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부터 강렬하다. 화면이 꺼진 강사의 온라인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다양한 표정을 보인다. 카메라는 검은 화면에서 시작해 서서히 뒤로 빠지며 전체 화면을 보여준다. 곧 등장한 272kg의 한 남자가 소파에 앉아 열심히 강의 중이다. 한눈에 봐도 육중한 몸, 흐르고 있는 땀은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다. 그들에게는 카메라가 고장 났다고 둘러댈 뿐이다.
그의 이름은 찰리(브렌든 프레이저).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오른다. 소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해결한다. 음식을 사다 주고 가사를 처리해 주는 아시아계 간호사 리즈(홍 차우)가 유일한 방문자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다. 걷는 것조차 어려워 보행 보조기를 밀면서 이동해야만 한다. 처음부터 들었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남자는 대체 어쩌다가 이지경까지 온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뿐인데 세상을 잃은 것처럼 정지해 버렸다. 이제는 너무 멀리 와 버려 돌아가는 법을 모를 지경이다. 연인이 떠난 후 슬픔과 죄책감은 강박과 폭식으로 이어졌고 초고도비만을 얻었다.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고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도 싫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힌 기약 없는 형벌을 살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사람이다.
리즈는 울혈성 심부전으로 위태로울 수 있다며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러다간 일주일도 못 버틴다고 설득하지만 찰리는 완고하다. 보험 가입이 되어 있지 않아 천문학적인 병원비가 나올 거라는 걸 아니까. 자기 목숨을 빚이 아닌 빛으로 보답해야 할 이유가 따로 있어서였다. 서서히 꺼져가는 등불을 희미하게 붙잡아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사랑하는 딸이다.
남겨진 일주일 동안 딸 엘리(세이디 싱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8년 동안이나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속죄하고 싶다. 매일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노라 약속했다. 아빠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뒤틀려 가시 돋친 말만 내뱉는 딸. 그 애가 누구보다 똑똑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는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기도 했다.
구원은 또 다른 구원을 부르고..
영화는 브렌든 프레이저의 인생 굴곡을 압축해 놓은 것 같다. 세계적인 스타였지만 성추행과 우울증, 연이은 사고로 활동을 중단했던 과거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진창에 빠진 배우를 꺼내 준 사람은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이다. 그는 <더 레슬러>를 통해 무너진 미키 루크를 구원한 바 있어 <더 웨일>은 갱생 프로젝트 2탄처럼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브렌든 프레이저는 인생 전환점을 맞이한다. 다수의 영화제를 거치며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 유력 남우주연상 후보가 되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피그>로 재기에 성공했듯이 브렌든 프레이저에게 이 영화는 굵고 튼튼한 동아줄로 작용했다.
각색에도 참여한 사무엘 D. 헌터의 연극 ‘더 웨일’을 원작으로 한다. 성 정체성에 완고한 학교에 다녔고 이로 인한 혼란을 음식으로 풀어낸 경험을 토대로 했다고 밝혔다. 연극적인 동선은 실내를 배경으로 하며 극대화된다. 화면마저도 4:3 비율이라 굉장한 몰입을 선사한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피자 배달부, 포교하려는 선교사, 친구 리즈, 딸 엘리,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아내 메리로 한정되어 있다. 폐쇄적이고 제한된 구조는 찰리의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탁월하다.
그와는 반대로 찰리의 생애는 내내 일렁이는 파도처럼 역동적이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찰리는 망가져 버린 자기 이야기를 성실히 토해낸다. 동성 연인과 사랑에 빠져 아내와 딸을 버렸지만 영원할 줄 알았던 연인은 이제 없다. 삶의 끝자락에서 후회와 참회, 슬픔의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다.
그는 딸이 쓴 《모비 딕》 에세이를 성경처럼 여긴다.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불안함이 교차할 때 이 글을 소리 내 읽으며 안정을 찾아갔다. 가급적 솔직하게 에세이를 쓰라던 강의와는 달리 솔직하지 못했던 일생을 뒤로하며 죽음에 다가간다.
고통 속에 살았던 갇힌 육체를 버리고 해방을 맞이한 찰리가 비로소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지만 찰리는 단 한 사람, 딸을 위해 스스로를 불태운다. 치료보다 시급한 건 망가진 딸을 구하고픈 절박한 마음이다. 마지막 5분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의 명장면이다.
찰리는 무게를 이겨내고 드디어 날아오른다. 진정한 용서와 구원이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이 뒤따른다. 배우를 구한 감독, 딸을 구한 아빠, 선교사를 구한 딸.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으로 느껴질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