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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서부, 카우보이 1도 몰라도 재미있나요?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거칠고 황량한 서부를 배경으로 자연 속의 하찮은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서스펜스 드라마입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은 ‘제인 캠피온’ 감독의 신작입니다. 넷플릭스에서 12월 1일 스트리밍 되나 궁금증을 참지 못한 기자는 버선발로 극장을 찾아 발 빠르게 먼저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감독 이름이 낯설다고요?1990년대 커피숍이나 레스토랑, 혹은 오빠 방에 가면 걸려 있던 포스터, 기억나실 겁니다. 요새 레트로가 주목받으면서 다시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 번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 있을 겁니다.

19세기 식 드레스를 입고 모자를 쓴 여인과 소녀가 해변에서 피아노와 함께 있는 장면, 이제 좀 기억나세요? 이 영화로 제인 캠피온 감독은 여성 최초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아하! 영화는 본 적은 없는데 뭔지는 알겠다고요? 맞습니다.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서부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날 선 심리전과 서걱거리는 가족사를 아주 쫄깃하게 버무려서 찾아왔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 어떤 영화인가요?

1925년 미국 몬태나에서 버뱅크 목장을 운영하는 형제 중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와 이동 중 지친 몸을 이끌고 인부들과 여장을 풀게 됩니다. 형제는 식당과 여관을 겸하는 주인이자 아름다운 미망인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병약한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비)를 만나게 되죠.

그런데 손님이면 조용히 밥이나 먹지 왜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나요? 내 돈 내고 밥 먹다가 체하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신망과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필은 이곳의 분위기가 영 마땅치 않나 봅니다. 식탁 위에 놓인 종이로 만든 꽃이며, 친절하고 상냥한 웨이터, 신나게 즐기는 손님을 향해 괜한 시비를 붙이네요. 훈훈했던 주변 공기를 기어코 살벌하게 만들고 마는 이상한 재주를 가진 필. 이 동네 지주이자 제일 잘나가는 나스시시스트라 불립니다.

‘필’은 서부 세계의 전형적 마초이자 부모, 동생, 일꾼 모두를 쥐락펴락하는 먹이사슬 최강자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말 한마디만으로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 날카로운 혀를 가진 목장의 남자죠. 그 혀로 남의 화를 돋우고 상처 주는 데 탁월합니다.

반면 ‘조지’는 느리고 뚱뚱한 몸을 가졌지만 비상한 기억력과 타인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심성을 갖고 있습니다. 필과 조지는 형제지만 성격도 외형도 다릅니다. 중년의 미혼 남성이 아직까지 한 방에서 침대를 나눠 쓰는 유별남을 보이지만,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영혼의 단짝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필은 아끼는 동생 조지가 로즈와 결혼하자 참을 수 없는 감정이 폭발합니다. 대체 이 감정 뭐죠? 이 부분이 바로 영화의 포인트이자 반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요. 겉으로 봤을 때는 한 여자를 둔 형제의 엇갈린 감정쯤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거 같았습니다. 무엇을 예측했든 간에 결말에 가서는 다들 무너지고 말 겁니다.

필은 첫날부터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된 로즈를 못살게 굽니다. <올가미>에 등장하는 시어머니급의 교묘한 술수와 은근한 압박, 일부러 면박 주려는 완벽한 시나리오까지. 갖은 괴롭힘으로 점점 로즈의 영혼을 좀먹고 있었는데요. 로즈는 이유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처를 극복하기 힘들어 술로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여름 방학이 되자 아들 피터가 목장으로 돌아옵니다. 이때부터는 필에게서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망상까지 시달리게 됩니다.

총잡이, 카우보이? 대체 서부극이 뭐예요?

일단 이 영화는 미국의 고전이라 불리는 ‘서부극’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겁니다. 서부극 하면 무슨 느낌이 먼저 드나요? 황량한 벌판, 백인 남성 개척자, 인디언, 말 타는 카우보이, 총잡이, 무자비 등등이 있죠. 조금 더 심화 학습으로 들어가 봅시다.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떠오르신다면.. 오!! 영화 좀 보시는 분이시군요.

서부극이란 미국 역사 중에서 서부 개척사를 소재로 한 장르입니다. 짧은 역사가 약점인 미국사에서 유일하게 자기네 고전, 신화라며 우려먹는 게 바로 서부극입니다. 우리나라가 조선왕조 오백 년을 영화, 드라마로 계속 만드는 것처럼 말이죠. 서부극은 꿈의 공장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재기도 하며 1960년대 들어와서는 원주민을 대량학살하고 백인 우월주의를 반성하는 태도가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서부극과 타 장르’의 결합으로 다채로운 콜라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사전 지식이 좀 필요한 넷플릭스 영화기도 합니다. 내년 초에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러 분야 노미네이트될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는데요. <로마>, <아이리시맨>, <맹크> 류의 예술성 더한 영화를 선보이기도 했던 엄근진 넷플릭스 노선이 만든 ‘시상식 전용 영화’라는 소리입니다.

아주 주관적인 촉으로 이 영화가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부분의 노미네이트와 수상을 할 거라는 예상입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보다 보고 나서 계속 여운이 계속되는 영화라고나 할까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일주일 후 까지 후유증이 상당한 소위 ‘파고드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 어렵나요?”, “해석이 필요한 영화는 꺼려지는데..”싶은 분들을 위해 정리해 봤습니다.

서부극, 전혀 지루하지도 어렵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만 본다고 해도 이 영화는 아깝지 않습니다. 특히 잘생김을 연기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냉혹한 메서드 연기는 최고이고요. ‘커스틴 던스트’의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모습, 극중 남편으로 나오는 ‘제시 플레먼스’와 실제 부부 사이라 실감 나는 연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피터 역할을 맡은 ‘코디 스밋 맥피’도 주목해야 하는 배우인데요. <엑스맨> 시리즈의 나이트 크롤러를 맡았고, 19세기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슬로우 웨스트>에서 마이클 패스벤더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 역할의 비고 모텐슨과 <더 로드>의 소년을 맡아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의 희망을 연기했죠. 그밖에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주연을 맡은 토마신 맥켄지의 상큼한 목소리가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켜 줍니다.

예측할 수 없는 쫀쫀한 이야기가 있어요!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미국 작가 ‘토머스 새비지’의 동명 장편소설을 바탕으로 하며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 부유한 목장주와 재혼한 어머니와 새아버지, 큰아버지의 신경전을 겪었던 유년 시절을 녹여 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새아버지의 형, 그러니까 영화 속의 ‘필’이 풍기는 괴팍하고 사악한 분위기를 제대로 풍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단연 일품입니다.

책은 1967년 초판 당시 외면당해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1년 《브로크백 마운틴》의 저자 ‘애니 프루’의 해설이 실린 판본으로 새로운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요. 영화가 개봉하면서 원작도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스크린셀러’ 효과를 겨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은 작가만이 할 수 있는 고상한 복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새비지는 피터라는 인물을 만들어 평생의 한을 풀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우리나라에서는 민음사에서 출판되었으니 영화를 보기 전이나 보고 난 후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제목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Dog)는 구약 시편 22장 20절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 주시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 개 입에서 빼내 주소서’에서 영감받았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라는 입에도 착착 붙지 않는 말은 악의 세력을 뜻하는 동시에 광활한 서부 산맥에서 착시현상으로 보이는 개의 형상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서 필과 피터가 산맥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 장면에 잠깐 언급되니, 놓치지 말고 ‘성난 개’의 모습을 찾아보세요.

이유라도 알려줘요! 대체 왜 그런 거냐고..

필이 이유 없이 그런 줄 알았죠? 다 이유가 있었어요. 필은 거칠고 황량한 서부에서 백인 남성만이 최고라 믿고 있는 남성우월주의자였던 겁니다. 자신이 만든 마초 유니버스에 여성이 갑자기 끼어들자 심기가 불편했던 거였죠. 게다가 연약하다 못해 병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들내미까지 있으니, 이건 뭐 인정은커녕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기분입니다. 섬뜩하고 명석한 필과 연약한 로즈, 섬세하고 악랄한 피터로 이어지는 심리적 중압감이 밀려옵니다. 극적인 사건과 긴장감은 물론, 뭐가 일어나도 일어날 것 같은 신경질적인 불안감이 서서히 조여오는데요. 그 혐오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틀어질 때 표출되어 버립니다. 서부극이라더니 공포영화 아니었나요? 영화가 끝나면 영혼이 탈탈 털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유독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인물들 간 벌어지는 서스펜스는 광막한 서부를 배경으로 더욱 부각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직접 보고 판단해 보세요. 대체 폴은 왜 그렇게 로즈를 미워했고 터질듯한 남성성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 나 있던 걸까요? 혹시 중년에 찾아온다는 오춘기일까요? 필과 피터 사이의 묘하게 교차되는 서스펜스까지.. 두고 보면 곧 알게 될 겁니다.

아주 사적 취향이 반영된 추천영화

아참참, 요즘 서부극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를 재미있게 봤다면 넷플릭스 영화 <더 하더 데이 폴>도 추천합니다. 백인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흑인 전용 서부극과 색감, 미장센 화려한 작품입니다. 그밖에 <데어 윌 비 블러드>, <헤이트풀 8>,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로스트 인 더스트>, <몬태나>등도 추천합니다. 물론 추천 목록은 저의 아주 사적인 목록이니 참고만 할 뿐 선택은 취향에 따라 골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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