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니스>, <애들이 줄었어요>, <빽 투 더 퓨쳐>, <쥬만지> 등 8090년대 어린이 모험서사 영화의 특징은 우연한 사건으로 아이들이 모험을 떠나며 그 안에서 성장을 거듭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오락적인 재미에 중점을 두며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모습을 선보인다. 2000년대 들어 이런 어린이 모험서사는 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아이들이 떠나는 모험에 특정한 ‘이유’를 설정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해리 포터>라 할 수 있다. J.K.롤링의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한 이 판타지 영화는 볼드모트라는 어둠의 마법사로부터 살아남은 아이 해리 포터가 마법학교 호그와트에 입학한 후 펼쳐지는 모험을 다룬다. 해리 포터에게 모험은 앞서 언급한 작품들처럼 우연이 아니다. 타고난 운명으로 인해 고난의 길에 오른다. 2000년대 들어 아이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모험서사는 이유를 설정하고 그 이유는 어른들이 된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아이들은 즐겁다>는 어린 아이들이 모험을 떠나는 서사를 다룬다. 9살 다이는 몸이 아픈 어머니와 돈을 벌기 위해 항상 바쁜 아버지 사이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낸다. 다이에게는 어머니가 몸이 아프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온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또래집단보다 부모의 영향이 큰 시기다. 가정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다이는 더 어머니에게 집착하고 즐거움을 주고자 모범생이 된다.
동시에 내면에 죄책감을 지닌다.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도덕적인 관념이 완전히 자리 잡히지 않은 어린아이는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탓이라고 하면 이를 믿고 우울에 빠진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깊게 내뱉지 않은 말이 어린아이에게는 깊게 다가온다.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고 착하게 행동하면 어머니가 빨리 나을 것이라 믿는 다이의 내면에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아프다는 사실을 숨긴다. 이 거짓말은 거대한 스노우볼이 되어 사건을 만든다. 거짓말쟁이로 몰린 다이는 내면의 죄책감이 부정으로 이어지는 단계에 이른다. 자신이 기울인 노력이 모두 헛된 것이며 어머니가 아프다는 사실은 결국 우리 가족이 불행해질 것이란 결말에 이른다. 죄책감이 위태롭게 붙잡고 있던 희망의 가능성이 무너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작품은 다이의 슬픔을 보여주며 이 슬픔을 극복하는 모험을 그릴 것을 암시한다.
다이의 모험은 어른들에 의해 이뤄진다. 다이는 항상 얼굴에 웃음을 지니고 있는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내면은 슬픔으로 얼룩져있다. 감정은 전염병과 같다. 다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슬픔을 보이지 않으려 하지만 감정의 홍수는 가면으로 감출 수 없다. 오히려 다이도 어른들처럼 가면을 쓰고 슬픔을 내색하려 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란 말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다이가 모험을 통해 ‘찐웃음’을 찾게 되는 건 모험을 떠나면서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다이는 친구들과 함께 병원을 찾아 나선다. 이 서사에서 다이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재경이다. 재경은 다이와 갈등을 빚는 반동 캐릭터다. 다이의 좋은 성적이 컨닝을 했다는 모함을 하는가 하면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한다. 재경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조급증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재경의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극성맘이다. 아들의 성적에 집착하며 운동장이 아닌 학원에서 살게 한다. 학교에서 학원까지 직접 운전을 하며 관리를 빙자한 감시를 하는 건 보너스다. 이런 어머니의 조급함을 닮은 재경은 다이가 높은 성적을 거두자 컨닝한 거 아니냐는 어머니의 말을 믿고 다이를 추궁한다. 자신의 실패를 남의 부정으로 생각하는 성급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런 다이와 재경의 사이는 길에서 곤충을 함께 관찰하는 것으로 금방 해결된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운동장과 같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함께 뛰어 놀 수 있다. 우연히 다이와 친구들의 모험에 동참한 재경은 자연스럽게 그들과 우정을 나눈다. 마음에 쌓인 앙금은 한 순간에 풀어지며 절친한 사이가 된다. 섬세한 설정이나 감정선을 뒤집을 만한 설정이 필요하지 않다. 다이와 재경이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정말’ 즐겁다. 슬픔의 감정을 한 순간 지울 수 있는 긍정의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슬픔을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성장의 순간이 슬프게 다가온다. <머드>나 <조> 같은 사연이 있는 어른과 만나 일련의 사건을 겪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는 어른의 슬픔으로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그린다. 2000년대 이후 아이들의 모험을 다룬 영화는 성장의 기쁨에 슬픔의 의미를 담는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아즈카반의 죄수’가 호평을 받은 이유는 해리의 성장에 슬픔을 담았다는 점에 있다. 이전까지 마법의 세계에서 호기심과 용기로 모험을 펼쳤던 해리는 부모의 죽음과 관련된 인물인 시리우스 블랙이 탈옥했다는 사실에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다. 부모의 슬픔과 어른들의 문제가 해리의 성장을 이끌어내며 동시에 우울한 정서를 가져온 것이다.
이후 <해리 포터> 시리즈가 1, 2편과 달리 어두운 분위기를 지니게 된 것도 이런 점에 있다. 성장은 한 번 이뤄지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즐겁기만 했던 아이인 해리 포터는 사라졌고 어른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성장한 해리 포터만이 남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즐겁다>에서 슬픔을 보여주는 건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즐겁다. 허나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다이와 재경이가 주먹다짐을 벌였을 때 교무실에서 다이의 아버지는 재경의 어머니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두 사람은 다이와 재경이처럼 악연으로 만났다. 헌데 이 두 사람은 과연 자신의 아이들처럼 함께 여행을 떠난다고 친해질 수 있을까. 이 점이 이 영화가 슬픈 점이다. 어른인 관객에게 아이들의 모습은 동심과 순수함을 주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기에 정신적인 아픔을 유발한다.
이런 서사는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에서도 볼 수 있다. 매일 부모가 다투는 집안에서 자란 하나와 집안 사정으로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하는 유미와 유진 자매는 진짜 자신들의 집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이 모험은 무조건적인 순수함과 따뜻함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는 서술자인 하나의 감정에 있다. 마치 다이처럼 자신이 잘해야 가정이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하나는 가면을 쓰지 않아도 웃을 수 있는 시절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성숙해져 버렸다.
현대의 어린이 모험서사 영화는 우울한 어른들을 등장시킨다. 어른들의 문제와 감정이 아이들을 전염시키고 그 감정을 품은 아이들의 모습은 무조건적인 유쾌함과 순수함으로 포장할 수 없는 복잡한 내면을 형성한다. 8090년대 영화와는 달라진 아이들의 모험은 어쩌면 오늘날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이 지닌 슬픈 초상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