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전 국민을 분노와 슬픔에 빠지게 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기억하는가. 솔직히 화창한 날씨에 이 영화를 보러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다 보고 나니 드디어 숙제를 끝낸 듯 조금은 해방감이 들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거니와 마주하기 힘든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상상으로 만들어 낸 허구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실화란 타이틀을 달기조차 죄송한 사회적 참사, 나에게도 언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심과 고통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가족을 위한 마음이었을 뿐인데..
동갑내기 아내 길주(서영희)와 결혼해 6살 아들 민우를 둔 모범적인 외상 센터 과장이자 의사 태훈(김상경)은 평범한 어느 날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게 된다. 평소 몸이 약했던 민우에게 수영을 시켰던 게 화근이었을까. 갑자기 수영장 중 익사 직전까지 간 아들을 병원에서 마주한 것도 모자라, 집에 다녀오겠다던 아내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아들은 급성 폐 질환에 걸려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이성을 찾을 겨를조차 없었다.
한편, 법원 내 ‘꼴통’이란 말을 듣는 대검찰청 검사 영주(이선빈)는 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진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답답함은 커지고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직접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원인 규명을 하다 보니 참혹함은 말도 못 했다. 다수의 피해자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대부분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에 영주는 평소 천직이라 생각했던 검사복을 벗어던지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사건의 변호사로 변신하게 된다. 과연 대기업과 국가가 연관된 사건에 소시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한 일일까. 영화는 오랜만에 탐사 실화를 바탕으로 끝나지 않은 비극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가해자가 증발해 버린 비극
<공기살인>은 사회적 문제를 주로 다루는 소재원 작가의 소설 ‘균’을 원작으로 한다. 1994년 처음 출시된 이후 2011년 판매 금지가 되기 전까지 17년 동안 약 1000만 개가 팔렸던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진실에 다가선다.
‘세계 최초’, ‘대한민국 유일’이란 문구를 달고 처음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는 대한민국에서 사용하지 않는 집을 찾는 게 빠를 정도였다. 하지만 검은 속내를 감추고 돈만 벌면 된다며 안일한 생각으로 일관했던 기업의 횡포로 아까운 2만여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2011년 봄에서야 본격적으로 아프거나 사망하는 피해자가 접수되었다. 피해는 환절기 감기 질환이 기승을 부리는 봄철에 주로 집중되었다. 대체로 산모, 아이, 노인, 환자 등이 집중된 가정이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조용한 살인자는 봄만 되면 나타났다가 여름이 되면 사라져버렸다.
가벼운 감기인 줄 알고 방치하다 손써볼 시간도 없이 갑자기 사망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에 의문을 품은 의사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고 억울한 상황만 커져갔다.
전대미문의 화학용품 오남용 사건으로 생긴 폐 질환 피해자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가 막힌 것은 제품 유해성을 알면서도 판 기업, 이를 승인해 준 국가, 좋은 제품이라 광고한 미디어의 어처구니없고 의도된 명백한 살인 사건이란 것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 아프지 말라고 했던 선택이 불러온 죄책감,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 몸 보다 큰 산소통을 평생 끼고 살아야 하는 아이. 대체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지 말문이 막힌다. 가족을 위한다고 했던 작은 행동이 나비 효과가 되어 일어난 살인사건. 사랑하는 사람을 내 손으로 죽였다는 낙인은 남은 가족을 평생 따라다니는 족쇄기도 하다.
17년간 일어난 사건을 108분에 압축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을 충실히 다루면서 주인공을 피해자로 설정해 친절히 안내한다.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한 연출보다 드라마틱한 요소와 악역을 적절히 배치하고 감동스러운 휴머니즘까지 극대화한다. 어쩌면 조금 촌스러운 연출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게 매력인 우직한 뚝심이다.
참사는 일어났는데 살인자는 증발해 버린 이상한 사건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이 보인다. 조용선 감독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문서를 오랫동안 꼼꼼하게 찾아보며 철저한 자료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6년 동안 90회 넘게 수정한 시나리오를 단 108분에 압축했다. 이와 관련된 전문가의 검수를 거친 시나리오라고 밝혀 충분한 진정성도 느껴진다.
특히, 답답하고 분노가 차오르는 상황으로 일관하다 후반부 터지는 사이다 결말은 익숙하지만 적절한 효과를 낸다. 후반부에 훅하고 들어오는 반전까지 더해져 큰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