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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 정말, ‘페미니즘’이 문제였을까

‘국내 영화 평점 사이트 ‘키노라이츠’에서 <캡틴 마블>은 개봉 이후, 81.8%의 지수를 기록 중이다. 10명 중 8명은 초록 불(평가 좋음)을 켰을 만큼 평가가 좋지만, 마블 영화로 한정했을 때 상황은 달라진다. <어벤져스> 이후 마블의 영화는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아 왔고, 작년에 개봉한 세 편만 봐도 (<블랙팬서> 90.7%, <인피니티 워> 94.3%, <앤트맨 2>91.3%) 모두 90%가 넘는 지수를 기록했다. 이런 수치의 하락이라는 통계적 결과 외에도, <캡틴 마블>은 영화 내외적으로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다. 뜨거운 설전이 오가며 여러 의미로 화제작임을 입증해내고 있다. 이처럼 말 많고 탈 많았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영화가 있었던가.

<캡틴 마블>은 MCU 사상 최초의 여성 단독 히어로 영화로 주목 받았다. 처음 걷는 길엔 많은 난관이 있을 법한데, <캡틴 마블>이 마주했던 건 영화 속의 페미니즘을 비롯한 정치 사회적 가치관에 대한 갑론을박이었다. 이는 캡틴 마블을 연기한 ‘브리 라슨’의 말로 더 뜨거워졌는데,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캡틴 마블>을 “위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영화”라 표현하며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에 위대한 여성 영웅이라는 찬사를 보낸 팬들이 있고, 영화를 페미니즘으로만 한정한다는 것에 반감을 보인 팬들도 있었다. 이런 논란을 보며 더 궁금해졌다. 대체 브리 라슨의 ‘캡틴 마블’은 영화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었고, 다른 영웅들과는 무엇이 달랐던 걸까. 이 근본적인 질문이 먼저였고, 그에 관해 짧게 이야기해 볼까 한다.

캡틴 마블


‘남성’의 존재로 완성되는 ‘캡틴 마블’

<캡틴 마블>은 ‘비어스’가 ‘캐롤 댄버스’라는 이름을 되찾는 여정이며, 과거의 기억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애너 보든과 라이언 플렉 감독은 <로보캅>을 오마주했다며, 이 영화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게 중요했음을 밝혔다.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서 확인할 수 있는 그녀의 정체성은 ‘비어스’가 ‘캐롤 댄버스’라는 미국 공군이자 파일럿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직업은 표면적인 요소였고, 후에 영웅으로 각성할 때 필요한 본질적인 것도 아니었다. 더 중요한 건 그녀의 기억마다 등장하는 패배의 이미지들이다. <캡틴 마블>은 캐롤 댄버스가 좌절을 겪었던 순간에 남성으로부터 받았던 조롱, 무시, 편견 등이 함께 배치해뒀다.

영화는 캐롤 댄버스의 전투기가 하강하는 이미지로 시작한다. 즉, 그녀는 추락한 여성이자 패배한 여성으로서 이 영화에 등장했다. 이후 <캡틴 마블>은 좌절했던 이 여성이 다시 일어나는 ‘상승’의 이미지를 지속해서 보여준다. 레이스 도중 차가 뒤집혀 쓰러지고, 야구를 하다 위협구에 쓰러지고, 훈련 도중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캐롤 댄버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쓰러진 여성이 일어서는 모티브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건, 후반부에 비어스가 온몸이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 그녀는 ‘수없이 쓰러졌음에도 다시 일어섰던 과거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면 그 자리에서 일어서고 각성한다. 마침내 ‘캐롤 댄버스’라는 이름을 찾고 영웅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는 지구를 뚫고 우주까지 날아가며 모든 억압과 제약에서 벗어난 모습까지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캡틴 마블>은 하강으로 시작해 상승의 이미지로 끝나는 여성의 서사다.

<캡틴 마블>은 ‘캐롤 댄버스’가 여성으로 받았던 제약과 사회의 유리 천장 등을 극복하는 걸 강조한다. 심지어 그녀가 크리족 전사로 살아가는 동안에도 힘을 통제하는 건 ‘욘-로그(주드 로)’라는 남성이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캡틴 마블의 정체성이자 힘의 원천이 남성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제약받지 않는 여성으로서의 성장에 있다는 걸 확고히 한다. 캐롤 댄버스는 남성의 반대항으로서 존재하고 있었고, 어떠한 의미에서든 <캡틴 마블>은 남성이란 존재가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존재로서 이 새로운 영웅을 그리고 있었다.

캡틴 마블


남성과 여성을 대립항으로 둔 이런 이미지 배치는 1980,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나쁜 이야기, 메시지가 될 수도 없으며, 말해질 필요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캡틴 마블>이 강인한 여성, 남성으로부터의 탈주 및 한계를 극복한 여성의 서사를 담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조금도 없다. 진짜 의문은 이 영화가 ‘캐롤 댄버스라는 새로운 영웅을 잘 설명하고, 매력을 잘 어필하는 서사로 구성되어 있었는가’다. 그리고 이는 원작 및 마블의 팬들에게는 아주 민감했을 문제였다.

<캡틴 마블>은 여성 영웅이 아닌, 여성만의 영웅이라는 특성(여성성)을 강조하며 놓친 부분이 있었다. 깊게 생각해보면, ‘캐롤 댄버스’는 흑인과도 소통 가능한 백인 여성이었고, 난민 종족을 위해 행동할 줄 아는 영웅이다. 즉, 약자와 소수자들을 대표하는 영웅이기도 한데, <캡틴 마블>은 앞서 언급한 대로 ‘남성의 반대항’임을 강조하며 우뚝 서 있었다. 다수의 특성을 너무도 간단하게 혹은, 희미하게 처리해 버렸다. (동시에 이는 페미니즘의 역할을 한정하는 결과로도 보일 수 있었다) 때분에 이 캐릭터가 할 수 있었던 다양한 고민과 성찰의 단계를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했고, 캐릭터 자체가 매우 단순하게 그려졌으며 <캡틴 마블>도 매력을 잃어버렸다.

캡틴 마블


그 누구와도 섞이지 않는 ‘캡틴 마블’

<캡틴 마블>의 특성은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먼저, MCU 세계관 내의 영웅들과 비교하면, 마블의 단독 영웅 영화의 1편은 영웅의 탄생을 테마로 다뤄왔다. 아이언 맨은 첨단 무기를 통한 안보에 관심이 많던 매카닉으로, 캡틴 아메리카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으로서, 그리고 토르는 신의 아들이자 천둥의 신으로서 영화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런 직업과 직책이 그들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싸울 이유를 제시했다. 그런데 <캡틴 마블>은 여태 본적 없는 방식으로 ‘캐롤 댄버스’의 정체성을 찾는다. 직업과 직책이 아닌 성별을 통해 정체성을 확고히 했고, 성별을 통해서만 특징이 드러나게 영웅을 표현하고 있었다. 딱 그만큼 마블의 영화와 달랐다.

이런 캡틴 마블의 특징은 다른 여성 영웅들과도 차이가 있다. 근래 가장 주목 받았던 여성 영웅엔 ‘원더우먼’과 영화보다 더 큰 신드롬이 되었던 ‘할리퀸’이 있다. DC의 자랑인 이 두 여성 캐릭터가 ‘자신의 속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확고히 했는가’를 비교해보면, 캡틴 마블만의 변별점은 더 잘 보인다. <원더우먼>의 다이애나(갤 가돗)는 데미스키라 섬에서 문명 지역으로 오면서 내외적으로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활약하는데, 이는 원더우먼을 문명과 제국주의라는 이념이 만든 참혹한 괴물, ‘전쟁’에 저항하는 자연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게 했다. 그 덕에 그녀는 자연의 강인함, 자유로움, 야생성이 두드러지게 표현될 수 있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퀸(마고 로비)은 반영웅, 반사회적인 특징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했다. 할리퀸은 규칙 및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일탈적인 모습을 가치관으로 내세운다. 예측할 수 없는 자유로움,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기이한 성격, 그리고 퇴폐미라는 특이한 룩으로 사회의 규범에 도전한다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원더우먼과 할리퀸이 정체성을 획득하는 방법은 <캡틴 마블>의 캐롤 댄버스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 캐롤 댄버스가 남성을 대립항으로 부각했다면, DC의 두 캐릭터는 대립항을 사회의 이념과 규범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이 역시 남성 주류의 사회가 만든 이념과 규범으로 본다면,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건 흥미롭다) 그리고 영화가 캐릭터의 고민, 특성, 매력을 이미지와 캐릭터의 과거 서사로 풀어주고 있는데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도 달랐다.

캡틴 마블


이렇게 <캡틴 마블> 속 캐롤 댄버스는 여태 볼 수 있던 마블 영화의 영웅들과 달랐고, 더불어 주류 여성 캐릭터들과도 정체성을 획득하는 방법이 달랐다. 그녀는 그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독특한 캐릭터이며, 그 때문에 지지와 비판을 극단적으로 받는 캐릭터라 생각한다. 더 뚜렷한 대립항이 있기에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급진적인 영웅이거나, 그녀의 성장 및 전사를 잘 볼 수 없어 원작보다 매력을 잃은 단순한 영웅이기도 했다. 이런 화제 속에, 브리 라슨이 SNS 등으로 만든 이슈가 영화에 대한 논의를 요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듯해 안타깝다. 분명한 건, <캡틴 마블>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묘사된 캐릭터지만, 틀린 영화이자 캐릭터는 아니란 거다.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좀 더 건설적인 논의가 오갈 여지가 많아 보인다.

키노라이츠

키노라이츠 매거진 편집장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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