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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 어느 날 최애 오빠가 성범죄자가 되었다

덕심은 거대 아이돌 산업과 맞물린다. 끊임없이 좋아하게끔 만들어진 허상을 상징화하고 고 복제하며 소비하게 부추긴다. 본인이 산업에서 소모되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할 만큼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또 다른 아이돌을 만들어 낸다. 덕질은 일종의 중독이라 재미를 느끼고 계속하게 된다. 게임처럼 단계를 넘고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도 하고 원하는 것을 얻으며 즐거움을 느낀다. 무언가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행동을 가리켜 덕질이라고 하며 그런 사람을 덕후라고 한다. 그 대상이 연예인일 경우 팬이라고 부르며 성공한 덕후라는 ‘성덕’으로 칭한다.

영화는 중학생 때 벼락처럼 찾아온 첫사랑. 정준영을 향한 사랑과 원망, 찬란했던 과거의 감독 본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다. 한때 같은 마음이었던 또 다른 성덕을 찾아다닌 기행문이며, 심정을 나누었던 인터뷰집이다. 사춘기에 막 눈 뜬 10대를 모두 바쳤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오빠를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성덕>은 5년 동안 사랑했던 오세연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팬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한때 스타였지만 지금은 범죄자가 된 구오빠의 팬을 소환해 이미지의 허상을 고발한다. 사람을 좋아한 게 아니라 이미지를 좋아한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믿을 만한 사람, 바르고 정직한 어른이라 생각했던 건 순진한 착각이었다.

이미지와 현실의 차이가 너무 컸다. 예쁜 무지개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신기루였다. 인생의 한 부분을 도려내야 하는 아픈 경험으로 되돌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 마음이 헛헛하고 뻥 뚫린 기분이다. 동경했던 세상의 창시자이자 5년 동안 판타지가 모두 사라졌다. 일상이 붕괴되었고 추억이 사라졌다.

1999년생인 오세연 감독은 각본, 연출, 촬영, 편집, 출연까지 하며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학생 신분에 데뷔한 주목할 만한 신예 감독이다. 과거 정준영 팬클럽 사이에서 성덕이란 타이틀로 유명했다. 한복을 입고 등장해 스타에게 어필했던 소녀였다. 누군가에게는 닮고 싶은 멋진 롤 모델이었고 남다른 순정으로 방송까지 출연했다. 정준영 바라기로 아낌없는 진심을 전국적으로 선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2019년 이후 완벽한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구오빠는 삶의 일부이기도 했기에 모든 게 무너지는 듯했다.

감독이 만난 팬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부정, 분노, 실망, 포기, 수용 등 감정도 다양했다. 마치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과연 나는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를 두고 괴로워하기도 했다. 더 고통스러운 건 응원했던 것만으로도 공범이 된 듯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본인 과거를 추억하면 할수록 범죄에 가담한 거 같아 찝찝했다. 아름다운 과거지만 드러낼 수 없어 혼자만 간직할 뿐이며, 이마저도 매번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추앙한 스타의 팬이 주인공

그렇다. 이 영화는 연예인에 관한 영화가 아닌 철저히 팬들을 위로하는 팬이 주인공인 영화다. 과거를 되짚으면서 한 단계 성장하고 공감하며 성찰까지 하게 된다. 남들 눈에는 그저 빠순이라며 눈총 받았지만 따지고 보면 얻은 게 더 많았다. 삶의 가치관과 사람 보는 눈, 실패 경험과 좋은 인연이었다. 오빠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영화까지 만들어 감독이 되었다. 큰 충격 받고 다시 일어설 용기, 회복 탄성력이 좋으면 실패를 기회로 맞바꿀 수 있다.

스타를 향한 동경은 때론 성장으로 이어진다. 잘 보이고 싶고 자랑스러운 팬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오세연 감독이 전교 1등을 놓쳤을 때, 공부도 잘하라는 구오빠의 격려에 힘입어 순위를 되찾은 경험이 있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며 돈과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때를 손꼽았다. 그때까지 그가 무대에 서 준다면, 언제든지 콘서트도 갈 수 있겠지 싶어 열심히 살았다. 몇 년 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서울에 왔다. 만나긴 만났는데 이게 무대가 아닌 법원인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감독의 자조 섞인 자기 희화화는 풍자와 해학으로 격조를 높여간다.

이제서야 성덕의 정의를 다시 세워본다. 성덕이란, 별 탈 없이 오래 좋아하면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언젠가 또 성덕이 될지 모를 탈덕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누군가를 다시 최고로 여기기 앞서 자신을 최애로 생각하기를, 건강한 덕질은 나부터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셀프덕질 할 수 있는 자가 세상을 구한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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