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K-콘텐츠의 궁합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오징어 게임>이 인도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하며 넷플릭스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 이전에도 김은희 작가의 <킹덤>을 비롯해 <스위트 홈> 등 오리지널 시리즈가 큰 흥행을 기록한 건 물론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권에서 높은 인기를 구사하며 넷플릭스 구독자 유입 또는 유지에 큰 도움을 주었다. 영화 역시 <#살아있다>나 <승리호> 등의 작품이 플랫폼 내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반면 예능은 넷플릭스와의 호흡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민 MC 유재석을 메인으로 내세운 <범인은 바로 너>는 추리예능을 선보였으나 국내에서 선보인 수준 높은 추리예능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받았고 시즌3는 용두사미로 막을 내렸다. 박나래와 유병재를 메인에 내세운 스탠드업 코미디 역시 국내 예능계에서 익숙한 장르가 아니었던 건 물론 두 예능인의 부족한 역량으로 만족스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예능은 K-콘텐츠와 좋은 기억을 만들지 못한 넷플릭스의 새 예능 <백스피릿>은 현재 예능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인물인 ‘백주부’, 백종원을 메인으로 내세운 건 물론 기존 한국 히트예능이 지닌 색깔에 주력하는 작품이다. 예능의 코드는 그 국가의 정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미국식 화장실 코미디에 크게 열광하지 못하는 거처럼 앞서 언급한 스탠드업 코미디 등 국내 시청자들에게 익숙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거리가 먼 포맷은 환영받지 못한다.
<백스피릿>은 힐링예능에 가깝다. 백종원이 메인 MC로 등장해 게스트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술 한 잔 기울인다. 부산, 강릉 등 다양한 장소와 전통술집, 호프집 등 다양한 가게를 배경으로 하며 여행예능의 향기도 곁들인다. 여기에 메인으로 우리의 전통 술을 내세우면서 술에 맞는 안주를 곁들여 음식예능의 면모도 갖춘다. 국내에서 잘 통하는 예능의 요소를 합쳐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한다.
백종원은 한국 예능계에 있어 특별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요식업을 주 업무로 하는 기업인 더본코리아의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로 사업가이자 요리연구가이며 동시에 연예인이다. 세 분야에서 모두 유명인이자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요식업 분야와 관련된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 연세대 출신에 외국어에 능통한 엘리트이자 직접 장사를 하면서 익힌 능청스러우면서도 구수한 입담으로 방송계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
1인 방송을 소재로 한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시청자와 활발하게 소통하며 처음 방송가에 이름을 알린 백종원은 독특한 존재다. 제자들을 거느리는 요리예능이 가능하고(<집밥 백선생>, <맛남의 광장>), 먹방이 중점이 되는 음식예능도 할 줄 알며(<3대 천왕>), 음식여행 예능도 가능하고(<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심사위원 또는 멘토 역할의 서바이벌이나 솔루션 예능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골목식당>, <한식대첩>)
이런 활용도에 있어 만능에 가까운 백종원이기에 <백스피릿>은 그의 다양한 재능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먼저 음식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 술과 이에 어울리는 안주를 보여준다. 소주부터 막걸리까지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는 건 물론 치킨이나 전 등 한 자리에서 다수의 안주를 먹는 먹방에도 능숙한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특유의 친화력으로 자신과 친한 연예인은 물론 처음 보는 연예인과도 능숙하게 대화를 나눈다.
시즌제 예능이기 때문에 한 시즌의 완성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게스트는 백종원과 연결점을 만들 수 있는 인물들로 설정한다. 회사를 운영하는 CEO인 박재범이나 같은 크리에이터이자 함께 일하는 식구들을 거느리고 있는 나영석 PD 등의 출연진은 백종원과 공통점을 만들며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깊은 대화를 나눈다. 실제 음주방송이란 점에서 점점 더 속마음을 털어놓는 토크의 전개가 인상적이다.
다만 백종원이 중심이 되는 토크쇼라는 점에서 약점이 존재하고 이를 가리기 위한 제작진의 선택은 아쉬움을 남긴다. 백종원은 전문 MC가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예능은 전문 MC를 두지 않는다. 대신 여행이나 미션을 통해 흐름을 전개하고 친한 연예인들을 모아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헌데 이 작품은 한지민과 같은 백종원과 처음 만나는 연예인이나 김연경 같이 접점이 부족한 운동선수가 출연하기도 한다.
즉 토크쇼를 이끄는 MC로의 능력만 조금 부족한 백종원에게 약할 수 있는 포맷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 가리기 위해 택한 건 연출이다. 1시간의 런닝타임 동안 백종원은 자연스럽게 술과 음식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주로 말하고 게스트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핵심대화는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후반부에만 짧게 진행된다. 백종원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영리한 형태를 만든 것이다.
대신 빈 공간은 연출로 대신한다. 뮤직비디오 또는 광고와 같은 짧은 연출 장면들을 군데군데 배치한다. 이런 선택은 국내 예능에서는 잘 선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몰입감을 해치기 때문이다. 내가 집중하고 싶은 건 백종원과 게스트인데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처럼 음식을 조리하는 장면도 아니고 다소 과한 음악이 들어간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같은 연출화면을 왜 보고 있어야 하는 의문이 든다.
토크를 원활하게 이끌어 내려면 <골목식당>처럼 전문 MC인 김성주가 백종원 옆에 붙는 캐스팅 구성을 취했어야 했을 것이다. 이럴 경우 전통 술과 음식에 대한 심도 높은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기존 게스트 중심의 토크쇼와 같은 형태를 취했을 것이다. 새로울 것이 없는 예능을 만들지 않기 위해 깔끔한 구성을 택했다는 점은 분명 포인트다. 다만 이 포인트를 위해 스스로 아쉬운 부분을 만들어냈다.
<백스피릿>은 ‘백믈리에’로 거듭나며 음주예능(?)도 가능한 백종원의 재능을 선보였다. 여기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는 한국 힐링예능의 미덕도 따랐다. 성공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현재 예능에서 가장 핫한 인물을 데려왔고 성공 포맷을 교집합했다. 다만 이것이 참신함과 색다름으로 연달아 성공을 거뒀던 넷플릭스 플랫폼과 K-콘텐츠의 조합에 어울렸는지는 물음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