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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F 2021] ‘마스터클래스’ 그래픽노블 거장 뱅자맹 르그랑이 말하는 SF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봉준호

BIAF2021 좌측부터 김성일 프로그래머, 작가 뱅자맹 르그랑, 김진희 통역사

뱅자맹 르그랑은 소설, 번역, 만화 시나리오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국내에는 봉준호 감독의 SF영화 <설국열차>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다. <설국열차>를 시작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뱅자맹 르그랑은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2015년 BIAF 당시 그가 원안을 낸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가 개막작으로 초청되었다. 이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큰 애니메이션 축제인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부문 작품상을 수상하며 호재를 맞은 바 있다.

이후 뱅자맹 르그랑은 BIAF와의 인연을 이어갈 기회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심사위원으로 발탁이 되었으나 합류하지 못했고, 작년에는 명예 공로상 수상자로 지정되면서 2주 간의 자가 격리를 감내하며 한국행을 택했으나 비자가 발급되지 않으며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 BIAF2021 ‘마스터 클래스: 뱅자맹 르그랑의 작품 세계’를 통해 드디어 다시 연을 맺게 된 뱅자맹 르그랑은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진중하면서도 유쾌한 시간을 국내 관객들과 함께 가지게 되었다.

23일(토) 오후 5시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 상영 이후 진행된 마스터클래스의 제목은 ‘뱅자맹 르그랑의 작품 세계’지만 영제는 ‘The Philosophy of Benjamin LEGRAND’이다. 국내에는 <설국열차>의 원작자로만 알려져 있는 그이지만 누벨바그 시대에 배우로도 활동하며 연기, 음악, 그래픽노블, 애니메이션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때문에 뱅자맹 르그랑의 철학 그 자체를 알아보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뱅자맹 르그랑은 SF장르의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작가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가 어린 시절부터 완성되었음을 고백했다. 4살 때 처음 읽기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당시 이웃집에 SF 서적이 많았다며 이때부터 SF와 인연을 맺었음을 언급했다. 처음 읽은 SF소설은 <해저2만리>로 유명한 전설적인 SF작가 쥘 베른의 소설이며 50년대 미국 작품이 지금 작품세계의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를 자크 타르디와 함께 작업했다. 자크 타르디는 프랑스의 국민 만화가로 그래픽노블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인 1984년 함께 <바퀴벌레 죽이는 사나이>를 집필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뱅자맹 르그랑은 첫 책을 출판했는데 자크 타르디가 그 작품을 보고 자신을 위한 작품을 써 달라고 제안을 했다는 것. 1978년 처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이후에도 몇 번씩 함께 작업을 시도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그러던 중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를 통해 다시 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뱅자맹 르그랑은 미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고 이 아이디어에 자크 타르디가 함께 했다. 자크 타르디의 작업 스타일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도 소개했는데 그는 뉴욕에서 프랑스로 돌아올 때 500장의 사진을 함께 가져왔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서 그림을 구상하는 걸 중시하는 자크 타르디의 스타일이 잘 나타나는 일화다.

BIAF2021 마스터클래스 뱅자맹 르그랑

프랑스 작가협회 소속인 뱅자맹 르그랑은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를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시리즈물로의 스토리 구성도 해놓은 상태였다고. 허나 작가협회에서 TV보다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향을 선회했다고 한다. 영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 만나는 공동의 작업임을 강조한 뱅자맹 르그랑은 작품의 공동감독을 맡은 크리스티앙 데마르와 프랑크 에킨시와의 작업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는 그는 큰 감동을 느꼈으며 프랭크 에킨시-자크 타르디와 함께 셋이서 함께 한 공동작업이 성공을 이뤘다고 평했다. 특히 영화 속 주제의식처럼 자신은 아이디어라는 물방울 하나만 던졌는데 그것이 크게 퍼져서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참고로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1996년 마크 주셋과 프랭크 에킨시가 설립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JSBC의 작품으로 이곳은 첫 장편 <페르세폴리스>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린 바 있다.

작품 속 할아버지 팝스 캐릭터가 손주들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라고 언급한 뱅자맹 르그랑은 팝스 역을 맡은 배우 장 로슈포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홍보를 위한 기자회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그는 2017년 생을 마감했다. 자크 타르디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팝스 캐릭터와 생김새가 비슷했다는 장 로슈포르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은 뱅자맹 르그랑은 가슴이 뭉클했음을 강조했다.

프랑스 영화계의 전성기인 누벨바그 시대에 배우로 데뷔한 적이 있는 그는 자크 리베트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감독으로도 활동한 적이 있을 만큼 영화계와 인연이 깊은 뱅자맹 르그랑은 연출보조로 일하던 시절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 감독은 인생의 절반을 영화 제작비 구하는 일에 쓴다는 말로 웃음을 안겼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의 촬영과 개봉 당시 아쉬웠던 점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애니메이션 작업이 중단된 적이 있는데 예산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작업을 하는데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고 당시 프랭크 에킨시가 많은 힘을 썼다고 한다. 자신이 제공한 수많은 아이디어 중 프랭크 에킨시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자기 스타일로 만들어 작업했다고 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섭섭했을 수도 있지만 뱅자맹 르그랑은 영화는 원래 그런 거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영화에서 중요한 건 누가 더 했느냐 보다는 누구와 만났느냐는 것이라며 영화를 통한 만남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자크 드미, 자크 리베트 등의 영화감독은 물론 자크 타르디, 장 마크 로셰트, 필립 드 륏렛 등의 작가들과 협업을 해온 그이기에 누구보다 함께할 때의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강하게 주장했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작품성에 있어 크게 인정을 받았지만 작품 자체는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본인과 자크 타르디 모두 완성 후 작품에 크게 만족했지만 개봉 3일 후 프랑스 파리 테러가 터지며 극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 관객과 소통할 창구를 잃어버린 것이다.

BIAF2021 좌측부터 김성일 프로그래머, 작가 뱅자맹 르그랑, 김진희 통역사

뱅자맹 르그랑은 봉준호 감독과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그가 언급한 <설국열차>의 영화화는 꽤나 드라마틱한 서사를 통해 이뤄졌다. <설국열차>는 원래 자크 롭과 장 마크 로셰트의 협업 작품이었다. 자크 롭은 <바퀴벌레 죽이는 사나이>에서 뱅자맹 르그랑과 협업했던 작가로 자크 타티, 자크 타르디, 자크 리베트 등 뱅자맹 르그랑이 함께 인연을 맺은 수많은 ‘자크’ 중에 한 명이라고 한다.

장 마크 로셰트는 자크 롭의 사후 그의 남은 가족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자고 뱅자맹 르그랑에게 제안을 했다고 한다. 허나 작품을 담당하던 회사가 파산을 하며 계획이 흐트러지게 된다. 이때 인연을 맺게 된 인물이 봉준호 감독이다. 당시 파산 소식과 함께 한국의 한 감독이 판권을 사고 싶다고 전화를 했고, 담당 직원은 처음 듣는 감독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제안을 넘기려 했다고 한다.

당시 뱅자맹 르그랑은 <살인의 추억>을 통해 봉준호 감독에 대해 알고 있었고 칸영화제에서 그를 만나 판권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의문은 프랑스에서만 출간된 책을 어떻게 한국의 감독이 보았느냐 하는 것. 만남에서 봉준호 감독은 한국판 <설국열차>를 꺼내 놀라움을 자아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파산한 출판사를 인수한 회사에서 한국과 출판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프랑스 작가협회 소속으로 매년 칸영화제에 참석하는 뱅자맹 르그랑은 <설국열차>를 통해 봉준호와 친분이 두터워졌다고 한다. 점심식사에 초대한 건 물론 봉준호의 초청을 받고 한국도 자주 방문했음을 언급했다. 이어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뱅자맹 르그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칸영화제는 수상자가 결정되는 날까지 영화제에 있어야만 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헌데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의 국내홍보를 위해 영화제 도중 귀국할 계획이었다고. 뱅자맹 르그랑은 <기생충> 상영 후 20분간의 기립박수를 보고 봉준호를 만류했고 이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관왕 수상으로 이어졌다. 한국영화의 가장 역사적인 순간이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순간이었다.

여러모로 한국과 인연이 깊은 뱅자맹 르그랑은 마지막으로 상영작의 주제와 관련해 시대의 지성인으로 당부의 말을 남겼다. “첫 번째로 삶은 만남을 통해 완성된다. 두 번째로 유머는 인생을 살린다. 우리가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상영작처럼) 지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라며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인류 공동체를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밖에 없다는 뱅자맹 르그랑은 이날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오랜 시간 그를 기다렸을 국내 팬들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사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집필에 매진했다는 그는 여전히 넘치는 아이디어로 SF 장르의 역사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번 시간이 그에게도 한국에서의 또 다른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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