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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덴] 감옥같은 세상에서 꺼내든 사랑이라는 열쇠

<마틴 에덴>은 소설가 잭 런던의 고전이 원작이다. 잭 런던은 청소년 문학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대표작 중에는 작년 <콜 오브 와일드>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의 원작인 <야성의 부름>이 있다. 소설 <마틴 에덴>은 스웨덴의 노동계급 남성인 모르텐 에덴을 모델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작가인 잭 런던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많이 녹여내어 집필했다고 한다. 그가 탐험가, 혁명가, 노동자인 동시에 소설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캐릭터와의 유사성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틴 에덴이라는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잭 런던도 범선을 타고 여행을 다닌 경험이 있으며,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작가이면서도 계급투쟁에 앞섰던 혁명가로 기록됩니다. 이 소설이 처음 기고된 곳이 잡지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원작 소설에서의 배경은 20세기 초,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이다. 감독인 피에트로 마르첼로는 미국 배경의 스토리를 이탈리아 나폴리로 가져오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게 되는데,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언제인지 가늠하기 어렵게끔 모호하게 남겨둔다. 놀라운 건 이 작품이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첫 극영화라는 점이다. 뛰어난 다큐멘터리 감독의 대담한 도전이다. 그래서인지 <마틴 에덴>에는 인물들을 관찰하는 듯한 핸드헬드 숏이 자주 등장하여 다큐멘터리의 질감이 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계급간의 격차를 그려내고 있다. 선박 노동자인 마텐 에덴은 엘리트 집안의 엘레나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첫 만남부터 마틴이 내뱉은 프랑스어를 엘레나가 고쳐주는 등 이들의 관계에서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가 재차 강조된다. 마틴이 열 한 살 때부터 선원 생활을 했다는 내용을 통해 배를 타게 되면서부터, 즉, ‘노동’을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과 ‘교육’이라는 양극의 세계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마틴에게 있어 교육과 글이란 신분상승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엘레나의 집안처럼 엘리트 가문의 여성과 결혼을 하려면, 가족들이 기대하는 기본적 소양을 갖춰야 했기 때문인데, 따라서 교육은 그에게 사랑의 수단이기도 하다. “당신처럼 생각하고, 당신처럼 말하고 싶어요.” 라는 대사는, 엘레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비슷해지고 싶다는 의미이자 계급적으로 동등한 선상에 있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코 노동계급과 엘리트의 삶은 어우러지지 못한다. 엘레나의 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교육과 가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마틴은 스파게티 소스와 빵에 각각을 비유하며 ‘교육으로써 가난을 없앨 수 있다’고 답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의 삶은 자리를 잡기는 커녕 두 계급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작가로서의 삶을 결심하고 신문투고를 써내는 마틴에게 매형은 ‘글은 관두고 함께 일이나 하자’고 계속 이야기하는 등 영화는 끊임없이 두 세계를 갈라놓는다.

<마틴 에덴>에는 중간중간 따로 끼워 넣은듯한 시점샷들이 삽입되어 있다. 주로 마틴이 ‘이동’하는 장면에서 음악과 함께 나오는데, 떠돌이라는 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장면들은 대부분 서민의 삶을 바라본다. 배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나 마을 사람들의 모습, 일부는 마틴의 어릴적 기억으로 추정되는 영상들이다. 따라서 이 장면들이 마틴의 시점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반복적으로 삽입되는 이 이미지들을 보며 든 생각은 ‘마틴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가’이다. 카메라는 마틴이 되어 세상을 바라본다. 엘레나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마틴이 그녀 덕분에 글을 배워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해석’할 능력이 생겼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엘리트들은 ‘글’을 통한 해석으로 특정 가치들을 배제하고 지워버린다. 마틴의 글이 처음에 팔리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인데, 그가 서민의 삶을 주제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마틴과 엘레나가 함께 관람한 영화도 글과 마찬가지로 해석을 동반한 매체라는 점에서 서민의 삶을 배제한 듯하다. 엘레나는 영화가 희망적이라서 괜찮게 봤다고 하는데, 마틴은 별로였다고 말한다. ‘부자는 굶주려 본 적이 없다’는 마틴의 말처럼, 서민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한 엘리트는 결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과 희망만을 꿈꾼다.

마틴은 가난에서 출발하여 엘리트가 되려는 인물이기에 그의 삶은 늘 경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어릴적부터 선원으로 살며 이곳저곳을 떠도는 삶을 살기도 했다. 확실히 사랑은 처음엔 이런 떠돌이 삶을 끝내고 정착하는 삶을 시작하게 해 줄만 한 수단으로 보이긴 했는데, 엘레나에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는 마틴의 태도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서도 계급 갈등은 피해갈 수 없었다. 무언가 배우기 전, 그가 만났던 종업원 마르게리타는 명확한 노동계급이다. 그녀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엘레나와 함께 방문한 마틴은 종업원이 예쁘다는 엘레나의 말에, 대화를 나눠보면 별로일 거라며 기존에 자신이 위치해 있던 계급과 거리를 둔다. 이후 엘레나와의 관계가 틀어지자, 그는 다시 마르게리타를 찾는다. 두 여인 사이를 오가며 겪는 그의 갈등은 어느 곳 하나 속할 데 없는 그의 떠돌이 삶과 다시금 일치하는 모습이다.

마틴은 펜과 심장을 가진 인물이다. 심장은 타고 난 계급이고, 펜은 교육을 통해 얻은 것이다. 그는 가지지 못했던 것을 얻으려고 발버둥쳤을 뿐이다. 마틴의 경우에는 ‘사랑’이 ‘펜’을 얻고자 하는 동기로 작용하기도 했는데, 좇을수록 정착보다는 경계에 가까워진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중 그 어느것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태도 또한 그를 떠돌이로 남겨둔다. 글 마저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기 시작하자 예술에 대한 의욕마저 잃은 그는 끝내 어린 시절 배를 타고 떠돌던 바다로 돌아가게 된다. 바다는 정착과 안정보다는 유랑과 경계의 이미지가 강한 공간인데, 마틴에게 정착할 곳이란 바다뿐인 것이다.

​<마틴 에덴>은 예술가의 삶을 건조하게 다루는 듯 하면서도 경계의 삶을 건드리고, 계급 갈등에 대한 혁명적 태도까지 취하고 있는 작품이다.

에디터 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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