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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어른이 될 수 없거나, 되지 않았거나

김윤석은 영화를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한 배우다. <1987>, <남한산성>, <검은 사제들>, <타짜> 등에서 선이 굵은 캐릭터를 연기했고, 그때마다 캐릭터를 넘어 영화 전체를 끌어가려는 에너지가 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런 배우였다. 그래서 김윤석이 연출을 맡는다는 게 언젠가 일어나야 할 일처럼 보였고, 그 소식에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건 있었다. 평소 우직한 연기를 보여줬기에, 김윤석이 연출한 영화라면, 타협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미성년>은 실제로도 그런 영화였다.


첫 연출이라는 부담이 있을 법함에도, 김윤석은 연기까지 함께 소화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걸 보고서, 영화를 향한 신뢰를 더 가질 수 있었다. 극을 주도하고 강렬한 성격과 인상을 전시해왔던, 우리에게 익숙한 김윤석은 <미성년>에 없다. 우리가 알던 그는 영화를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작년에 개봉한 <암수살인>에서 김윤석은 주지훈에게 끌려다니는 역할이었음에도 범인을 잡겠다는 집념이 있었고, 그런 동기가 극을 움직였다.

그런데 <미성년>의 대원(김윤석)은 다른 캐릭터들의 액션을 받아주는 역할이다. 극을 끌고 가지도 않으며, 오히려 문제가 있을 때 멀리서 관조하는 약한 존재로 표현된다. 감정을 억누른 채 지쳐있고, 평소보다 연약한 김윤석의 모습을 보는 게 낯설지만, 덕분에 <미성년>은 그만큼 더 흥미롭다. 그리고 대원은 다른 캐릭터들의 심리에 더 집중하게 하는 완급조절의 역할도 해낸다. 이 역할과 연기를 보고 있으면, 김윤석이 자신의 이미지를 영화에 어떻게 배치해야 할 지를 잘 알고, 영화의 큰 그림을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했듯, 김윤석 감독은 다른 배우들도 적재적소에 배치해 좋은 연기를 펼치게 했다.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연기에서 틈이 보이지 않는 영화다. 어른 같은 청소년의 과감함과 성숙함, 그리고 아이 같은 어른의 불안과 미숙함을 담아야 했던 <미성년>의 이중적인 캐릭터 영주(염정아), 미희(김소진), 주리(김혜준), 윤아(박세진)를 네 배우는 그들만의 색깔로 개성 있게 만들었다. 네 캐릭터 모두 예고치 못한 상황에 휩쓸려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는데, 이 복잡한 감정을 세밀한 표정 연기로 드러낸다.

대원을 포함해 <미성년>의 중심인물은 연령에 상관없이 어른이 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나이가 적어 어른이 못된 청소년들, 나이는 많지만 어른이 아닌 자들을 비추며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딘가 성장하지 못한 곳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성숙하지 못한 인간의 군상을 담으며, 모두가 미성년일 수 있다고 한다. 이 영화엔 절대적인 악인은 없고, 뜻밖의 상황 앞에 방황하는 인간만 있다. 모든 인물의 행동이 이해되며, 이를 통해 <미성년>은 삶의 딜레마와 연약한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글의 서두에 김윤석의 영화에 타협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지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성년>은 상업 영화의 안정적인 결말을 추구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가 미성년으로서 제 나름의 방식을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일 뿐, 억지로 이들의 성장을 유도하거나 행복한 결말로 인도하지 않는다. 가족의 사랑에 관해 말하는 쉬운 영화가 아니며,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세상을 표현한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전형적인 선택은 배제했고, 대신 인물의 불안정한 심리와 과감한 선택이 보여주는 특별한 순간을 연달아 비출 뿐이다. 그렇게 김윤석은 끝까지 자신의 할 말을 굽히지 않았고, <미성년>은 묘한 감성과 기이한 힘을 가진 영화가 된다. 영화가 끝난 뒤, 더 많이 말해질 깊은 영화다.

이렇게 작위성을 배제한 채, 이야기나 연기에 균열이 없던 안정적인 상업 영화가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장르적 색채는 줄인 채, 비균질적인 힘으로 감독이 주제 의식을 굽히지 않는 상업 영화도 오랜만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김윤석이라는 이름 덕에 시도되고 완성할 수 있던 영화다. 이 우직한 결과물 앞에, 신인 감독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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