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한 편의 OTT 드라마가 공개된 후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논란이 일었다. 그 논란의 작품은 웨이브가 자체 오리지널로 공개한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이다. 이 드라마에서 논란의 장면은 김성남 역의 백현진 배우가 ‘한남’을 욕으로 쓰는 장면이다.
젠더 이슈 갈등이 극에 치달은 현재에 특정성별을 욕설로 썼다는 사실만으로 이 작품은 도마 위에 올랐다. 때문에 왜 이 작품이 한남을 욕으로 썼는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전편을 관람한 <이상청>은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게 맞나 싶을 만큼 신랄한 정치풍자 블랙코미디다.
지상파 OTT 웨이브가 단독 플랫폼 공개를 결정한 이유
웨이브는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OTT다. 지분율에 있어 SK텔레콤이 36.4%로 가장 높은 지분을, 지상파 3사가 21.2%로 동일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웨이브는 자체 콘텐츠를 공개할 때 지상파와의 협업을 선보인다. <SF8> 프로젝트 당시에는 MBC를 통해, TV시네마는 KBS를 통해 작품을 공개했다.
최근에는 MBC 드라마 <검은태양>의 무삭제판을 웨이브에서만 단독으로 공개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지상파와의 협업으로 작품을 홍보하는 전략을 선보였던 웨이브는 웹드라마 <유 레이즈 미 업>의 경우 웨이브에서만 단독으로 공개를 결정했다. 이 작품의 경우 대사와 상황에 있어 지상파에서 상영이 힘들 만큼 높은 수위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지상파의 수위와 등급에 영향을 받지 않는 OTT로의 단독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청>은 이 작품에 이어 두 번째로 웨이브에서만 단독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의 경우 정치풍자의 수위가 상당히 높다. 특정 정당 특정 인물에 대해 비방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윤성호 감독은 한 회차가 30분 분량인 이 작품을 구상할 때 국내 작품이 아닌 미국 작품을 참고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마치 미국의 신랄한 정치코미디 같은 느낌을 준다. 기존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하고 신선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동시에 OTT에서만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극좌와 극우를 아우르는 신랄한 블랙코미디
작품의 블랙코미디는 여당, 야당, 극좌, 극우를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모두까기 인형이란 말이 어울릴 만큼 난사를 보여준다. 도입부 성추문으로 문체부 장관이 사퇴한 뒤 새 장관을 뽑는 과정은 코미디 그 자체다. 손병호 게임을 하면 금방 후보자가 줄어든다며 내뱉는 조건은 위장전입, 논문표절, 부동산 등 장관 후보를 채택할 때마다 정치인들이 꼭 겪는 문제다.
스포츠스타 셀럽으로 80년대 김연아로 불리는 이정은이 문체부 장관이 된 건 특출 난 능력 때문이 아닌 큰 잡음 없이 맡은 바 일을 잘 수행하기 때문이다. 윤성호 감독은 정치와 관련이 없는 인물이 정치판에 들어와 정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정치 소재 작품의 클리셰를 지양했다고 한다.
휴머니즘 대신 블랙코미디를 택한 만큼 현실정치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정은이 문체부 장관이 된 후 부딪힌 문제는 체수처라는 체육계 폭력,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기관의 설립이다. 이 소재는 체육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조명하면서 성범죄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다.
정치와 빼놓을 수 없는 언론의 문제도 다루는데 특종을 위한 불법 정보수집, 가짜뉴스, 권리만 보장하라 외치고 책임은 지지 않는 행태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기자가 문체부에서 근무하는 전 여자친구의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설치해 캠을 해킹한다는 점은 몰카문제와 연인 사이의 이별폭력 같은 문제를 조명한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방식 또한 기존 작품들과 다르다. 북한과 동포라는 점을 강조하며 휴머니즘의 가치를 조명한 다음 인권문제를 한 스푼 넣으며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기존의 형태에서 벗어나 직설적으로 북핵 문제를 언급한다. 북한 인사가 나타나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남한은 주가폭락을 겪는다며 북한이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강조한 점, 정부를 향한 해킹공격의 대부분이 북한 소행이라 언급한 점 등이 그러하다.
여기에 정은의 남편이자 진보 성향의 정치평론가인 김성남은 극좌의 문제를, 야당의 비대의원 팽길탄 목사는 극우의 문제를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은 각자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어떤 인물이 떠오를 만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작품은 성남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시사 이슈 뿐 아니라 세상 온갖 것에 토를 달고 싶어 하며 이 시대 청년들의 편을 자처하지만, 막상 청년들은 그를 잘 모른다. 자신이 비판하던 지난 정권 때 더 잘 팔렸다는 게 아이러니. 지금은 그냥 장관 남편. 지난날 화려했던(?) 뇌섹남 타이틀을 되찾고픈 소망이 있다’
마음만 청년이지만 이미 기득권에 접어들어 청년을 팔아서 돈을 버는 진보 지식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성남이다. 작품에서 그는 정은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며 청년들을 위해 일하는 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입만 살은 찌질한 정치평론가의 모습 그 자체다.
팽길탄 목사는 성추문으로 야당을 곤란하게 만들지만 극우의 모든 지지자들을 한 대 통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보수 정치인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신도들을 선동해 정은을 비롯한 진보인사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다. 대놓고 관련 인물이 연상되는 목사의 발언들을 넣으며 캐릭터에 더 쓴웃음을 내뱉도록 유도한다.
‘한남’이란 단어에 담긴 용기와 두려움
성남이 ‘한남’을 욕설로 내뱉는 장면의 경우 그가 지닌 캐릭터성을 더 부각시키는 효과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캐릭터를 가져오는데 있어서 현실을 진하게 반영한다. 진보논객 또는 진보를 자처하는 유명인들의 경우 젠더이슈에서 남성들을 향해 한남이란 용어로 비하하며 이들을 비판한 바 있다.
같은 남성이란 이유로 비판을 가하는 그들이지만 정작 자신들은 기득권 내부에 속해있고 자신들의 자리를 공고히 만들기 위해 아래세대에게 부담과 죄책감을 씌우고 있다. 때문에 성남이 말하는 한남은 그의 모순된 캐릭터성을 극대화시키는 대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진보평론가의 민낯을 드러내는데 이만한 대사나 상황도 없으며 진보정권 하에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대사의 선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남, 이대남을 비롯해 남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자유로운 이 작품이 젠더이슈의 또 다른 축인 여성, 특히 페미니즘 세력의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시각을 지닐 수 있다고 본다. 이 지점은 옹호하는 입장과 비판하는 입장 모두 각자의 주장에 타당성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옹호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작품의 전체적인 결을 고려할 때 페미니즘 이슈를 넣는 건 과한 기계적인 평등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이 작품의 도입부 핵심 소재인 체수처는 성범죄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서브플롯 중 하나는 몰카와 관련된 문제다. 이런 흐름 속에 페미니즘을 넣으면 극이 지저분해질 우려가 있다.
스토리의 흐름상 상충되는 소재를 충돌시킬 경우 더 넓은 담론을 펼쳐야만 한다. 블랙코미디의 색깔을 지닌 작품이 담론을 펼치는 순간 장르의 색깔은 연해진다. 진중한 정치드라마로 빠지게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색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을 때 중심플롯을 고려해 한쪽의 이슈를 포기하는 것이 흐름에 어울린다.
비판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주 소비계층을 고려한 두려움이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말 그대로 여성소비자 파워가 막강하다. 페미니즘은 여성인권운동이다. 이를 풍자의 형태로 담아내면 여성인권은 우스꽝스럽게 비춰지며 미투운동 등 여성인권신장에 기여한 운동 역시 그 색깔이 퇴색될 수 있다. 역풍을 맞을 우려가 높다.
때문에 이 작품이 공격하는 건 20대 남자다. 어찌 보면 비겁한 선택이다. 공격해도 역풍이 약한 대상을 골라낸 것이다. 앞서 언급한 몰카를 심어둔 캐릭터인 신교환에 대한 설명을 작품은 ‘문체부 직원 맹소담의 구남친. 문제적 20대.’라 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대남을 풍자란 이름으로 저격한다.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시각을 지니지 않을까 싶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달은 다수의 정보를 요약본으로 제공하며 재미를 주지만, 특정 장면의 캡처를 통해 작품의 의도가 아닌 작성자의 의도를 전달한다. 이 작품이 시도하는 풍자는 사람마다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만큼 다르게 읽힐 것이다. 때문에 직접 작품을 보고 그 흐름 속에서 판단하는 걸 권장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