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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얼굴 앞에서] 죽음 앞에 선 홍상수, 쓸쓸함 속 유쾌함

해마다 꾸준히 한두 편의 장편 영화를 찍어내는, 다작의 대명사 홍상수 감독의 새로운 장편 영화가 나왔다. 쉽게 쉽게 영화를 찍는 듯 보이지만 그의 영화에는 늘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 별것 아닌 대화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삶의 단면들이 꽤 깊이 있게 녹아있다. 세계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이러한 자연스러운 일상을 포착해 내는 그가 최근에는 다시 한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이다.

최근작인 <강변호텔>에서부터는 그가 ‘가족’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인다. <강변호텔>과 <인트로덕션>에서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당신얼굴 앞에서>에서는 중년에 접어든 자매의 모습을 담아냈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상옥(이혜영)’이 여동생인 ‘정옥(조윤희)’의 집에 며칠간 머물며 벌어지는 일상적인 사건들을 리얼타임에 가깝게 포착한다. 평범한 가정집 소파에 앉아있는 상옥의 모습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아침은 어디에서 먹을지, 식사 후에는 어디를 들를 것인지 등의 사소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영화가 늘 그렇듯, 인물 간의 관계나 그들이 처한 상황들은 처음부터 말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가만히 상옥의 하루가 흘러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머물고 있는 곳이 여동생의 집이라는 것, 귀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 한때는 배우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또한, 죽음을 앞둔 상황의 그녀가 사람들과 지내다가 이따금씩 혼자가 되는 순간마다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하는 나레이션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추어 지금까지의 순간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상옥은 하루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중에는 늘 알고 지냈으나 서로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여동생 정옥도 있지만, 전에 살던 집에서 지금은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 자신과 영화를 찍고 싶다는 영화감독 재원 등 낯선 사람들 역시 마주친다. 이러한 만남들을 통해 홍상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관계를 맺는 방식,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찰을 제시한다. 특히, 상옥을 처음 만난 낯선 이들이 이유 없이 베푸는 친절, 대가 없이 내미는 호감의 표시 등이 인상적이었다. 옛집을 방문한 상옥은 처음 보는 어린아이에게 이름을 묻고, 따뜻하게 안아주는데 이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하던 낯선 이와의 포옹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감정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있다고 느껴졌다.

영화의 제목인 ‘당신얼굴 앞에서’는 상옥이 어느 날 문득 사람들의 얼굴이 아름다워 보였다고 한 이야기와 연결된다. 죽음이 슬프고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상옥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이 얼굴 앞에는 천국이 숨겨져 있다고. 얼굴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제대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두려울 것은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 천국은 이미 완성되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곳이라고 덧붙인다. 홍상수 감독이 죽음 앞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옥의 태도에 그대로 담겨있다. 이제 그가 영화를 통해 묘사하는 죽음은 더 이상 두렵거나 슬픈 것이 아니다. 전작들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대사처럼, 아름다운 것만 보기에도 시간이 없다. 비로소 얼굴 앞에 놓인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홍상수의 세계가 솔직하게 드러난다.

<당신얼굴 앞에서>는 오는 10월 21일 개봉한다.

글: 키노라이츠 손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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