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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 인터뷰 ⓶] ‘우리’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

지난 인터뷰에서 윤가은 감독과 <우리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영화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우리집>은 무더운 여름의 열기만큼 치열한 고민을 하던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면, 어른인 우리가 서 있는 흥미로운 광경을 볼 수 있던 영화다. <우리들>의 연장선이면서도 달랐던 이야기. 그리고 더 확장된 세상이 있던 <우리집>을 보며, 윤가은 감독의 영화 세계에 던지고픈 질문은 더 늘어만 갔다.

감독님 영화는 아이와 어른 세계의 단절이 보입니다.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죠. 어른들이 아이들을 걱정하고 아끼고 있다는 게 느껴지지만, 그들의 고민을 파악하는 데는 끝내 실패하는데요. 왜 감독님 영화 속 어른들은 항상 실패하는 걸까요?

저는 어른이 아이들의 세계를 보는 데 대부분 실패한다고 생각하나 봐요. 제가 어렸을 때도 어른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와닿지 않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제 영향력이 아이들에게 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이들을 지도할 때 그런 오만이 종종 생기죠.

사실 진심으로 아이들의 마음에 닿을 기회는 많지 않아요. 그렇게 하려면 아주 큰 동력과 노력, 시간이 필요하죠. 현실적으로 그런 어른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데요. 그래서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만 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지는 것 같고요.

어른들이 여러 가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아이들의 깊은 마음속까지 만져주는 게 쉽지 않아요. 아이들이 어른들의 마음속 깊이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이건 나이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는데요. 영화에서 그런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었어요.

아이들의 세계에 다가가지 못하는 실제 어른들의 모습을 영화에 반영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일반적인 영화엔 너무 좋거나 나쁜 어른이 나와요. 양극단에 있는 어른들이 나오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 중간 지대에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을 때도 있죠. 그래서 그 중간 지대에 있는 진짜 어른들을 영화에 담으려 했어요. 나쁜 어른도, 좋은 어른도 아닌 노력하는 어른이 옆에 있다는 걸 영화에 표현했던 것 같아요.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집’ 공식 스틸

저도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어른들의 실패를 감독님의 영화에서 언젠가 해결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아이들과 작업을 하면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어요. 예전에는 제가 어른이라는 생각을 못 했는데요. 어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죠. 이제야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는데, 좋은 어른이라는 걸 어딘가에서 제시해주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좋은 어른을 영화에서 그리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마냥 아이들 마음을 다 이해해주는 거짓말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좋은 어른. 그런 모델을 찾고 싶어요.

그렇다면,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요?

정말 어려운데, 일단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진심으로. 저도 아이들이랑 잘 통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제가 듣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어요. 어른의 무의식적인 폭력이고, 권위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게 너무너무 중요한데. 이건 정말 깊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래야 자연스러워질 수 있어요. 저도 모르게 아이들을 외면하는 순간들이 있어서 더 조심하죠. 그래서 좋은 어른의 기본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라 생각해요.

감독님 영화에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어른이 언제 등장할지 기다려지네요.

이건 제가 언제쯤 좋은 사람(어른)이 된다는 문제일까요? 어떡해 (웃음)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집’ 공식 스틸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어요. 따뜻한 단어지만, ‘우리’ 만큼 서로 다른 의미를 동시에 표현하는 단어도 없는 것 같은데요. 너, 나, 우리라고 할 때는 모두를 어우르는 따뜻한 말이지만, ‘우리 편’이라는 말을 보면, 나머지를 배제하는 듯한 뉘앙스도 있거든요. 감독님은 ‘우리’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우리’라는 언어로 연작을 낸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라는 말에 꽂혀있거나 특별히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흔하게 쓰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은 했죠. ‘내 집’ 이런 표현을 잘 안 하잖아요. 마이(my)라고 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우어(our)라는 표현을 하죠. 방금도 우리나라라고 했네요.

우리나라엔 여럿이 어떤 것을 함께 공유하고 있을 때, ‘우리’라는 말로 묶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어떤 공동체를 공통의 분모로 묶어서 말하는 거라 아이러니해질 때가 있어요. 평소엔 ‘우리’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는 잘 쓰이지 않고, 긍정적인 것으로 해석되잖아요.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가족 등 되게 따뜻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가치가 ‘우리’라는 말 안에 있죠.

그런데 실제로 ‘우리’에 대해 생각할 때면, 되게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오거든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은 요구를 받지만, 이 단어엔 굉장히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야기와 감정이 들어 있어요.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죠. 되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도 있고, 때로는 화나고 미운 것도 있듯 다양한 감정이 동시에 있는 단어에요.

그런 생각으로 ‘우리들’, ‘우리집’이란 단어를 사용했어요. <우리집>도 우리의 얘기지만 따뜻하고 화목한 얘기는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우리 집’ 했을 때 흔히 생각하는 온도랑 좀 다른 면을 분명히 갖고 있죠. 이런 것들을 드러내기가 좀 더 편한 단어라 ‘우리’를 썼어요.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집’ 공식 스틸

감독님께서 각본까지 직접 쓰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어요. 평소 이야기는 어디서 출발하는지, 이번 영화는 어디서 출발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이야기라는 게 어디 딱 꽂혀서 나오는 것 같지는 않아요. 여러 가지 것들이 조합이 되어서 어느 순간 길러지는 것 같은데, 저는 자전적인 경험이나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감정과 느낌, 사건 이런 것들에서 출발해요. 이번 영화도 그렇게 시작되었죠. 그런데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야기가 처음 시작했던 출발점이랑 <우리집>은 완전 다른 이야기죠. 하지만 시작은 거기 있었다고 생각해요

자전적인 경험에서 이야기와 특정 장면을 끌어오시나요?

어떤 경우엔 디테일하게 끌어오는 편이에요. 이번 영화는 가족 영화니까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렇게 싸웠는데’ 이런 걸 생각하기도 하죠.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에만 기대갈 수는 없어요. 제가 주로 제 경험에서 씨앗을 찾으려고 하지만, 저를 잘 못 믿는 성향이 있어서 조사도 많이 하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사례를 보다가 길러지는 게 있어요. 그게 또 저를 자극하죠. 그럼 또 다른 기억들이 자극되면서 다른 것들이 건져 올려지고, 이렇게 서로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받아요. 그렇게 제 이야기는 내면과 외부에서 오는 것들을 계속 조합하면서 만들어져요.

계속해서 아이들의 세계에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뭘까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라 그런 거 같아요. 기억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집어서 ‘이 얘기를 이렇게 다시 해야지’ 이런 건 정말 어려운 작업이에요. 저는 저한테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요. <우리들>도 저한테는 그런 이야기였죠.

지나간 이야기지만 제가 한 번도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들, 그리고 표현하지 못했던 모든 사건과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인생에 한 번은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렸을 때는 표현할 기회가 없었지만, 기회가 오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고 싶었어요. 이때 순차적으로 나온 게 아이들 이야기죠.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드러낸 영화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런 영화는 내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청소년 때부터 했는데 많이 방황했어요. 20대 때, 세상에 훌륭한 영화가 너무 많았죠. 그리고 좋은 영화를 많이 보면, 기준은 계속 높아져요. ‘난 저런 영화를 만들 수 없는데’, ‘내 재능은 뭐지’, ‘나는 왜 영화를 하려고 하지’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른 감독님들이 하신 이야기를 제가 반복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어떤 감독이 되어야 할지 고민을 했죠. 그때, 아이들 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들이 겹쳤고, 이렇게 아이들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집’ 공식 스틸

어린 배우를 캐스팅할 때 특별하게 관찰하는 지점이 있나요?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들. 그게 제일 중요해요.

어떤 주제로 아이들과 대화를 하시나요?

대화의 주제는 다양해요. <우리집>은 가족 영화라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죠. 평범하게는 취향, 취미, 좋아하는 아이돌, 좋아하는 영화, 평소에 하는 일 등 성인들을 만날 때와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아이들 경험이 성인들만큼 많은 게 아니니까, 아이들 경험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죠. 반대로 제가 모르는 게 있으면 배우기도 하면서요.

여기에 감독님 디렉팅의 비밀이 있을 거 같아요. 많은 분이 감독님이 아이들과 작업하는 방식을 궁금해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 답은 대화에 있었군요.

대화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저는 시나리오에 관한 질문도 많이 하는데요. ‘이럴 때, 어떨 것 같아?’라고 물어보고 제가 쓴 대로 대답을 안 하면, ‘아, 그래? 그러면 이런 건 어떤 것 같아?’, ‘왜 그게 맞다고 생각해?’, ‘이런 건 어때?’ 이렇게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아이들을 괴롭혀요. 제 시나리오 지분의 반은 배우들에게 있어요.

아이들의 연기가 감독님이 예상했던 것과 다를 때가 있었을 거 같아요. 오히려 그런 순간에 더 좋은 연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연기는 리허설 때 다 발견하려고 해요. 촬영현장이라는 건 약속된 장면들을 하나하나 해결하기에도 바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리허설 안에서 새로운 연기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죠.

이번 영화의 첫 번째 씬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미묘한 지점들이 있다는 걸 리허설을 하면서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제가 처음에 생각한 하나라는 캐릭터는 좀 더 적극적인 아이였죠. 부모님이 싸울 때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아이였어요. 부모님의 싸움을 말리고, 화해의 무드로 끌고 가려는 캐릭터였죠. 훨씬 밝은 얼굴로 힘차게 이런 것들을 해나갈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리허설 당시 부모님 역을 연기했던 분들이 즉흥적으로 심각하게 싸웠는데, 김나연 배우가 저절로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아, 내가 생각했던 태도로 행동을 할 수가 없구나’라는 걸 알았죠. 하나라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의 강도로 자기의 행동을 컨트롤하고, 마음을 표현하는지 등을 김나연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많이 잡아갔어요.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집’ 공식 스틸

아이들과 작업을 하면서, 내가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나요?

매일매일 매 순간, 너무 많죠. 이번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는 어린이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을 못 했어요. 그래서 모니터링(자신이 찍은 영상을 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죠. 자기가 찍은 걸 보면 자꾸 매몰되는 것 같고, 자기의 실수가 보일 거 같고, 예쁘게 보이나 이런 다른 거에 집중할 거 같았어요.

성인 배우들은 연기적으로 기술이 있잖아요. 내가 이때 무엇을 할지 계산을 하는데, 어린 친구들은 그렇게까지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모니터링을 안 했으면 좋겠고, 계속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그냥 편하게 하고, 제가 직접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촬영 10회차 좀 넘어갈 때 즈음, 나연 배우가 할 말이 있는데 안 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은 작정하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나연 배우가 모니터링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내가 뭘 했는지 알고 싶고, 어떤 순간에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감독님이 설명할 때 어떤 걸 고쳐야 할지 가끔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는데, 모니터링을 하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정확히 이야기해서, 너무 뜨끔하고 놀랐죠.

제가 혼자 판단했던 거에요. 그 배우는 어리니까 그러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모니터링을 했고, 필요할 때마다 와서 보게 했죠. 그러니 정확하게 자기가 계산을 해서 들어가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놀랐죠. ‘아, 이거 너무 중요하구나. 내가 그런 기본적인 것도 배우에게 안 물어봤구나!’ 감독으로서 정말 창피했어요. 그렇게 하니, 시아 배우나 다른 친구들이 ‘저도 보고 싶어요’ 이렇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후에는 친구들이 원할 때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같이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매번 실수해요. 매번 실수하고 잘못하고 사과하고 개선하고 이런 과정의 연속인 거 같아요.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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