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피싱 피해자와 피해액은 매년 증가세다. 대검찰청 측 발표에 의하면 작년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39,714건 피해액은 7,000억 원으로 드러났다. 최근 팬데믹 이후 소상공인 대출, 재난지원금 등을 이용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는 한편 확진자 동선 공개, 백신 부작용 등 스미싱까지 가세해 판이 커졌다. 무슨 일 있겠냐며 쉽게 동의했던 개인정보동의의 대가일까.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의 개인정보가 누군가에 의해 유출되고 거래되고 있다.
순식간에 피 같은 7천만 원이 날아갔다
부산 건설 현장에서 현장작업반장인 서준(변요한)은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아내(원진아)와 떨어져 지내고 있다.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일까. 이제 중도금만 치르면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루게 되는 것은 물론, 현장에서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승진도 하게 되었다. 드디어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던 그날, 현장에서 위험한 사고가 발생하고 가까스로 수습해 안정을 찾고 있었다.
그 순간 건설 현장 직원 50여 명의 가족에게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 오고, 30억 원이 눈 깜박하는 사이 빠져나가 버렸다. 서준의 아내도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아버렸다. 그 전화 속 주인공은 남편의 변호사 친구로 속여 합의금 7천만 원을 요구했고, 막을 새도 없이 돈은 휘발되어 버렸다.
서준은 현장 동료들과 아내의 돈 30억을 되찾기 위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꼬리부터 시작해 몸통이 있는 중국 선양으로 범위를 확대한다. 하지만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증거를 남기지 않고 꼬리 자르고 도망치는 실체에 다가가기란 쉽지 않았다. 서준은 전직 형사의 촉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본거지에 위장취업하고 본격적인 탐색과 증거 수집에 열 올린다.
신임을 얻게된 서준은 콜센터의 총책 곽프로(김무열)를 만나고 믿을 수 없는 스케일에 놀라게 된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사람을 피라미드처럼 줄 세우며 각각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었다.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급하고 인출책을 섭외, 환전소 작업까지 쉼 없이 돌아간다. 기획실에서는 금융전문가 출신자들이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시나리오를 짠다.
그 뒤 위장 어플이나 홈페이지로 클릭을 유도하고 전화번호를 조작해 사실 파악도 어렵다. 정확한 타깃을 정하고 단번에 낚아채는 콜센터의 모습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충격적인 비주얼을 선사한다. 보이스피싱은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는 결계로 완전히 포박한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지능형 범죄
영화 <보이스> 스틸컷
영화 <보이스>는 누구나 알지만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보이스피싱을 국내 최초로 파헤친다. 보이스피싱의 심장에 들어간 서준의 눈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난다. 그 수법이 날로 고도화되고 지능화되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재진행형 범죄다. 초창기 단순히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어리숙한 한국말과 상황을 연출해 현금을 요구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믿을 수 있는 기관을 사칭하고, 스마트폰 어플, SNS 메신저를 통해 가까운 지인, 친구, 가족으로 위장해 위협한다.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노인들을 상대로 하지도 않는다. 그 피해 범위와 금액은 커지기만 하고 이제는 누구도 보이스피싱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보이스피싱은 상대방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범죄다. 내가 살기 위해 남에게 사기 치고 그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아간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타인을 상대로 한다는 악랄함이다. 이들은 희망 없는 한국을 떠나 중국의 본거지로 몰려 들어 한국 사람을 상대로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폐해이자 피라미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묘한 생태계의 현장이다.
영화는 보이스피싱 콜센터라는 밝혀지지 않은 실체를 따라 상상력을 가미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곳을 ‘리얼함’을 근거에 두고 켜켜이 쌓아갔다. 이를 위해 김선. 김곡 감독은 금융감독원, 지능범죄수사팀, 화이트 해커 등 여러 차례 인터뷰와 자료 수집으로 만들어 낸 결과라고 말했다.
따라서 다소 교훈적이고 공익적인 메시지를 던지지만 위화감이 적다. 전화 한 통으로 인생이 뒤틀려 버린 수많은 피해자에게 위로를 건네며 ‘자책하지 말라’라는 다독임이 인상적이다. 시의성을 살린 지금 필요한 영화다. 돌아오는 명절 가족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보이스피싱 예방 백신을 맞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