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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15년 만난 연인이 이별하는 방법

오래된 연인이 결별하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한 영화가 우리 곁을 찾아온다. 익숙함에 길들여져 헤어지지 못하는 커플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대학 때 만난 캠퍼스 커플이었지만 20대를 보내고 30대 중반이 되어버렸다. 둘 다 미술을 전공했다. 하지만 준호(이동휘)는 공부만 N년째다. 아영(정은채)은 경제적인 부분을 지원하고 있느라 바쁘다. 이제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건지, 꿈이 뭔지, 현실에 쫓겨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싱숭생숭해진 마음에 손님으로 만난 경일(강길우)의 안정적이고 자상한 모습에 끌리게 된다. 예전부터 벌어진 마음의 균열이 드디어 터졌다. 하나같이 준호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갖은 이유를 붙여 준호를 몰아붙인다. 분명 좋아서 만났고, 행복했으며, 풋풋했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 휘발되어 버렸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뜨겁게 사랑했던 때는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서로 할퀴기에 바쁘다.

결국 아영은 준호와 크게 싸운 후 집에서 나가 줄 것을 부탁한다. 그날 이후 준호와 아영은 서로 다른 상대에게 금방 매료되어 버린다. 아영은 호감 있던 경일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고, 준호는 친구 술집에서 손님으로 만난 안나(정다은)와 사귄다. 1년 후, 아영은 아이패드를 돌려 달라며 준호에게 연락했고, 준호는 현여친 몰래 전여친을 만나러 갔다가 이상한 기분을 경험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별 영화

영화는 형슬우 감독의 단편 <왼쪽을 보는 남자>를 확장한 장편영화다. 오랜만에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전 여자친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본인과 지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해 현실감을 높였다. 영화 속 연인의 결별 사유가 된 쓰레기 투척 사건은 친구의 에피소드였고, 담에 걸려 왼쪽만 보게 되는 설정은 고등학교 때 겪었던 감독의 경험담이었다.

사실적인 연기와 표정으로 주목받는 이동휘 배우를 페르소나 삼았다. 공무원 시험 준비로 자신감 없는 준호를 구축하고, 좋아하는 미술을 포기하고 뒷바라지를 위해 생계형 공인중개사가 된 아영을 설계해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랜 연애를 경험했거나, 연인을 위해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 그 반대로 눈치를 보며 한쪽이 심하게 기운 관계에 지쳤다면. 크게 공감할 내용이 빼곡하다.

하면 할수록 낯선 이별 보고서

헤어짐이 있으니 만남이 있다고는 하나, 거듭해도 적응하기 힘든 일이 이별이다. ‘시간이 약’라는 말은 이별에도 적용되는 만국 공통어다. 한때 가족보다 가까웠지만 완전한 타인이 되는 데는 1초 걸리지 않는 허무한 관계.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치를 쌓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래서일까. 이별과 사랑은 뫼비우스 띠처럼 불분명하다. 이별을 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건지, 사랑을 했기 때문에 이별이 예정된 건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끝도 없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누군가의 연애담이다.

배우들은 자연스러운 모습과 연기로 실제 있을법한 캐릭터를 만들어 생동감이 넘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관계를 끝내고 새로운 일이나 사랑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이 소소한 웃음을 유발한다. 사랑했지만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되고야 마는 까진 연인의 모습, 그대로다.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하는 이동휘는 실제 연인과 공개 연애 중이기도 해 극적 사실감을 높인다. 물론 판타지지만 영화 속 두 여성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내는 좋은 배우다. 정은채가 뿜어내는 신비로운 아우라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톤으로 주변에 있을법한 인물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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