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저스]인간 이성과 본성이 상충할 때

<보이저스>는 환경오염으로 더 이상 지구에서 생존이 어려운 인류가 식민 행성을 찾아 모험을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구 온도 상승으로 가뭄과 기근에 시달리던 인류는 2063년 지구와 유사한 행성을 찾는데 성공한다. 대대적인 인류 이주 프로젝트를 꿈꾼 것도 잠시, 새로운 행성까지 86년이란 계산이 발목을 잡는다.

이에 우성 인자만을 결합해 태어난 30명의 아이들을 탐사 대원으로 선발했다. 대원들은 어릴 때부터 지구를 그리워하지 않게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해야만 했다. 모든 것은 컴퓨터로 학습하고 넓은 대지, 빛, 사람들을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잔인하고 극단적인 방법 같지만 돌아올 수 없는 편도 여행길에 맞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었다. 이들은 인큐베이터의 아기처럼 철저히 관리되었고 완벽하게 설계된 최후의 인류가 된 것이다.

드디어 방주를 연상케하는 우주선 ‘휴머니타스 호’가 30명의 탐사 대원을 싣고 우주로 나아갔다. 믿음직한 인솔자 리처드(콜린 파렐)가 함께 했고, 순조로운 항해가 이어지고 있었다. 탑승한 아이들은 계획 출산으로 식민 행성에 터전을 잡아야 할 의무를 따라야 했다. 어릴 적부터 무의식적으로 주입된 의무는 10여 년이 되자 모종의 의문으로 피어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한 친구 사이인 크리스토퍼(타이 쉐리던)와 잭(핀 화이트헤드)은 이상한 정황을 포착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두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정보에 의문을 갖는다. 그들 생활의 일부인 음료 ‘블루’가 통제 약물임을 알아 내자 둘은 섭취를 중단했다. 그러자 즉시 통제력을 잃고 충동이 찾아오게 된다. 급기야 셀라(릴리 로즈 멜로디 뎁)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생긴 크리스토퍼와 잭의 사이는 멀어진다.

우주선 ‘휴머니타스((humanitas)’는 인간다움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따온 말로 인문학을 지칭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주선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은 온데간데없다. 시쳇말로 공부만 잘했지 인성교육이 안된 미성숙한 존재들로 그려진다. 그 미래를 예상하고 만든 안전장치인 블루(약물)와 리처드(어른)가 사라지자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젊음의 또 다른 이름인 반항과 무절제가 고개를 내밀자 이성은 소리도 없이 자취를 감춰 우주선은 혼돈 속으로 항해한다.

영화는 러닝타임 30분 만에 리처드가 사라지며 예상했던 어두운 미래가 펼쳐지며 폭주한다. 좋은 것만 보고 배웠지만 인문학과 성교육, 그리고 사회성을 기르지 않은 탓에 본성이란 발톱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갈등을 유발하며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인류 역사도 그대로 답습한다. 인간은 악한 존재로 태어나지만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순자의 ‘성악설’과 더불어’ 매슬로의 5단계 욕구’도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잭과 크리스토퍼는 편을 나눠 대립한다. 잭은 외계인의 존재를 계속 주장하고 식량을 확보해 끊임 없이 두려움을 양산해 권력을 잡는다. 반면 크리스토퍼는 이성을 중심에 두고 공감과 협력으로 어지러운 질서를 바로 잡으려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이 다소 매끄럽지 않고 치밀하지 못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보이저스>는 <일루셔니스트>, <리미트리스>, <다이버전트>를 연출한 닐 버거 감독의 신작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심심한 영화일 수 있겠다. 시각적인 화려함보다는 인간 본성의 탐구, 심리적 갈등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형식의 SF 장르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스릴러의 요소를 기저에 두고 젊은 피를 수혈받았다. 아역 시절부터 꾸준한 경력을 쌓은 타이 쉐리던과 조니 뎁의 딸 릴리 로즈 멜로디 뎁, 주로 병약한 소년을 연기했던 핀 화이트헤드까지 할리우드 세대교체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특히 <칠드런 액트>에서 종교적 이유로 죽어가는 소년을 연기한 핀 화이트헤드의 180도 다른 연기 변신이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