그는 베이베이라는 소녀와 가까워진다. 수영을 잘하는 게 소원이라는 베이베이와 함께 행복한 추억을 쌓아가던 창청은 어느 날 스쿨버스 맨 뒷좌석에서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된다. 샤오광을 비롯한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베이베이를 성폭행하고 있는 것.
장난을 가장해 주기적으로 가해지는 이 성폭행을 베이베이는 조부모에게 알리지 못한다. 자신을 돌봐주는 조부모가 받을 충격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베이베이를 망설이게 만든 건 학교의 침묵과 이곳을 나가면 외톨이가 된다는 점 때문이다. 베이베이는 성폭력 사건을 담당교사에게 알렸으나 교사는 샤오광이 장난이었다고 한 점과 손이 붙잡힌 베이베이가 확실한 거부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침묵을 강요한다.
작품은 도입부에서 창청이 자신의 지갑을 훔친 노인을 쫓아가 폭행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창청이 다소 거친 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이후 스토리 전개를 유추하게 만든다. 동시에 청각장애가 있을 뿐인데 창청을 모자란 사람 취급하며 노인의 거짓말만 믿는 경찰의 모습을 통해 사회가 지닌 장애에 대한 편견을 보여준다. 베이베이 역시 이런 편견을 경험했을 것이고 때문에 일반학교로 전학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관객에게 이해시킨다.
다음으로 작품은 충격적인 전개를 선보인다. 창청을 통해 베이베이의 사건을 알게 된 신임교사 왕다쥔은 교장과 함께 사건을 조사하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교직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쉬쉬했고 샤오광 무리에 의해 성범죄 피해를 입은 학생만 120명이 넘는다는 점을 말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성범죄가 놀이처럼 퍼져있었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구분하는 일 역시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에 교장은 왕다쥔을 비롯해 학생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이 작품의 제목이 ‘침묵의 숲’인 이유는 두 가지 이유다. 먼저 피해자들이 청각장애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소리를 지를 수 없기에 성폭행을 당하는 중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다음은 조직적으로 범죄에 대해 침묵을 하는 교직원들이다. 이들은 듣고 말할 수 있음에도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 때문에 작품은 집단에 갇힌 학생들과 그 안으로 학생들을 몰아넣은 교직원들을 통해 고통에 얼룩진 나무들로 가득한 숲을 완성한다.
이 작품의 다소 충격적인 점은 성폭행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도가니>의 경우 성폭행에 대한 암시만 있었을 뿐 실제 성폭행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때문에 베이베이가 버스 맨뒷좌석에서 성폭행 당하는 장면은 창청은 물론 관객들에게 순수하게 느껴졌던 아이들의 모습이 한 순간 무너지며 지옥으로 바뀌는 정신적인 추락을 선사한다. 이 장면은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요소다.
시나리오에도 직접 참여한 커첸넨 감독은 일부러 성폭행 장면을 극대화시키며 사건을 관객들이 직시하게 만든다. 이 선택을 통해 얻고자 한 효과는 자극적인 포르노가 아니다. 바로 편견이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영화 속 청각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경험한 어른들처럼 장애에 편견을 지니게 된다. 샤오광을 비롯한 장애를 지닌 아이들을 장애 뒤에 숨은 악마들로 바라보며 분노한다. 사회에 정상적으로 참여할 수 없기에 일부를 바탕으로 전체가 매도당하는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처럼 말이다.
작품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문제를 조명하며 왜 수많은 아이들이 침묵 속에 살아가야 했는지, 왜 샤오광과 같은 괴물이 탄생했는지를 보여준다. 학생이 아닌 학교를 중시하는 교장과 교직원들의 모습은 결국 장애 뒤에 숨어서 악마가 되어가는 존재가 누구인지 보여주며 자극 속에서 편견을 지녔던 관객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이것이 침묵으로 가득한 이 영화가 그 어떤 수다가 많은 영화보다 강한 울림을 지닌 이유다.
<침묵의 숲>은 두 신예배우 진연비와 리우 쥬 촨의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베이베이 역의 진연비는 이 작품으로 금마장 신인배우상을, 창청 역의 리우 쥬 촨은 인도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특히 진연비는 청순하고 귀여운 외모로 제2의 비비안 수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기에 <보희와 녹양>에서 승현 역을 맡았던 김현빈이 샤오광을,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유관정이 왕다쥔 역을 맡으며 기존과 다른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매력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