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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타: 배틀 엔젤] ‘알리타’는 영화를 어디로 데려갈까?

<알리타: 배틀 엔젤>은 CG를 예술의 영역에 올려 둔 작품이다. 알리타의 얼굴은 인간의 질감을 복제해둔 모양새였고, 여기서 원본과 복제의 구분은 모호했다. ‘알리타라’는 캐릭터의이 혁신적인 CG가 바꿔놓을 시네마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과연, ‘알리타’는 영화를 어디로 데려갈까?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골룸을 연기한 앤디 서키스가 CG 캐릭터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을 날이 올까. 아니, 그가 받아도 될까.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서 시저를 연기했던 그는 수상 자격이 있다는 동료와 팬들의 지지가 있었음에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골룸 때부터 캐릭터의 행동과 표정을 연기했고, 그의 공로를 아는 이들은 ‘앤디 서키스를 아카데미로!’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당시 미국 아카데미 협회는 그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앤디 서키스를 후보에 선정하지 않았다. 같은 영화로 새틴 어워즈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인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미국 아카데미 협회의 보수성을 탓해야 할까. 그런데 앤디 서키스를 비롯해 디지털 이미지를 배우로 인정한다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와 얽혀있다. 골룸과 시저가 매릴 스트립,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동등한 입장에 선다는 건 기존의 틀을 깨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영화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 그리고 영화의 미래와 관련 있으며, 더 극적으로 표현하면 시네마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는 무거운 사안일 수 있다.


인간을 대체한 디지털 배우, ‘알리타’

<알리타: 배틀 엔젤>(이하 <알리타>)은 약 2,0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고, 엄청난 자본 속에서 역대급 그래픽을 자랑한다. 급박한 전개와 뒤따르는 개연성의 문제 등에 아쉬움을 표현할 수 있지만, 아이맥스로 확인한 비주얼의 충격 앞에서는 사소해 보인다. 모공과 피부의 솜털, 머리카락 한 올까지 구현한 디테일, 눈동자의 빛과 까다롭다는 물의 흔들림까지 완벽히 표현한 광원효과는 CG 기술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선언하고 있다. 이 기술이 알리타(로사 살라자르)의 움직임을 표현한 유연한 액션과 역동적인 카메라와 만나면서, <알리타>의 모든 장면은 프레임 단위로 장인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 된다.

예고편 공개 직후부터 염려되었던 언캐니 밸리(불쾌한 골짜기)도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계가 인간을 닮아 가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질감과 불쾌함을 느낀다는 이 이론은 디지털 배우의 한계를 말할 때 사용되고는 한다. 물론, 이도(크리스토프 왈츠) 옆의 알리타의 움직임은 인간의 그것과 어딘가 조금 달라 보인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훨씬 더 부드럽다’는 느낌인데, HFR 버전이 있다면 이런 차이도 없어지지 않을까) 하지만 신체를 표현한 질감으로서의 차이는 거의 느낄 수 없다. 이 생생한 질감으로부터 모든 질문은 시작된다. <알리타>에서 현실과 대등한 디지털 이미지를 목격한 이 순간은 영화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영화의 중요한 자리 하나가 디지털로 대체되었고, 그래서 영화에 큰 위협이 될 것이란 우려도 함께 밀려왔다.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역시 풀 3D에 다수가 CG로 이뤄진 영화였지만, <알리타> 만큼의 충격은 없었다. 이 영화는 가상의 캐릭터와 현실에서 목격한 적 없는 시공간을 구현했기 때문에, 그저 새로운 영역의 화려한 영화로 받아들여졌다. 실사 영화의 근본을 위협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던 거다. 작년에 개봉한 <레디 플레이어 원>도 풀 CG로 처리된 장면이 있었지만, <알리타>와는 달랐다. 이 영화의 CG는 사이버 공간을 모방하고 구현하려 했기에, 현실을 넘보지 않았다. 여기에 스티븐 스필버그는 가상현실과 현실을 명확히 분리해두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현실의 질감을 ‘진짜는 진짜’라는 대사까지 쓰며 강조하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스티븐 스필버그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알리타>의 CG는 로사 살라자르를 모방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았다. 모션 그래픽 기술로 육체를 빌릴 뿐, 완벽히 그녀를 대체하려 했다. 로사 살라자르를 지워내고도 서 있는 독자적인 존재로서의 배우, 그것이 알리타였다. 앤디 서키스가 골룸, 시저 등의 인간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들을 위해 연기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픽셀이 인간을 대체한 경이롭거나 경악스러운 광경이다. <알리타>의 CG는 인간의 자리를 밀어내고, 디지털 이미지가 아날로그와 동등하게 서는 순간을 예고했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현실을 대체한 디지털 이미지와 배우의 등장이 영화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알리타


그래픽 테크놀로지는 영화를 해방하려 하는가

이런 CG의 놀라운 질감 앞에서 영화의 장래가 정말 밝다는 기대를 해볼 만하다. 영화가 또 하나의 한계를 정복한 느낌이랄까. 그린 매트를 사용한 크로마키 촬영은 카메라의 한계를 하나 해결했다. 시간, 공간, 날씨 등에 제한을 받지 않고, 어떤 배경이든 스크린에 구현할 수 있었다. 알라딘의 양탄자가 그를 어디로든 데려가듯, 그린 매트라는 천은 관객을 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었다. 현대 영화의 많은 곳에 그린 매트가 숨어 있고, 이들은 리얼리티를 증폭시키거나, 영화의 환상성을 강화하는 등 관객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알리타>는 CG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공간뿐만 아니라 인물까지 대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 디지털 배우는 현장의 다양한 이유로 발생했던 연기의 제약을 없앨 수 있다. 인간의 신체에서 오는 다양한 물리적 한계, 오랜 기간 훈련이 필요한 특수한 동작과 기술 등을 손쉽게 해낼 수 있으며, 부상의 위험도 없고, 여러 가지 윤리성의 문제에서도 벗어나 디렉팅이 가능하다. 심지어 NG도 없고, 캐스팅의 부담도 적다.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걱정은 CG를 구현하는 데 들어갈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거대 자본만이 이 기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하지만 이는 시간의 문제일 뿐, 이마저도 먼 미래엔 손쉽게 접근 가능한 기술이 될 날이 올 것이며, 영화는 언젠가 이런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가 인물, 배경, 그리고 사건이라고 했을 때, CG가 이 중 두 가지를 정복할 순간이 언젠가 확실히 온다는 거다. 모든 게 그래픽으로 이뤄질 영화는 표현의 한계에서 완벽히 해방되게 된다. 정말 환상적이지 않은가.

알리타


디지털 시네마와 테세우스의 배

이 희망찬 영화의 미래 앞에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그린 매트가 공간을 대체하고, 디지털 캐릭터가 배우를 대체한 그 영상을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픽셀의 그래픽만으로 이뤄진 영화에게 영화라는 자격을 줘도 괜찮은 걸까. 사실, 지금도 CG 만으로 이루진 영상물이 있고, 어떤 것은 ‘영화’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과 <알리타>가 쏘아 올린 공이 도달할 풀 CG 영화를 비교해보면, 미래에 영화에게 닥칠 몇 가지 순간과 그때 가질 고민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게임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미 몇몇 게임엔 영화 같은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영상물이 있다. 하지만 아직 이를 영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시네마틱 트레일러’라는 말을 쓰고는 하는데,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영화적인’이라는 말을 쓸 뿐 영화의 영역에 도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게임과 게임 속의 영상은 영화로 볼 수 없을까. 배우와 대사, 내러티브가 있는 이 영상은 영화와 무엇이 다를까.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아서? 스크린과 객석의 존재 유무를 말할 수도 있지만,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 등장은 영화관을 무너뜨렸다. 이제는 관람 경험이 영화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지 못하는 시대다.

차라리 게임 영상이 게임 플레이를 배제하고 단독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영상이 아니라는 이유가 적절해 보인다. 게임 <C&C 레드얼럿 2>의 미션 사이엔 배우들이 연기한 영상물이 있었는데, 이는 게임 플레이와 함께해야 하나의 서사가 된다. 하지만, 이런 한계를 극복한 게임 영상물도 있는데, <오버워치> 등의 블리자드 게임들이 보여주는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이들은 한편이 단독적인 서사를 가지며, 카메라의 워킹과 영상 연출도 영화의 수준에 이르러 ‘단편 영화’로 분류할 만하다. 그러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되는데, 아무리 좋은 컴퓨터 그래픽이라도 아직은 현실의 질감을 완벽히 구현하지 못해 실사 영화의 이미지와는 전혀 겹치는 게 없다. 혹은, 이들은 현실의 질감에 관심이 없다. 만약, 그래픽 기술의 정점에서 현실의 질감과 대등한 게임 영상물이 나온다면,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오버워치 - 디바


영화의 영역에도 풀 CG로 이뤄진 작품이 있다. 당장 이번 달만해도 <드래곤 길들이기 3>,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등을 만날 수 있었다. 미국 아카데미 협회는 이를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분류해, 영화와는 확연히 구별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CG 기술의 정점에서 만든 풀 CG로 이뤄진 영화는 결국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될까. 이 문제가 생각보다 어려운 건,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의 CG가 <알리타> 등의 영화에서 사용한 CG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데 있다. 애니메이션은 현실을 모방하지만, 현실의 질감에는 큰 관심이 없다. 대신, 특정 요소를 과장하거나 만화화하면서 독특한 시공간을 창조해낸다. 이와 달리 <알리타>의 CG는 모방을 넘어, 현실 그 자체를 대체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더 만화스러워지는 CG와 더 현실다워지는 CG 만큼의 차이. 둘의 재료는 같을지라도 표현하려는 질감은 전혀 달랐다. <알리타>처럼 영화에서 출발해 애니메이션이 되려는 이 독특한 구성체를 우리는 무엇으로 규정하게 될까.

커다란 배의 판자 조각 하나를 갈아 끼워도 이 배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몇 개의 판자 조각을 갈아도 큰 차이는 없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판자를 갈아 끼우다 원래의 배에 있던 조각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면, 그 배는 원래의 배와 같은 존재인가.”


이는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다. 이 배의 정체성의 문제처럼 지금 영화에게도 유사한 질문을 던질 시기가 온 것 같다. 판자를 하나씩 갈아 끼우듯 영화의 질료는 현실에서 허구로 대체되어 왔다. 최초의 시네마가 현실을 그대로 이식했다면,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디지털은 그 질감을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소품, 배경, 그리고 인물까지 영화를 이루는 요소가 하나씩 사라지고, 결국 CG로만 이뤄진 이미지가 탄생했을 때, 우린 이 영상물을 영화로 부를 수 있을까.

혹성 탈출: 종의 전쟁


앤디 서키스의 수상과 시네마의 미래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오자. 앤디 서키스의 ‘시저’는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아도 될까. 질문을 바꿔, <알리타>의 로사 살라자르는 연기상을 받아도 될까. 앞의 문제를 고민하면, 이 문제가 영화의 규정과 관련된 복잡하고 무거운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언리얼’이 ‘리얼’을 대체하는 광경 앞에서 영화를 전공한 아카데미의 일원들은 무엇이 영화를 이루는 요소이며, 앞으로 무엇이 영화를 규정할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단순히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자리싸움을 넘어 시네마의 미래와 관련된 일이다. 이미, <로마>가 작품상 후보에 오름으로써 아날로그 영화관이 디지털에게 객석이라는 고유성을 내줬다는 걸 미국 아카데미는 인정했다. 이것이 1인 미디어 시대와 관련된 관람 경험의 차이라면, CG는 영화 내적인 문제이기에 더 근본적인 질문이면서, 테크놀로지의 발전 앞에서 더 치열한 논쟁을 불러올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디지털 시대에 필름과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영화인들을 영화 운동가라 부르고 싶어졌다. 필름과 실사 촬영을 중시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은 필름이란 재료와 현실의 질감을 지키는 외로운 투사로 보였고, 대역 없는 리얼 액션을 추구하는 톰 크루즈에겐 디지털 시네마를 향한 어떤 저항 의식마저 느껴졌다. 배우들의 주름에서 어떤 대사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느꼈던 관객으로서 <알리타>는 황홀한 악몽이었다. 디지털의 확장은 세상 모든 것을 영화로 만들까? 아니면 우리가 아는 영화를 죽음으로 인도할까. 영화 세계의 <매트릭스>가 다가오고 있다.

P.S 제임스 카메론 감독님께…상상력의 한계를 돌파해왔던 영화는 그들이 태어난 필름을 탈주했고, 당신이 만든 기술은 현실의 질감이란 토양마저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환상적인 비주얼의 진화는 영화를 어디로 데려갈 것으로 보시나요. 그리고 그 심판의 날 앞에서 당신은 어떤 영화인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키노라이츠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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