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이트>는 <서복>에 이은 티빙의 오리지널 영화이자 극장과 OTT 동시 개봉 방식의 두 번째 영화다. 연쇄살인마이자 소시오패스의 범행 목격자가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는 제한된 설정이 돋보인다. 소리 없는 아우성, 고요한 공포가 무엇인지 대리 경험할 수 있는 영화다.
청각장애를 가진 경미(진기주)와 엄마(길해연)는 늦은 밤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집에서 좀 떨어진 주차장을 이용하고 오는 도중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소정(김혜윤)과 마주한 경미. 가까스로 소정을 도와주려 했지만 살인마 도식(위하준)의 눈에 들어 또 다른 타깃이 된다. 도식은 움직일 수 없는 소정을 놔두고 범행을 들켜버린 경미를 쫓는다.
한편, 오빠 종탁(박훈)과 단둘이 사는 소정은 소개팅 후 밤 10시까지 들어오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귀가하던 중 도식의 레이더망에 걸려들어 어두운 골목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를 알 턱이 없는 종탁은 연신 전화를 걸어보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동생을 찾아 나서다가 혼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경미 엄마를 만난다.
철거 예정 동네에 사는 청각장애 모녀
<미드나이트>는 분명 인물 간의 연결 고리와 서사가 다소 매끄럽지 않은 영화다. 답답한 장면으로 분노와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관람 내내 “어째서 저럴까”, “아무리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너무한 게 아닐까”라는 마음의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하지만 이유를 유추하다보니 관객이 핸디캡을 경험하게 만든 의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공분과 답답함의 근원은 핸디캡을 갖지 않아 생기는 불편함은 아니었을지 곱씹어 봤다. 분명 그들이 사는 세상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고, 그런 세계가 침범 받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더욱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소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센서 등, 녹슨 문을 열려고 할 때의 삐걱거리는 소음, 집 안에 누군가가 들어와 있는데도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극한 긴장감을 연출한다. 청각장애인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과 어려움이 반영돼 있어 공감과 이해까지 동반되며 공감각적인 공포를 체험할 수 있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철거 예정 동네는 인적이 드물고 폐가가 많아 으슥하다. 때문에 어두컴컴하고 위험한 동네라 누군가를 마주치는 게 오히려 두려운 분위기가 지배했다. 여성 혼자 귀가하는 것도 무서운데 청각장애를 가졌다면 어떻겠는가. 누군가가 따라온다고 해도 그 사람의 발소리도 들을 수 없으며, 위험에 처해도 살려 달라 소리칠 수 없어 두려움은 배가 된다. 자신이 겪은 상황을 경찰에게 수어로 진술하지만 소통은 불가능하고 우왕좌왕이다. 1분 1초가 아까운 골든타임은 놓칠 수밖에 없다.
공포는 동네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물며 경찰서, 집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목격자의 신변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아 범인은 바로 목격자의 집에 찾아오고, 들리지도 말할 수도 없는 불리한 상황은 집 안에서도 계속된다. 한밤중,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조용한 동네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서울 한복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 동네는 집 밖을 나서기 어렵게 설정되어 있다.
장애에 관한 고민이 엿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미는 타인을 돕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비록 영화 속에 만 있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핸디캡을 안고서도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그야말로 뛰고 넘어지고 찢기고 구른다. 후반부 살인마를 피해 양말 투혼까지 불사르며 골목을 누빈다. 살기 위해 펄떡이고 소리 지를 수 없어 몸으로 울부짖는다.
살인마 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간신히 어두운 동네를 빠져나와 군중 속에 파묻혔을 때 나타난다. 한 밤의 추격전은 인파로 북적이는 도심 한가운데로 무대를 옮겨 온다. 하지만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상황에서 두 사람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이해하려 하지도, 신경 쓰고 싶지도 않은 듯 자기 갈 길 가기 바빠 보였다.
결국 두 사람은 흉기를 든 채 한복판에서 난동을 부리게 되고 인파는 몰려오지만 구경만 할 뿐 적극적인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다. 비장애인의 편견 속에 갇힌 장애인은 충분히 오해의 대상이 될 수 있었고 잘못될 가능성도 농후해 보였다. 비슷한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되자 연쇄살인마 보다 타인의 무관심이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졌다. 경미의 진정한 적은 사회의 소외와 단절이었다.
다만 청각장애의 불편함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모녀가 대화할 때 빼고는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장애인은 철저히 외부인이다. 그들을 위한 배려와 존중을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자막으로 대사와 상황 설명이 가능한 배리어 프리 버전은 극장 상영 종료 후 제공되며 그마저도 소수의 영화로 한정된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을 소재로 만들어졌지만 청각장애인은 이 영화를 보는데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배리어(장벽)를 없앤다는 취지는 또 다른 차별을 낳는 건 아닐지 고민이 교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