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이란의 여성 인권 말살 현장이다. 생명의 소중함은 매한가지인데 누가 누구의 목숨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단 말인가. 여성 혐오, 광적인 종교의 이름 앞에 벌어진 믿지 못할 이란의 현주소를 담은 영화는 <경계선>으로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던 ‘알리 아바시’ 감독의 신작이다. 이란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영화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이란 정부의 탄압에도 완성했고 병폐에 맞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배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가 이란 최초 칸 여우주연상을 받아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축하는커녕 신변의 위협에 시달렸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주인공의 사생활까지 더해져 파란이 일었다. 최고의 스타였지만 연인과의 사적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이란 땅에 설 수 없게 되었다. 사회적 낙인과 박해, 경찰 조사까지 받았으며 2006년 프랑스로 망명해 14년 동안 캐스팅 디렉터로 활동해왔다.
하지만 작은 우연은 큰 필연을 만들어 냈다. <성스러운 거미> 캐스팅 디렉터로 일하던 중 기회를 얻게 된다. 주연 배우가 히잡을 벗고 연기하는 금기를 어길 수 없어 돌연 하차하는 일이 생긴다. 어쩔 수 없는 급한 논의 끝에 라히미를 맡게 되었다. 14년 만에 배우로서 복귀하는 작품이 되었고 이는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
여성 혐오에 희생된 영혼들
영화는 1년 동안 16명의 성매매 여성을 살해한 이란의 연쇄살인마 ‘사이드 하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대표적인 성지 마슈하드에서 잔인한 죽임을 당한 여성은 늘어나고, 범인(메흐디 바제스타니)은 정의로운 행동이라며 시체 유기 현장을 언론에 알리는 대범함을 보인다. 오히려 살인을 과시하려 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란의 오랜 관습과도 같은 특수한 상황, 여성 혐오를 등에 업고 날로 승승장구한다.
그는 눈에 잘 보이지 않은 거미줄을 치고 먹잇감을 잡아들여 도망가지 못하게 겁박하는 수법을 썼다. 그래서 ‘거미’로 불렸다. 스스로 신의 대리인으로 생각했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했을 뿐이라며 부끄러움이 없다. 내친김에 성 노동자를 더 많이 응징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이 도시의 순교자 피를 더럽혔다며 정화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라고 선포한다.
애초에 성(性)을 사고파는 수요가 없다면 성사되지 않는 일이지만.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나라는 이 주장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언론, 여론, 정부, 경찰마저 눈감아 주고 있는 상황이다. 힘든 현실 앞에 오직 여성 저널리스트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만이 살인마의 뒤를 쫓아간다.
영화와 현실의 모호한 경계선
<성스러운 거미>는 다양한 장르를 품고 있다. <조디악>, <살인의 추억> 등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생생함과 강도 높은 스릴이 더해져 한 편의 팩션으로 즐기기 충분하다. 여성 인권과 자유, 해방을 외치며 이란에서 확산된 반정부 시위와도 열결 되어 시의적절하다. 사회고발성 다큐멘터리, 시사프로그램, 여성 영화, 인권 영화로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끝까지 추적했던 저널리스트의 팽팽한 대결 구도가 인상적이다. 라히미는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허구의 캐릭터로 매력적이다. 죽음의 문턱을 수시로 넘나들며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외롭게 고군분투한다. 관객의 몰입감을 높이고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범인 사에드가 삼남매의 평범한 아빠이자 가장이었다는 점이다. 가부장적인 태도로 아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지만 오히려, 아버지를 영웅이라 느끼는 아들의 모습이 극도의 섬뜩함을 안긴다. 악의 평범성에 주목한 연출이다. 성녀와 창녀는 누가 만드는 건지, 종교적 광기, 집단의 호도, 특정 프레임까지 고민해 보길 강력히 촉구한다.
영화는 끝났지만 기억해야 할 게 아직 남았다. 지금도 이란 여성해방을 부르는 수많은 라히미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느슨하게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구금된 후 사망에 이른 22세 여성의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비단 한 개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괴물의 탄생에 적극적으로 일조한 국가의 책임이 막중하다. 거미줄을 부수고 거미를 잡았다고,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 잊을 만하면 다시 나타나는 또 다른 거미는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자극적이고 무서웠다. 또 다른 범죄가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이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