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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F2021] ‘마이 써니 마드’ 아프가니스탄의 일상과 여성, 그리고 가족에 대하여

체코의 대학에서 헤라는 운명처럼 아프가니스탄 남자 나자르와 사랑에 빠진다. 나지르의 가족은 할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의 부부와 조카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체코에서의 삶에 미련이 없던 헬레나는 새로운 터전 아프가니스탄 카불로 떠나 가족을 꾸릴 마음에 들뜬다. 그때만 해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따분한 삶을 버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도 많이 낳고 가족을 꾸리고 싶었다. 나자르는 듬직했고 헬레나를 전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에게 자유가 허락되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걱정할 것 없다고 믿었다. 남편, 종교, 국가 이 세 가지만 생각하면 되는 단순함이 좋았다. 헬레나에서 헤라로 아프가니스탄식 이름으로 바꾸고 온몸을 덮는 부르카를 입고 적응했다. 하지만 탈레반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좋지 못하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성 뿐만이 아닌 모두가 시대의 희생자였다.

서양 여성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었다. <원초적 본능>이 유행했던 탓인지 서양 여성은 모두 매춘부라 생각할 정도였다. 여성이라는 젠더 보다 여자라는 성(性)역할에만 치중했다. 보호자 없이는 절대 밖을 나갈 수 없고, 길거리에서 남자들의 무례한 신체 접촉과 성추행이 만연했다. 남자와는 절대 한 공간에 있을 수 없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여자들은 숨어 있어야만 했다. 여성으로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여자로 사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여러모로 여성들의 삶은 가혹했던 시기였다.

답답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숨통이 트이는 건 할아버지의 진보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이 집안의 어른이자 성자 같은 할아버지는 ‘내 집에서는 여자들이 존중 받아야 한다’라는 신념을 갖고 계셨다. 나지르의 집은 탈레반에 맞서 싸운 전적이 있엇다. 사진사였던 할아버지는 여성들이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진을 내보이며 자유로웠던 시절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였다. 헤라는 할아버지를 존경했고, 집 안에서 여성들은 대우받았다. 하지만 모두를 아우를 수는 없었다. 조카 료쟌은 초경이 시작되자 학교 대신 아버지가 맺어준 남자와 결혼해야 했다. 료쟌은 몰래 가출해 버리고 평화롭던 가족의 일상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한편, 일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던 부부에게 찾아온 아이가 있었다. 선천적 장애로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나지르와 헤라의 곁에 온 것이다. 선지자의 이름을 가진 아이를 운명이라 생각해 양자로 삼게 된다. 마드(무하마드)는 겉모습과 달리 심성이 선하고 깊은 아이였다.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다며 의기소침하고 어두웠지만 사랑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마드를 선뜻 들이기 망설였지만 신의 뜻이라는 할아버지 말씀을 듣길 잘한 것 같다. 헤라는 마드를 사랑으로 품어 주었고 때로는 오히려 의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없으면 안 되는 특별한 구성원으로 가족이 되어갔다.

영화는 체코 저널리스트가 쓴 원작을 기반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슬프고 아프지만 무엇인지 모를 따듯함이 전해진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가족을 바탕으로 사랑이란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일상조차 쉽지 않은 막막한 현실도 함께 보여준다. 단란하고 끈끈했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며 비극이 시작된다. 이 혼란 속에서도 깨끗한 영혼의 마드는 절망 속에 피어난 한 떨기 꽃처럼 카불의 상징이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지만 마치 가족의 일원인 듯 친밀감이 느껴진다. 무채색이었던 초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갈수록 아름다운 색감이 피어나 마음마저 화사해진다. 이를 통해 사랑과 자유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 추구를 하지 못하는 나라,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지만 이제는 가볼 수도 없는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돌아본다.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일은 목숨을 부지하기보다 어려운 일임을 실감한다.

911테러가 발생했던 2011년 전후를 담은 영화의 배경은 2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탈레반 전쟁 역사를 되새기며 씁쓸함을 남긴다. 마지막 헤라의 선택은 마드가 아들을 넘어 영적인 존재로 느껴질 만큼 의미심장하다. 긴 여운을 동반하는 마지막 장면 때문에 쉬이 객석을 일어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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