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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서 앤 매드맨] 옥스퍼드 사전 편찬 비하인드 스토리

언어는 고여있지 않고 흐른다. 언어를 왜 ‘흐른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시간과 장소, 말과 글을 통해 계속 달라지는 속성 때문이다. 날마다 신조어가 생기고 쓰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만 언어의 기원부터 표제어를 고르고 설명을 덧붙이는 사전 편찬은 완벽할 수 없다는 말로 귀결된다. 흐르는 언어를 온전히 붙잡을 수 없지만 갈고닦아 유지할 수 있는 게 최선이란 말이다.

또한 언어는 부디 귀족의 전유물에서 고여있지 않아야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상류층의 강력한 무기였던 언어가 비로소 민중과 시민의 발이 되어 자유롭게 거닐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언어는 얽매여 있을 수 없는 속성을 갖추고 있어서이다. 글로 쓰는 문장과 말로 하는 언어가 일치하는 ‘언문일치’. 누구나 쉽게 글을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단아와 광인의 우정

<프로페서 앤 매드맨>은 빅토리아시대 영어 사전의 초석 ‘옥스퍼드 사전’ 편찬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방식은 1150년 이후 영어를 모두 수록해, 단어의 형태, 철자, 의미의 변화까지 예문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영국 최고 권위의 옥스퍼드 대학의 사전 편찬팀이라 할지라도 22년 동안이나 소득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광활한 대영제국의 영토만큼이나 영어를 쓰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생활상, 문화까지 아우르는 사전 프로젝트는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출신 괴짜 언어학자 머리(멜 깁슨)가 합류하며 수십 년간 지지부진하던 일에 속도가 붙는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온 머리는 수 십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자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아 학계의 괄시를 받던 인물이다.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당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한다.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난항에 부딪혔지만 ‘근면과 성실’로 묵묵히 정진한다. 영어를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단어와 예문을 모으자는 파격적인 공모제안을 시작으로 학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한편, 미국 군의관이었지만 전쟁에서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고 정신질환을 앓게 된 의사 마이너(숀 펜)가 엉뚱한 사람을 죽인 죄로 수감 중이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머리 교수의 공모 제안을 접하고 흥분에 휩싸인다. 이에 그는 고전 문학을 인용한 수백 개의 예문을 보내며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이끌어 낸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편지를 주고받으며 깊은 우정과 지식을 공유하며 절친한 친구가 되어간다. 하지만 마이너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광인의 모습이 언제 깨어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중, 둘의 관계는 비로소 위기를 맞는다.

천재와 광인은 한 끗 차이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스틸컷

영화는 현존하는 최고 사전으로 유명한 옥스퍼드 사전의 시작을 담았다.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을 해오던 사전 편찬에 미치광이 살인마가 자원했다는 글에 영감받은 논픽션 《교수와 광인》을 원작으로 한다. 사전 편찬 실화를 중심으로 아카데미가 사랑한 두 배우의 연기로 가득 채워진다. 대체 불가능한 숀 펜의 신들린 연기는 실존 인물과 놀라운 싱크로율과 천재와 광인을 넘나드는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배우에서 시작해 연출까지 도전했던 감독 멜 깁슨은 이 영화의 제작과 연기를 동시에 맡아 혼신의 힘을 다했다.

또한 내놓으라 하는 배우들이 조연으로 총집합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나탈리 도머가 남편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는 미망인을 맡았으며, 머리 교수의 천재성을 믿는 출판국 위원을 맡은 스티브 쿠건, 연민을 느껴 조용히 도와주는 간수 역에 에디 마산, 마지막으로 남편을 믿고 지지하는 지혜로운 아내 역에 제니퍼 엘이 합류해 오케스트라와 같은 화음을 자랑했다.

천재와 미치광이는 손바닥 뒤집듯 가까운 사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은 무언가에 집착하는 면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연줄 없는 천재와 정신 나간 광인은 사회의 아웃사이더지만 대의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집단 지성을 믿고 누구나 쉽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대중화에 힘쓰고자 노력했으나 새로운 흐름을 반대하는 보수층과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했다. 스스로 언어적 정점이라 생각한 학계는 반가워하지 않았다.

사전이 왜 말을 모아 놓은 ‘말모이’이라 부르고, 언어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를 엮는다’라고 하는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영화 <말모이>와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과 맥락을 같이 한다. 언어를 업(業)으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헌사와도 같은 진정성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생생한 역사를 바탕으로 드라마틱하게 살을 붙인 개인의 삶과 역사는 현재도 상응하는 메시지를 환기하기에 충분하다. 19세기 초 시작된 정신 분석과 치료 사례까지 접근하는 등 다양한 소재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다만, 그 노력이 과한 탓에 마이너에게 남편을 빼앗긴 일라이자(나탈리 도머)의 감정 변화는 잘 쌓은 주제를 흐리게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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