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방과 후 전쟁활동>, <운수 오진 날> 등 2023년 선보인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 웹툰 실사화에 진심임을 보여준 티빙은 연말을 맞이한 구독자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로 역시나 웹툰 원작의 작품을 준비했다. <이재, 곧 죽습니다>는 스스로 삶을 포기한 최이재가 죽음에 의해 12번의 환생을 경험하면서 벌과 기회를 동시에 부여받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12월 15일 파트1이 공개되었고 1월 5일 파트2 공개예정이다.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장르 종합선물세트라 할 수 있다. 파트1에 등장한 장르만 보더라도 재난, 스포츠, 학원물, 액션, 스릴러, 로맨스로 환생이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장르적인 묘미를 높은 수준으로 뽑아낸다. 시작은 불운한 청년, 이재의 죽음이다. 흙수저 이재는 대학 졸업 전 대기업 최종면접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이하지만 눈앞에서 자살한 남자의 잔상에 시달리다 놓치게 된다.
이후 7년 동안을 취준생으로 보내던 그는 사랑, 우정, 취직까지 모든 걸 놓친 최악의 하루에 결국 자살을 택한다. 이때 ‘죽음은 고통을 끝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유서 속 문구가 저승세계에 존재하는 죽음의 심기를 건드린다. 이에 죽음은 이재를 지옥으로 보내는 대신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만들고자 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몸으로 계속 환생을 시켜 고통을 끝내는 수단이 아닌 그 최정점으로의 죽음을 인식하게 고통을 준다.
다만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면 환생한 몸으로 인생 2막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희망을 남긴다. 한 사람의 죽음 직전 상황을 저장한 세이브 파일을 이재가 다시 플레이하는 거라는 죽음의 설명은 게임 같은 설정을 통해 체험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이재라는 플레이어가 랜덤으로 선택이 된 캐릭터로 매번 바뀌는 극한미션을 깨기 위한 분투와 기대, 그리고 좌절과 분노가 반복되며 카타르시스를 유발해낸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살아남기, 낙하산 없이 목표지점 도달하기 등 익스트림한 미션부터 학교폭력에서 살아남기, 교도소에서 살아남기 등 특정 장소와 상황을 지정한 생존미션 등 누가 봐도 흥미로운 설정을 각각의 환생코스에 담아내며 재미를 준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하병훈 감독의 연출력이다. 하드보일드 액션과 벚꽃이 날리는 로맨스라는 상반된 장르를 높은 완성도로 담아내며 어떤 모습의 이재여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서사적인 측면에서 몰입의 부족과 죽음이 게임을 설정한 이유에 있다. 초반 이재의 서사는 그가 불행에 빠지는 순간들만 나열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이 인물이 누구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며 주인공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들 생각이 없다. 게임처럼 플레이와 체험이 우선시 되는 갈래라면 서사가 몰입을 유발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다음 회차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중요한 드라마에서 초반 주인공 서사 쌓기를 게으르게 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때문에 이재의 감정이 격화되었을 때 감정적으로 와 닿는 지점이 약하다.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를 떠올리는 장면이나, 옛 연인 지수를 만났을 때 느끼는 애상의 정서 등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더해서 첫 번째와 두 번째 환생의 경우 허무엔딩이 이야기가 지닌 맛의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번지르르한 껍질에 비해 알맹이가 아쉬운 이유는 어찌 보면 이 모든 걸 설계한 죽음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죽음은 바벨탑, 노아의 방주 등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한 오만을 보여줬을 때 그에 해당하는 처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삶과 죽음에 도전한 이재에게 벌과 함께 기회를 담은 환생체험을 시킨다는 점은 이 끝에 어떠한 의미의 전달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죽음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오만과 궤변이 과연 이 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4화까지의 전개만 보아도 이재의 환생 스토리는 그의 불행과 오락적인 요소에만 집중할 뿐 이를 통해 삶에 대한 의미나 죽음의 무거움을 보여주는 의미전달은 수반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돈 때문에 살인을 한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재에게 너도 돈 때문에 자신을 죽이지 않았냐는 죽음의 말은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닌 악질의 궤변을 듣는 듯하다.
짧고 다양한 걸 원하는 쇼츠의 시대에 푹 빠진 이들이라면 <이재, 곧 죽습니다>의 장르적인 다양성과 순도 높은 오락성에 반할 것이다. 다만 서사와 캐릭터를 통한 드라마적인 몰입을 바랐다면 다소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파트1이 충분한 체험의 재미를 주었다면 파트2에서는 이재를 둘러싼 미스터리와 지옥이 설계한 이 환생게임이 확실한 깨달음 또는 교훈을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